육중함의 상징인 코끼리와 가벼움의 상징인 깃털이라니, 절묘했다. 영화 <덤보>의 포스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길다란 코 끝에 살포시 깃털을 얹은 아기 코끼리의 모습은 팀 버튼의 <덤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짐작케 했다. 이 코끼리의 이름은 '덤보'이며, 덤보가 하늘을 날 것이라는 '기정' 사실은 팀 버튼의 <덤보>가 전해줄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이끌어낸다.
 
 영화 <덤보> 포스터

영화 <덤보>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더 있거나 혹은 덜 있거나

알다시피, 덤보는 다른 코끼리보다 귀가 큰 아기 코끼리이다. 덤보는 태어날 때부터 큰 귀를 가지고 태어났다. 다른 코끼리들과 다른 덤보의 큰 귀는 모두에게 놀라게 한다. 건초 더미에 가려졌던 덤보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말없이 덤보를 품은 건 엄마 코끼리 뿐이었다. 다르다는 건 조롱하거나 꺼리게 만드는 약점이 된다.

덤보의 큰 귀는 엄마 코끼리 점보를 다른 곳에 팔게 하는 이유가 된다. 덤보를 조롱하는 사람의 소리에 자극받은 점보는 공연장에 난입한다. 어느 어미가 자식의 위기 앞에 초연할 수 있으랴. 점보의 분노를 야기한 사람들은 자기 보호에만 급급하여, 지극히 정상인 점보를 미친 코끼리 취급하며 팔아버린다. 그저 큰 귀를 달고 태어났을 뿐인 덤보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엄마와 헤어지게 된다.

있어야 할 것이 과장되게 있는 덤보와 달리 홀트(콜린 파렐 분)는 있어야 될 것이 없는 사람이다.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은 홀트는 더이상 말 위에서 묘기를 부릴 수 없는 사람이다. 한쪽 팔로라도 말을 타겠다 하지만 단장은 그의 말을 일축해버린다. 사실,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의기소침하며 절망적이다. 서커스를 더이상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은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기게 하는 동시에 더욱 서커스에 집착하게 한다. 과학자가 꿈이라는 딸에게 묘기라도 하나 배워 두지 그랬냐는 홀트의 힐난은 결핍이 그의 현재 진행 방향을 미래가 아닌 과거에 묶어버렸음을 드러낸다. 팔은 잃은 홀트는 희망도 잃어 버렸다. 모두가 가진 걸 잃어버린다는 건 절망을 부른다.

절망에 빠진 홀트는 곁에 있는 두 아이 밀리(니코 파커 분)와 조(핀리 호빈스 분)를 생각하지 못한다. 팔을 잃은 홀트처럼 아이들은 지난 겨울 독감으로 엄마를 잃었다. 자신들처럼 엄마를 잃게 된 덤보가 밀리와 조는 안타깝다. 자신의 추스르기에도 힘에 겨운 아빠에게 기대지 못하는 아이들은 홀로 남겨진 덤보를 보살핀다. 어른이 없는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기적이 일어난다. 깃털을 코로 빨아들인 덤보는 몸을 띄우고 큰 귀를 펄럭이며 공중을 난다. 덤보의 큰 귀는 가볍게 공중에 뜨는 깃털처럼 덤보를 날게 해주는 '날개'였다. 다른 건 다른 역할을 할 뿐, 이상한 조롱거리가 아니었다.
 
 영화 <덤보> 한 장면

영화 <덤보>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덤보와 함께 없는 한쪽 팔을 가짜로 붙이고 공연장을 나선 홀트는 천막 안을 나는 덤보를 보게 된다. 홀트뿐 아니라 공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을 덤보를 놀라움을 느낀다. 그 놀라움은 이상하게 바라보던 이전과는 다른 '경이로움'의 표현이다. 하늘을 난다는 건 언제나 사람들을 이상이며, 그 이상을 실현한 덤보는 경탄의 대상이 된다. 덤보는 이제 더이상 놀림을 당하는 덤보가 아니다. 큰 귀를 가진 덤보는 '하늘을 나는 코끼리'이다. 다르다는 건 다르게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홀트 역시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

