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넌> 포스터

▲ <더 넌>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1952년 루마니아의 외딴 곳에 위치한 수녀원에서 젊은 수녀가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티칸에선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버크(데미안 비쉬어 분) 신부와 아이린(타이사 파미가 분) 예비 수녀를 파견한다. 두 사람은 젊은 수녀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식료품 배달부 프렌치(조나스 블로켓 분)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 곳엔 강력한 악령의 기운이 가득하다.

지금 할리우드는 '유니버스(세계관)'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마블 스튜디오가 자사의 영화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승승장구하자 DC 코믹스는 'DC 확장 유니버스'로 맞섰다. 미라와 늑대인간 등 클래식 몬스터를 모은 '다크 유니버스', 킹콩과 고질라를 묶은 '몬스터 유니버스'도 나타났다. 프랜차이즈를 변형한 유니버스는 영화 제작사들에게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는 젖줄이 되었다.

21세기 가장 성공한 호러 프랜차이즈인 <쏘우> 시리즈를 만든 제임스 완 감독은 호러 장르에서도 유니버스가 가능함을 재빨리 간파했다. <컨저링>(2013)이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영화 속에 나온 인형을 주인공으로 <애나벨>(2014)을 내놓으며 '컨저링 유니버스'를 구축했다. <컨저링 2>(2016)과 <애나벨: 인형의 주인>(2017)은 컨저링 유니버스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었다.

악령 발락의 기원을 찾아가는 <더 넌>
 
 영화 <더 넌>의 한 장면

▲ <더 넌>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컨저링 유니버스의 신작 <더 넌>은 <컨저링 2>에 나온 수녀의 모습을 한 악령 '발락(보니 아론스 분)'을 소재로 삼았다. 제임스 완은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애나벨><애나벨: 인형의 주인>을 쓴 게리 도버만이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메가폰은 <할로우-죽음의 제물>(2105)로 성공적인 호러 데뷔를 한 코린 하디가 잡았다.

코린 하디 감독은 제임스완과 게리 도버만이 완성한 각본을 읽었을 때 컨저링 유니버스 작품들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신비한 것을 조사하는 전개가 마치 <인디아니 존스>의 모험 같았고, 고전적인 고딕 호러가 느껴졌다고 한다. 성장기에 보았던 해머 스튜디오의 호러도 생각났고 다리오 아르젠토나 루시오 풀치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호러도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더 넌>엔 과거 호러 영화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더 넌>은 악령 발락의 기원을 찾아간다. 캐릭터만 존재하던 발락에서 출발하여 여러 인물을 만들고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서사를 입혔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악령과 싸우는 신부가 나오는 <엑소시스트>와 크게 다를 바 없어 신선함과 거리가 멀다. 버크 신부와 아이린 수녀가 지닌 결함은 주위를 떠도는 유령,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이상한 꿈과 연결된다. 하지만,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논리가 부재하기에 그저 깜짝쇼를 위한 부속품처럼 느껴진다.

<드라큘라>를 연상케 하는 고딕 호러로 충만
 
 영화 <더 넌>의 한 장면

▲ <더 넌>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서사는 아쉬움을 주는 데 반해 공간, 촬영, 배우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오래된 성, 어두운 복도, 기도를 드리는 공간, 바람에 춤을 추는 촛불, 자욱하게 깔린 안개,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 등 <드라큘라>를 연상케 하는 고딕 호러로 충만하다. 배경마저 루마니아다. 몇 장면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1992)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미지엔 <나이트 메어>의 영향이 배어있다. 말하자면 <나이트 메어>의 환상과 <드라큘라>의 고딕 문법으로 다시 쓴 <엑소시스트>가 <더 넌>인 셈이다.

한 컷을 최대한 길게 찍는 것은 <컨저링>만의 촬영 스타일이다. 코린 하디 감독은 이런 전통을 계승하면서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각각 다른 카메라를 사용하는 차별화도 시도한다. 아이린 수녀의 장면에선 흔들림이 적은 스테디캠을 사용하여 안정감을 준다. 버크 신부의 관점에선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하여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전달한다. 인물을 중심으로 360도 회전하는 장면이나 빛과 어둠을 포착하는 연출도 눈여겨보길 추천한다.

데미안 비쉬어와 타이사 파미가의 연기도 좋다. <이민자>에서 불법 이민자 역으로 아카데미상을 비롯한 다양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던 데미안 비쉬어는 자책에 시달리는 신부를 무리 없이 소화한다. 타이사 파미가는 영화에서 보석 같은 존재다. <컨저링>의 주역인 로레인 워렌 역의 베라 파미가의 실제 동생인 타이사 파미가의 캐스팅한 건 향후 컨저링 유니버스의 흥미로운 포석으로 작용될 듯싶다.
 
 영화 <더 넌>의 한 장면

▲ <더 넌>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더 넌>은 이야기는 허술하기 짝이 없으나 시각적인 효과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한다. 서사적인 면과 시각적인 면을 더하고 뺀 한 편의 공포 영화로서의 총량은 아슬아슬하게 (볼 만한 영화) 합격선을 넘는 수준은 된다. 그리고 <컨저링 2>의 한 장면으로 문을 열고 마지막엔 <컨저링>의 한 장면으로 문을 닫으며 유니버스의 역할을 수행한다. 컨저링 유니버스 가운데 가장 낙제점으로 말이다.

현재 컨저링 유니버스 작품들은 북미에서 1억 달러 이상 흥행을 기록하며 <쏘우> 시리즈와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를 잇은 21세기 호러 프랜차이즈로 자리를 굳혔다. <더 넌>은 북미에서 시리즈 사상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컨저링 유니버스는 곧 <애나벨 3>과 <컨저링 3>을 선보일 예정이다. <더 넌>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속편이 나올 것이다. 발락 수녀를 이렇게 보내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더 넌>의 완성도를 보면 컨저링 유니버스의 미래에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제임스 완이 <아쿠아맨>을 연출하느라 <더 넌> 각본에 많은 공을 못 들였다고 애써 자위해 본다. 다음번엔 좋을 거라 기대하면서.
더 넌 코린 하디 제임스 완 타이사 파미가 데미안 비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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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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