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길티> 포스터

<더 길티>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소설에 비해 시점이 주는 상상력의 재미가 떨어진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는 다이제시스와 미메시스,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소설과 같은 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다이제시스(Diegesis), 영화와 같이 영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미메시스(Mimesis)라고 한다. 다이제시스는 들려주기(Telling)에 해당한다. 글은 독자가 해독과 해석을 거쳐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인식된다. 그러하기에 작가는 구성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의미들을 심어 넣고 독자는 이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의미를 구성하며 이해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글에 담긴 의미와 장면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상하는 상상력의 재미를 추구한다.

반면 미메시스는 보여주기(Showing)에 해당한다. 어떤 장면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의미의 구성이 달라지며 관객은 독자에 비해 투명하고 직접적으로 그 의미를 받아들인다. 영화는 제한적인 상상력 때문에 장면의 구성과 표현에 집중한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감독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른 장면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 표현의 집중은 영상매체를 텍스트 매체의 모방과 재현이라는 한계로 인식되게 만드는 함정을 지니고 있다. 최근 영화들은 텍스트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에 독특함을 더함으로써 영상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법적인 재미를 선보인다. 최근 작품으로는 <서치>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더 길티>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각이 아닌 청각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는 독특한 스릴러 영화이다.
  
 <더 길티> 스틸컷

<더 길티>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재판 중인 사건으로 긴급 신고 센터에서 근무 중인 경찰 아스게르는 내일 있을 재판의 결과를 통해 복직을 노리고 있다. 오늘만 지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와 긴장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퇴근을 얼마 안 남기고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한 여성에게 걸려온 전화는 납치 신고전화였고 그는 여성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당한 채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스게르는 경찰에게 연락하지만 범인을 잡는 데 실패한다. 여자의 신상을 파악하고 아이들을 통해 남편이 납치범임을 알게 된다. 아스게르는 여자의 딸에게 꼭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퇴근까지 미룬 아스게르는 내일의 재판은 생각하지 않은 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밤새 전화기를 붙든다.
 
<더 길티>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직 전화를 통해서만 사건을 진행해 나간다. 아스게르가 근무하는 긴급 신고 센터로 공간은 한정되며 외부 상황은 오직 전화의 내용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영화의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소설 속 독자가 느낄 만한 호기심을 유발해낸다. 소설에서는 시점의 호기심이라는 것이 있다. 독자는 시점에 한정되어 작품을 읽어나간다. 예를 들어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작품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주인공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점으로만 사건을 인지하게 된다. 영화가 화면을 통해 전체를 보여주는 것과 상반된다. <더 길티>는 주인공이 볼 수 있는 시각을 한정시킴으로 이런 호기심을 가져온다. 관객은 아스게르가 들을 수 있는 정보만을 들으며 그 정보를 바탕으로 사건을 상상하고 조립해야 한다.
  
 <더 길티> 스틸컷

<더 길티>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이런 구성 방법은 <더 테러 라이브>나 <베리드>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정보를 주는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와 가장 비슷하다 생각되는 영화는 톰 하디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로크>라 할 수 있다. <로크> 역시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주인공인 건설현장 감독 로크가 전화로 주고받는 이야기만을 정보로 제공한다. <더 길티>와 <로크>의 공통점은 두 작품 다 외부의 전화를 통해 주인공이 처한 사건을 조명하고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점이다. <로크>가 출장 때 만난 여성의 임신 때문에 가정과 직장을 포기하는 로크의 내면, 과거의 아픔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그의 심리를 조명한다면 <더 길티>는 제목 그대로 아스게르가 지닌 내면의 죄책감을 다룬다.
 
이 작품이 아스게르의 모습만을 비춰주는 이유는 그의 심리변화와도 연관되어 있다. 아스게르가 외부의 사건을 어떻게 자신의 내면과 연관시키는지, 또 그 연관을 통해 어떻게 변화를 보이는지를 조명한다. 이는 영화의 구성이 단순히 호기심을 주기 위한 측면이 아닌 감정적인 효과에 있어서도 꼼꼼하게 설계를 했음을 보여준다. <더 길티>는 제한된 시각과 청각을 통한 정보제공을 통해 독특한 스릴감을 유발해낸다. 영상의 시대에 들려주기(telling)를 택한 이 영화의 표현은 색다른 작품을 원하는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더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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