하늘을 나는 덤보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자 메디치 브라더스 서커스단에 '드림랜드' 기획자 반데이어(마이클 키튼 분)가 찾아온다. 반데이어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밀며 덤보와 서커스단을 드림랜드로 데려간다. 덤보와 아름다운 공중 곡예사 콜레트(에바 그린 분)와의 합동 공연을 기획한 반데이어는 점차 음흉한 속내를 드러낸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표어를 내건 드림랜드는 휘황찬란한 곳이다. 반데이어는 은행의 자본을 빌어 드림랜드를 건설하고, 하늘을 나는 덤보의 공연을 기획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름답고 화려한 드림랜드는 그 겉 모습과는 달리 추악한 속사정을 숨기고 있다. 반데이어는 공중 공연에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고, 점보가 덤보의 공연에 방해되자 죽여 버릴 것을 지시하고, 서커스 단원 모두에게 해고 통보를 하는 등 드림랜드 운영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가차없이 제거하려 한다.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준다는 드림랜드는 실상 누군가의 꿈을 짓밟고 있었다. 표면과 이면의 불일치가 현격한 드림랜드는 가능한 것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영화 <덤보> 한 장면

영화 <덤보>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경탄을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드림랜드를 만들어낸 것은 자본이다. 공연의 성공 여부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려는 은행가의 등장은 어떤 계획의 실행 단계에 필요한 것이 자본임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영화 <덤보>의 화려한 장면들 역시 자본의 도움 없이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자본을 이용해 자본이 주는 이점과 한계를 그려낸다. 돈은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무엇이든 이루어줄 것만 같다. 자본은 꿈을 이루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생산한다. 대부분 자본이 꿈을 이루어낼 것이라 착각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열망이다. 자본은 꿈을 이루는 것에 도움을 줄 뿐, 그 꿈을 실현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서커스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드러내는 매개물이다. 과장된 쇼를 기획하고 연기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구경하며 웃고 즐기는 사람들 모두에겐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싶은 열망이 깃들어 있다. 서커스의 하이라이트 공중 곡예는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들의 꿈을 반영한다. 하늘을 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이상이다. 덤보에게 자신도 날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공중 곡예사 콜레트의 대사는 가슴을 뛰게 한다. 이 두근거림은 덤보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하늘을 날게 한다. 꿈을 꾸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열망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그런 열망들이 모여 지금을 만들어낸다.
 
 영화 <덤보> 한 장면

영화 <덤보>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하여

과학 역시 사람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홀트의 딸 밀리는 서커스단에서 자랐지만, 단원이 되기를 거부하며 과학자를 꿈꾼다. 제2의 퀴리 부인이 되겠다는 밀리는 관찰, 원인 분석 등 과학적인 방법으로 현상에 접근하려 한다. 드림랜드 내에 전시된, 과학이 만들어낸 물건들을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은 '지금'에 다름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영화 <덤보>는 미래라는 타이틀로 아름답고 멋진 세상으로 우리가 사는 '현재'를 보여주면서, 현재의 모습이 사람들이 꿈꾸는 아름답고 멋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자본과 과학의 힘을 빌어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여전히 덤보처럼 다른 것을 잘 포용하지 못하며 홀트처럼 무언가를 잃은 사람은 쉽게 재기하지도 못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선 뭐든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반데이어의 대사는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지를 생각케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독립심뿐만이 아니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는, 이타심이 필요하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덤보의 큰 귀도, 홀트의 부족한 한쪽 팔도 세상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있는 그대로 그들을 수용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타심, 지금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자본과 과학의 결합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열망을 실현하려는 빠른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점차 잊은 것이다.

이타심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덤보>는 덤보와 엄마 점보의 안타까운 관계를 재현하며, 사람들의 그동안 동물들에게 얼마나 몹씁 짓을 해왔는지를 반성하게 한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필요에 따라 이용되었던 동물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과 결과가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변화시켜 가야 할 세상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위험없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만 존재했던 이타심을 동물들에게도 확장시켜 나가야 할 시점이다.
 
 영화 <덤보> 한 장면

영화 <덤보>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코끼리 덤보가 하늘을 난다. 이미 알고 있더라도 덤보가 하늘을 나는 장면은 볼 때마다 경탄스럽다. CG로 재현된 실사 코끼리가 나는 장면은 그림으로 그려진 코끼리보다 생생하다. 1941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덤보>는 큰 귀를 가진 덤보가 약점을 극복해내며 얻는 용기에 집중한다. 2019년 팀 버튼의 <덤보>는 원작의 이야기를 담는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재생산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화려한 볼 거리로 담아내면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소망을 사람과 사람,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영화 <덤보>가 꿈꾸는 세상은 코끼리가 하늘을 날듯 상상에서나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열망을 잃지 않는다면 지금을 그런 세상과 좀더 가깝게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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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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