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상벌위원회 참석한 이택근 넥센 히어로즈 이택근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이택근은 2015년 같은 팀 후배인 문우람을 폭행한 사실이 기자회견을 통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 KBO 상벌위원회 참석한 이택근 넥센 히어로즈 이택근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이택근은 2015년 같은 팀 후배인 문우람을 폭행한 사실이 기자회견을 통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 연합뉴스

 
올 시즌을 돌아보면,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야구팬들을 웃게 만든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많았다. KBO는 민감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권위를 지키기에 바빴다. 이는 정운찬 총재가 주장하는 '클린 베이스볼'과 다소 거리가 먼 행보였다. 신중하게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상벌위원회에서도 답답한 결정만 나오곤 했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KBO리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선수와 구단에 끝까지 많은 관심을 보내준 팬들과 선수단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을 받아도 KBO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상벌위원회라면 잘못을 저지른 선수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최근 배트로 폭력을 행사한 선수에게 36경기 출전 정지라는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선수단 관리를 책임져야 하는 구단에게는 엄중 경고가 전부였다.

이제야 세상에 알려진 3년여 전의 사건이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은, 야구 팬으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이 진심으로 리그 발전을 생각한다면 이런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승부조작' 이태양·문우람 기자회견 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승부조작' 이태양·문우람 기자회견 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트 폭행 사건이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 10일이다.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으로 KBO에서 영구 실격 처분을 받았던 이태양과 문우람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된 내용은 승부조작 건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지난 2015년 이태양은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 문우람은 브로커와 이태양 사이에서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아 선수 자격을 잃었다. 하지만 문우람은 이 자리에서 승부조작 건과 별개로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문우람은 2015년 5월 한솥밥을 먹고 있었던 팀 선배로부터 야구 배트로 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뇌진탕 증세가 왔다고 밝혔다. 브로커와 친해지게 된 계기가 팀 선배에게 폭행을 당한 뒤 위로를 받는 과정이었다고도 설명했다. 당시 얼굴이 부어올라 경기에도 나갈 수 없었다는 게 문우람의 주장이었다.

기자회견 후 문우람이 언급한 베테랑 야수가 히어로즈 이택근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택근은 지난 19일 KBO 상벌위원회에 출석해 "두발 상태를 지적했는데 문우람이 따르지 않아 폭력을 행사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이 때문에 내가 비난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당시 심각한 상황의 폭행은 아니었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다. 또한 나 때문에 우리 팀이 선-후배간 폭행을 당연시 하는 팀으로 오해 받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심각한 폭행이 아니었다"? 사태 심각성 인지 못 한 히어로즈

무엇보다 야구 팬들을 화나게 한 것은 히어로즈 측의 입장 발표였다. 히어로즈 구단은 2015년 5월 이택근과 문우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구단에서 인지했으나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택근과 문우람의 갈등을 구단에서 인지했으나,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6가지 있다. 첫째, 이택근이 2012시즌부터 4년째 팀의 주장으로 팀의 기강 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위치였던 점. 둘째, 선수단 분위기 쇄신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외부(구단)개입보다는 선수단 자체의 자정 능력으로 갈등을 회복시키는 것이라 판단함.

셋째, 구단의 적극적 개입에 의한 징계 조치를 했을 경우 이택근-문우람의 갈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수단 전체와 문우람의 갈등으로 확대될 것을 고려 함.
넷째, 이택근-문우람이 이 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더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점. 다섯째, 당시 이택근이 201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벽을 넘기 위해 선수단에 단합과 긍정적 분위기를 강조하며, 주장이자 최고 고참선수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점.

마지막으로 개성 강한 선수들이 모여 하나의 팀으로 구성된 프로야구 선수단 특성을 고려한다면 징계만으로 해결했을 경우 팀을 위해 누구도 문제를 지적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란 염려가 있었음.

당시 사건을 공개하지 않았던 구단의 판단이 부적절 했다고 판단되어 상벌위원회에서 징계처분을 할 경우 겸허히 수용할 예정. 이번 구단 자체 조사를 통해 2015년 5월 이후 선수단에서는 어떤 폭행건도 발생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고, 향후에도 유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 면담 등을 실시할 예정. - 히어로즈가 KBO에 제출한 '문우람 폭행에 관한 조사 보고서' 중 일부"


그러나 이를 하나씩 따져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첫째로 이택근이 2012년부터 4년째 주장을 맡아 팀의 기강 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위치였다는 점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선수였다면 더욱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하지 않을까. 팀의 기강 만큼이나 선수의 건강과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택근이 상벌위원회에서 한 "심각한 폭행이 아니었다"는 발언은 그가 아직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선수단 분위기 쇄신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구단의 개입이 아니라는 히어로즈의 변명도 터무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직접적으로 폭행을 당한 일이다. 구단이 선수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히어로즈는 적극적으로 이택근을 징계 했을 경우 이택근과 문우람의 갈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수단 전체와 문우람의 갈등으로 확대될까 우려했다고 했다. 이는 폭행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구단은 선수들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물론 폭행 이후 두통을 호소한 문우람은 구단 지정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으며, 이택근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문우람과 문우람의 부친을 만나 직접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뇌진탕을 일으킬 정도의 심각한 폭행이 사과 한 마디로 무마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택근의 폭행 사실을 인지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히어로즈 구단의 판단도 상식적이라고 볼 수 없다. 후배 선수에게 올바르지 못한 행위로 충격을 가한 이택근, 3년 넘게 쉬쉬하고 있던 히어로즈 모두 중징계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약한 징계... 야구팬들이 분노하는 이유
 
이택근 문우람 폭행사건 상벌위원회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넥센 히어로즈 이택근이 3년 전 같은 팀 후배인 문우람을 폭행한 사건과 관련해 상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 이택근 문우람 폭행사건 상벌위원회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넥센 히어로즈 이택근이 3년 전 같은 팀 후배인 문우람을 폭행한 사건과 관련해 상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KBO는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무시하고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19일 오후 3시 KBO 회의실에서 개최된 상벌위원회는 야구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3호 및 제152조 '유해행위의 신고 및 처리'②항에 의거해 이택근에게 36경기 출장 정지 제재를 부과했다. 히어로즈 구단은 선수단 관리에 소홀했고 해당 사안을 KBO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중 경고 제재를 받았다.

상벌위원회는 "이 사안이 KBO리그가 추구하는 클린 베이스볼에 반하는 행위이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이 제재했다"고 밝혔다. 36경기 출장 정지가 지나면 이택근은 다시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고 히어로즈는 큰 어려움 없이 내년 시즌을 치를 예정이다. 사실상 이번 사건으로 히어로즈가 떠안는 불이익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36경기는 정규 시즌 144경기의 4분의 1 수준이다. 폭행을 가한 선수인 점을 감안하면 중징계라고 보기 어렵다. 과거의 일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클린 베이스볼에 반하는 행위임에도 상벌위원회의 최종 결정은 미흡해 보인다. 이번 결정은 또 한 번 야구 팬 모두를 실망시켰다. 즐겁게 보내야 할 연말에 또 다시 야구 팬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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