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 포스터

영화 <완벽한 타인>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내 손 안의 휴대폰, 거리낌없이 공개할 수 있을까. 영화 <완벽한 타인>은 휴대폰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의 소통 양상이 공개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네 명의 친구들과 그 배우자들을 통해 보여준다. 게임에 특별한 취미가 있지 않아도, 특정한 앱을 실행시키지 않아도, 별다른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넘친다. 이 게임에 벌칙은 필요없다. 공개 후 벌어지는 소동이 벌칙에 다름없다.

관람하는 내내 웃음이 난다. 문제는 웃기지만 시원하게 웃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나 역시 거리낌없이 휴대폰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일 게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쉽게 공개할 수 없는 휴대폰과 비슷한 관계의 속성을 그려낸다.

관계의 기반, 인정하는 척하기

동질을 추구하며 시작된 관계는 이질을 확인하며 맞춰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시간과 함께 오래 이어온 관계는 석호(조진웅 분)의 대사처럼 '다름을 인정'하면서 깊어진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뒤끝 없이 '쿨' 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가 드러내듯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에서는 험담하고, 앞에서는 치켜세우고 뒤로는 따돌리기 일쑤이다.

악의와 거짓이 많지 않다면 대다수는 이런 일에 관대해질 수밖에 없다. '나'도 하는 짓이고, '너'도 하는 짓이다. 다만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들린다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타인>은 우리의 관계가 사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척'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조망한다.

무언가를 향한 상대의 지향점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호감도는 급하락한다. 이성적으로 시작된 논쟁이나 토론의 끝엔 감정이 상하기 일쑤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지만, 너무나 달라서는 친해질 수 없다. 어떤 부분이든 동질을 기반하지 않고서 친밀도는 상승하기 어렵다.

그러나, '언제나' 알고 보면 상대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때로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잘못 본 것만 같다. '콩깍지'나 '제 눈에 안경'이란 말들은 타인을 얼마나 주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다름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뒤로는 다른 것을 비난하고 험담한다. 있는 그대로 상대의 본질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변화시키기도 힘들고 변화시킬 필요도 그리 없는 것을 가지고 싸우는 일은 피곤하다. 결국 우리가 택하는 것은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며, 덕분에 나날이 늘어가는 것은 연기력이다. 우리는 본심을 감추고 포장하며 관계 맺는다.

또다른 '나', 아닌 척하기

포장으로 억압된 자아는 자신만의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비밀스런 관계를 추구한다. 통상의 관계에서는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을 분리해 유리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상대가 모르는 척하기도 힘들 만큼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은 감추어야 한다. 틀렸다고 공공연하게 비난 받을 만한 일, 달라도 너무 다른 사정은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뒤가 아닌 앞에서도 말할 수 있는 잘못이나 일반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차이'는 사회적인 관계를 어긋내는 결정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비밀이 생겨난다.

<완벽한 타인>에 등장하는 모두는 그런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월식으로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 세상이 어둠에 묻히는 잠깐의 시간, 어둠에 묻혀있던 비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휴대폰이 공개되자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은 다른 모습을 몰래 키우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남편이나 아내나 친구들,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또다른 자아가 존재한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모습을 특별하게 통하는 상대에게만 밝히며 은밀하게 관계 맺고 있다.

그 비밀스런 관계의 중개자이며 폭로자는 휴대폰이다. 세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마법의 묘약이 있다면, 영화 <완벽한 타인>에는 휴대폰이 있다. 기계적으로 소통의 임무를 수행할 뿐인 휴대폰은 감출 것을 선별해 침묵하는 센스가 없다. 전파의 요동을 그대로 배출해내는 정직함은 사랑의 묘약보다 더 상황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비밀은 드러나는 족족 아닌 척하고 있던 연기자들의 감춰졌던 실체와 본심을 드러낸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배(윤경로 분)는 달이 월식으로 잠시 가려졌다 다시 나오듯,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가면을 쓰고 앉아 있는 모두를 향한 평가인 동시에 감추고 있는 자신의 본질을 고백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을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상대를 수용하는 듯 가장하는 관계 속에서 폭로되는 비밀은 그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우리는 무수히 맺는 관계 안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만큼의 자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관계의 위기, 지속 혹은 파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한계를 지녔음에도 관계는 지속된다. 혼자는 외롭고 불안하고 두렵다. 많은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서 일말의 위로를 찾는다. 드러낼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는 별탈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다며 안도감을 느낀다. 비밀로 숨겨진 관계를 통해서는 고유한 이질성을 함께 발산할 수 있는 상대와 조우하며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다시 한번 안도한다. 영화의 네 친구들처럼 대놓고 저녁을 함께할 친구가, 때론 남들 모르게 저녁을 함께할 누군가도 필요하다.

관계 내에서 '척'하는 가식과 위선은 많은 부분 용인된다. 정도 차이일 뿐 누구나 그러하며, 일면 그러기 위해 관계가 필요하다. 어떤 관계든 관습처럼 암묵적으로 용인의 기준을 가지기 마련이다. 예진(김지수 분)에 대한 수현(염정아 분)의 뒷담화, 수현에 대한 예진의 따돌림 등은 씁쓸하지만 그들의 관계에 치명타를 가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관계들은 완벽하게 1: 1의 대응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많은 관계들은 이미 맺어진 관계 속에서 파생된다. 얽히고 섥힌 관계들은 복잡한 속성으로 인해 대부분 스스로 유지된다. 관계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단칼에 끊을 수 없고, 잘 끊어지지 않는다. 소원해진 관계들은 연결이 느슨해지며 대다수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깊어진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건, 영화가 조망하듯 대체로 비밀이다. 비밀의 대부분은 윤리적인 비난을 초래하기 쉬우며, 그 비난을 비껴가더라도 논란이 될 수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다름을 더 이상 인정하는 척할 수 없을 때,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거라는 생각이 들 때 그 관계는 틀어질 위기를 맞는다.

