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포스터

<극한직업>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왜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 건데!"
 
가수의 인생은 본인 노래의 제목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헌데 이 영화는, 주인공의 대사와 상황이 현실이 됐다. 마약반의 잠복근무를 자의 반 타의 반 방해하는 치킨 가게의 '대박'을 타박하는 <극한직업> 속 영호(이동희 분)의 대사는 그렇게 현실 속 '대박 흥행'을 예견하는 대사가 됐다.
 
그 <극한직업>이 지난 22일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3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1523만1749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극한직업>은 여전히 박스오피스 2위를 수성하며 23일에만 19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괴력을 과시 중이다. <극한직업>은 이제 "왜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지 묻고 싶을 정도의 흡인력을 바탕으로 역대 박스오피스 1위 <명량>(1761만5437명)만 남겨둔 상태.
  
 <극한직업>의 한 장면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 ENM

 
이미 <극한직업>이 "왜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지에 대해선 '천만 돌파' 전후 여러 분석이 나왔다. '치킨+잠복근무'라는 쉽고 가벼우면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소재, 정통 코미디로서 군더더기 없이 완성도 있는 만듦새, 그간 쏟아졌던 정치사회역사 소재의 피로감과 그 반대급부로서 '정통 코미디'에 대한 소구를 만족시킨 이병헌 감독의 감각, 연말연초 한국 대작들의 부진과 '명절(설날)엔 코미디' 법칙을 관통한 대진운, 류승룡을 비롯해 코미디를 오버스럽지 않게 소화한 배우들의 앙상블까지.
 
영진위도 최근 발표한 1월 한국영화결산에서 <극한직업>의 흥행에 대해 "순제작비 65억 원의 중급 영화 <극한직업>은 겨울 성수기에 볼만한 영화가 없어 영화 관람을 미뤘던 관객들을 극장으로 모두 불러들였다"며 "12월과 1월의 관객 감소분에 설 대목 관객까지 모두 가져간 결과 2월 17일 기준으로 1454만 명의 누적 관객을 기록하며 역대 전체 영화 흥행 순위 2위에 등극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지난달 23일 개봉 이후 '극한'의 흥행세를 이어가며 역대 흥행 1위 <명량>을 쫓고 있는 <극한직업>. 그리하여, "이제까지 이런 흥행은 없었"던 흥행 레이스에서 작품 안팎에 볼 수 없었던 몇 가지를 꼽아봤다. 업계에선 오로지 "신만이 안다"는 '천만 흥행'. 그 코드나 징후를 분석한 일에 대한 무용론도 만만치 않지만, 그럼에도 <극한직업>에 없는 요소들이야말로 이제까지 없었던 이 '사건'의 요인을 증명하는 우회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실화, 역사, 신파, 이데올로기, 천만 영화의 공식들
  
 영화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영화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 (주)쇼박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광해-왕이 된 남자>,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 <암살>, <택시운전사>(연도 순).
 
한국영화 천만 흥행작 중 과거로 시계로 돌린 영화들이 무려 9편이다. 여기엔 6.25, 5.18, 일제 강점기와 같은 역사가 있고, 이순신 장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광해군과 같은 역사 속 실존인물이 있으며, 실화 혹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 단체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 여기엔 민족, 이념과 같이 묵직한 테마나 가족 코드나 '신파'와 같이 정서적인 울림이 반드시 존재한다. 널리 알려진 소재, 혹은 공감 영역이 큰 이야기에 감정의 진폭을 자극하는 양념이 첨가되는, 즉 폭넓은, 전 세대 관객들의 이성과 감성을 공히 건드리는 그 무엇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 거기에 사극이나 전쟁물, 시대물이라면 당연히 품고 있는 특유의 영화적인 '볼거리'가 더해진다. 그렇다면 여타 천만 영화들은 어땠을까.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포스터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

 
<신과 함께: 죄와 벌>, <신과 함께: 인과 연>, <베테랑>, <도둑들>, < 7번방의 선물 >, <부산행>, <해운대>, <괴물>(관객 수 순).
 
'괴수물'과 사회파 드라마를 아우르는 <괴물>과 재난영화에 가족영화 공식을 섞은 <해운대> 이후, 천만 영화의 장르도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판타지 드라마인 <신과 함께> 시리즈는 그 장르 다양화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앞서 이른바 '케이퍼 무비'라 부르는 범죄액션물 <도둑들>은 신파나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첫 번째 '천만' 순수오락영화였다.
 
물론 이 범주에도 전자의 특징, 즉 한국적인 특색이 녹아난 작품들도 여럿이다. 코미디를 표방했던 < 7번방의 선물 >은 부성애라는 가족·신파 코드에 사회파 드라마의 특징인 법정물까지 섞은 작품이었고, 류승완 감독 특유의 <베테랑>은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의 오마주에 한국식 '반재벌'과 '권선징악'이 가미된 작품이었다. '좀비물'을 안착시킨 <부산행>마저도 부성애는 후반부를 관통하는 정서였다. 이쯤 되면, 정통 코미디 <극한직업>이 희귀할 정도 아니겠는가.
 
