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리스 스파이> 포스터.

영화 <폴리스 스파이> 포스터. ⓒ 영화맞춤제작소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km 구간에 설정된 '비무장지대(DMZ)'는 영화에서 익숙한 공간이다. DMZ 내 군사분계선 상에 위치한 판문점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휴전이란 현 주소를 담았다. DMZ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자연 생태계가 보존된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 <언더독>은 이런 사실에 주목하여 DMZ를 동물의 낙원으로 묘사했다.

24일 개봉 예정인 오인천 감독의 신작 <폴리스 스파이>도 DMZ를 무대로 한다. 그는 이미 <데스트랩> <폴리스 스파이>, 곧 공개 예정인 <비무장실인지대>를 'DMZ 스릴러 3부작'으로 예고한 바 있다. 처음부터 3부작으로 계획한 탓일까? <폴리스 스파이>는 <데스트랩>과의 몇 가지 공통점을 보여준다.

<데스트랩>은 탈옥한 연쇄살인마를 쫓아 DMZ 인근의 알 수 없는 숲속에 온 여형사가 실수로 지뢰를 밟는 상황을 담았다. 지뢰는 '남북 대치'의 산물이다. 또한, 인적이 끊긴 '제한 구역'이기에 도피처로 기능한다. '남북 대치'와 '제한 구역'이란 DMZ의 특징은 <폴리스 스파이>에서도 다시금 나타난다.
 
 영화 <폴리스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폴리스 스파이>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폴리스 스파이>는 경찰로 위장한 남파 공작원 지원(나현주 분)이 다른 공작원 연주(주혜지 분)에게 물건을 받고 북으로 복귀하던 중에 여성을 폭행하는 남자만 골라 죽이던 연쇄살인마 문영(이주희 분)과 혜선(노이서 분)을 만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DMZ를 넘나드는 남파 공작원인 지원과 연주는 '남북 대치'의 결과다. 살인범 문영과 혜선에겐 '제한 구역'인 DMZ가 시체를 유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데스트랩>과 <폴리스 스파이>를 관통하는 다른 포인트는 '여성'이다. <데스트랩>은 여성 형사란 성별 구분이 아닌, 한 명의 형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아내 애리조나 국제영화제의 클리우디아 제스퍼슨 수석프로그래머로부터 '여성의 용기에 대한 탁월한 장르 영화'란 평가를 받았다.

<폴리스 스파이>에서 지원, 연주, 문영, 혜선 등 중심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남성 캐릭터는 두 명에 불과하고 대사와 분량도 미미하다. 여기에 오인천 감독은 페미니즘 서사를 덧붙였다. 여성에게 폭행을 가하는 남성을 처단하고 도주하는 문영과 혜선은 바로 <델마와 루이스>의 설정이 아닌가. 여성들이 차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마치 <델마와 루이스>에 바치는 오마주처럼 느껴진다.
 
 영화 <폴리스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폴리스 스파이>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데스트랩>은 DMZ를 심리 게임을 펼치는 경기장으로 사용한다. 오인천 감독은 "인물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상황은 계속 뒤바뀐다"고 의도를 설명한다. <폴리스 스파이>에서도 DMZ는 심리 게임의 장이 된다. 지원, 연주, 문영과 혜선은 각자의 속셈을 갖고 서로를 마주한다. 주도권은 수시로 역전된다.

<데스트랩>과 <폴리스 스파이>의 차이점도 분명하다. <데스트랩>이 스릴러를 강조한다면 <폴리스 스파이>는 블랙코미디가 강하다. 남한에서 아이돌 연습생으로 활동하는 연주나 월세를 먼저 걱정하는 지원을 보노라면 웃음이 터진다. <폴리스 스파이>는 생계형 간첩을 소재로 삼았던 코미디 <간첩 리철진><간첩>의 계보인 셈이다.

최근 충무로엔 색다른 방식을 보여주는 감독(군)이 등장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동기들이 주축이 된 영화창작집단 '광화문 시네마'는 < 1999, 면회 > <족구왕> <범죄의 여왕> <소공녀>를 잇따라 제작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강효진 감독은 많은 예산이 들어간 <미쓰 와이프> <내 안의 그놈>을 만들며 동시에 저예산으로 <나쁜 피> <폭력의 법칙: 나쁜 피 두 번째 이야기> <양아치 느와르>를 내놓았다. 이들이 모색한 돌파구는 많은 이의 눈길을 끌었다.

오인천 감독의 도전도 눈여겨 볼 사례에 속한다. 그는 <소녀괴담> <잡아야 산다>를 충무로 시스템에서 만든 이후 독립제작 시스템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투자자가 아닌, 스스로 예산을 마련하여 저예산 장르 영화 <야경: 죽음의 택시> <월하> <데스트랩>을 만들었다.
 
 영화 <폴리스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폴리스 스파이>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폴리스 스파이>는 저예산 영화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단점도 적지 않다. 총격전의 연출은 요즘 극장가에 걸리는 상업 영화의 완성도와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짧은 시간 내에 만든 탓에 장소와 인물의 동선도 제한적이다. 이야기의 전개도 매끄럽진 않다.

<폴리스 스파이>는 아쉬움을 남길지언정 실험 정신까지 퇴색시키진 않는다. 오인천 감독은 저예산, 짧은 회차, 소수 스태프란 제한 속에서 DMZ란 공간을 활용하고 여성 중심의 서사를 펼치며 장르의 실험을 감행한다. 남북 소재와 페미니즘 서사를 섞는 호기로움도 엿보인다.

오인천 감독은 <폴리스 스파이> 다음에 <비무장살인지대> <고쿠라 미스터리> <밤의 마녀> <13일의 금요일: 음모론의 시작> <야행: 살인택시괴담>을 선보일 예정이다. 차를 몰고 길을 떠나는 <폴리스 스파이>의 마지막 장면은 오인천 감독의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는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현재진행형'의 감독이니까 말이다. 
폴리스 스파이 오인천 나현주 주혜지 노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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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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