알지 못했던 상대의 비밀이 밝혀지면, 관계자들은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은 누구인가. 태수(유해진 분)와 수현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상대의 모습에 경악한다. 영배의 숨겨진 또다른 모습에 친구들은 어리둥절하다. 상대는 여전히 '그 사람'이지만,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아니다. 이제 관계는 지속될 것인지 파탄날 것인지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서로를 조금더 이해할 때 관계는 파탄의 위기에서 구해진다. 상처를 받지만 위로도 받으며, 서로의 위선을 눈치채지만 때로 진심을 발견하기도 한다. 탄로난 비밀에 경악하지만, 한편으론 그럴 수밖에 없었나 측은하다. 내가 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듯, 상대가 보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상대의 다름을 온전하게 수용하지는 못하지만, 상대의 비밀이나 아픔을 알게 된다면 내 방식대로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상대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인 아닌 '나'의 반성과 변화를 수반하는 관계는 좀더 긍정적으로 지속된다. 긍정적인 관계는 희망을 품는다. 어쩌면 내가 이해받을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은, 알고 보면 상대도 나와 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는, 상대도 나처럼 상처받고 있었을 것이란 미련은, 파탄의 위기에서도 관계를 지속시키는 이유가 된다.

완벽한 타인, 모르는 척하기

영화 <완벽한 타인>은 3쌍의 부부를 통해 다양한 관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보통 부부는 수많은 관계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서로를 아는 관계로 인식된다. 일상을 공유하지만, 비밀에 있어 타인과 다를 바 없는 부부 관계는 관계의 속성과 그 안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드러내기 적합하다.

부부 관계처럼 긴 시간동안 가깝게 지속되는 관계는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기대하고, 그 기대를 배반당하는 과정에서 관계는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손익을 계산하는 가식으로 점철된 관계가 아니라면, 관계자들은 관계가 위기에 봉착하면 자신과 상대를 되돌아본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혹여 내가 이기적이지는 않았는지, 상대의 아픔이 무엇이었는지를 숙고하고 반성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상대를 좀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도저히 묵과하거나 용인할 수 없는 상대의 잘못이 있다면, 그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기도 한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 나오는 배우자의 외도는 관계를 파탄시키는 대표적인 것이다.

영화 말미, 태수와 수현 부부는 휴대폰을 통해(게임의 진행 여부에 상관없이)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며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 한다. 이 노력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계 개선을 위한 희망이 따른다. 준모(이서진 분)와 세경(송하윤 분) 부부는 밝혀지기만 한다면 파탄날 관계를 맺고 있다.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제시되는 게임이 현실이 된다면 세경은 충분히 단호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파탄나는 관계보다 더 위험한 것은 파탄나지 못하는 관계이다. 영화는 짐짓, 석호가 예진의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듯, 암시를 줄 뿐 석호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진이 쏟은 와인이 물줄기를 타고 석호의 셔츠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은 석호가 받은 상처와 아픔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딸 지우(소영 분)와의 통화는 같은 사건을 석호와 예진이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예진이 석호가 받은 아픔에 얼마나 둔감한지, 그 둔감은 또 얼마나 잔인한지. 가슴 전문 성형외과 의사인 석호가 예진의 가슴을 수술할 수 없듯, 정신과 의사인 예진은 석호를 상담할 수가 없다. 예진이 육체적 욕망을 석호로부터 해소하지 않듯 석호의 상처는 예진에게서 비롯되나, 그녀에게서 치유받지 못한다. 이들의 관계는 석호에게는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예진을 더욱 이기적으로 만들 것이기에 위험하다.

석호와 예진의 관계에는 희망이 없다. 석호는 비밀을 말할 수도 없고, 예진은 석호의 상처에 무심하다. 예진은 마치 모셔지는 '아씨'처럼 석호의 애정과 봉사를 당연하듯 여기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예진의 비밀을 아는 듯 마는 듯해 보이지만, 석호는 모르는 척하고 있다. 석호는 자신이 모르는 척하는 것이 탄로날까 두려운 사람이다. 예진에게 석호는 사회적 위치를 위해 기능하는 존재일 뿐이다. 예진은 석호의 상처를 외면하고 있다.

파탄이 두려워 지속되는 관계는 무력하다. 석호와 예진은 좀더 나은 관계나 본인 자신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비밀을 키워나가고, 그 비밀을 모른 척할 뿐이다. 파탄의 무게를 외면하고 지속되는 이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어떤 위안도 되지 못한다. 외로운 삶 속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 한 침대에 누웠지만, 이들은 그저 '완벽한 타인'일 뿐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처음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완벽한 타인'을 만나게 된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로를 보여주고 이해하고 때로는 반목하는 과정을 거치며 관계를 맺어 나간다. 마치 약점인 듯 상대가 숨겼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완벽한 타인은 '완벽했던 타인'이 되어 간다. 때론 아픔이기도 한 비밀을 수용하고 보듬는 과정에서 관계는 좀더 긴밀해지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한다. 관계를 맺지만, 모른 척하고 외면해야 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완벽한 타인'일 뿐이다. 석호는 누구에게 아내의 비밀을 털어놓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영화완벽한타인 완벽한타인리뷰 핸드폰과관계 관계의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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