잡음과 논란에서 자유로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 ENM

 
몇몇 '천만 영화'들은 찬사와 함께 호불호가 갈리거나 영화 안팎으로 잡음이 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어코 천만을 달성하고자 투자배급사가 자사의 극장 배급망을 이용, 스크린을 오래오래 볼모로 삼는 경우도 있었고,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으나 관객들로부터 유독 사랑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또 어느 작품은 이른바 진영논리에 따라 별점 테러를 당하거나 티켓 불매 운동에 시달려야 했고, 어느 영화는 개봉 당시 현직 대통령이 나서서 영화를 관람하라는 대국민 홍보에 나서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무시무시한 흥행 속도 덕분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던 작품도 없을 순 없었다.
 
아마도 <극한직업>은 이 모든 잡음과 논란을 피해간 행복한 사례로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물론 각자의 시선에서 비판이 제기될 순 있다. 특히나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이나 역할에 대한 지적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극중 악역들이 연신 내뱉는 특정 욕설이 장애인 비하라는 비판도 들려오기는 한다).
 
하지만 <극한직업>은 영리하게도, 마약팀 형사 5명 중 이하늬가 연기한 장형사를 비롯해 팀플레이가 돋보이는 캐릭터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비판의 여지를 유연하게 피해가능 동시에 구성이 관객들의 만족도와 현실감을 동시에 충족시킨 것으로 보인다. 악역 중 하나인 악당 캐릭터를 <킹스맨>을 연상시키는 여성 캐릭터로 구축한 것 역시 눈에 띈다. 그 자체로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질타를 보내기보다 한국영화 전체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라고 할까.
 
영진위의 2018년 한국영화결산에 따르면, "여성 참여 영화는 멜로/로맨스 등의 장르에 편향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영화 제작의 핵심 영역 여성 비율은 자본과 인력이 집중될수록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작년 한 해 여성 주연과 감독의 영화는 편수가 늘었지만, 그 체감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코미디 장르인 <극한직업>은 세심한 캐릭터 구성이나 구축만으로도 '다름'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둔감해진 스크린 독식 비판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2018년 소수 영화에 스크린이 몰리는 현상은 더 심화되었다. 일별 상영점유율 기준 1위 영화가 평균 33%, 2위가 20.7%, 3위가 13.8%를 차지함으로써 1~3위 합이 67.5%나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당해 흥행순위 3위 이내의 영화들은 모두 일별 상영 점유율 40% 이상을 기록한 것을 보면, 상영점유율과 흥행 순위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정해볼 수 있다."
 
역시 영진위 분석이다. 곧, 스크린을 많이 먹은 자가 1, 2, 3등을 먹는 법이다. 이건 업계 상식이고, 구조 자체가 그렇다. 지금 박스오피스 순위를 살펴 보시라.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스크린 수부터 차례대로 1위부터 10위까지 줄을 선 모양새다. 물론, 문제는 그 심화 정도다.
 
영진위는 "2018년 일별 상영점유율 40% 이상을 기록한 영화는 총 9편"이라고 밝혔다. 그 중 최고는 일별 상영점유율 77.4%를 기록한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였다. 무려 상영점유율 40% 이상을 잠식한 일수도 21일이나 됐다. <신과함께-인과 연>도 상영점유율 53.3%로 시작, 개봉 4일 만에 59%까지 치고 올라갔다.
 
<극한직업>은 어땠을까. 개봉일 45.8%(스크린 수 1553개)로 시작, 개봉 첫 주 주말(27일) 54.7%(스크린 수 1978개)가 최고였고, 이후 폭발적인 흥행세가 이어지면서 꽤나 장기간 40%대를 유지했다. 여타 한국영화 '텐트폴' 흥행작들과 엇비슷한 수치지만,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러니까, 2000개가 넘는 스크린에 6~70%대의 일별 상영점유율은 돼야 극심한 스크린 독식이라 비판을 받는 시대가 됐다. 한 마디로, 이 스크린 독식 문제에 둔감해졌다는 얘기다. 그러는 사이, 2018년 한국 독립․예술영화를 본 관객은 전체 관객의 0.5%에 불과했다. 전체 독립․예술영화 총 관객 수도 역시 전년 대비 12.3% 감소했다.
 
이 스크린 독식 문제에 업계는 물론, 언론이나 관객들 모두 둔감해지는 사이 독립예술영화를 외면하는 거대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들만 극장에 몰린 셈이다. 반면 아무도 "이제까지 없었던 이런 흥행"을 예견치 못했기에, <극한직업>은 처음부터 스크린이 극심하게 몰리지 않았고, 나름 적정 수준을 유지하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무섭게 끌어들인 경우였다. 

둔감해졌을지언정 비판에서 비켜간 경우라고 할까. '대박' 치킨 가게에도 성공하는 요인이 여럿이라고 했다. <극한직업>이 피해간 그 무엇들이야말로 신이 점지한 천만 흥행을 있게 또 다른 주요 요인들일지 모를 일이다.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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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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