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 벤투 감독 입국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한국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 벤투 감독 입국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축구에 '벤투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9월 코스타리카-칠레와의 2연전을 앞두고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소집 훈련에 돌입했다. 4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멤버 8명이 가세하며 전체 24명 선수들이 모두 모였다. 파울루 벤투 신임 감독 체제 출범 이후 대표팀의 첫 완전체 소집이다.

벤투 감독은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본선까지 향후 4년 간 이어지게 될 한국 축구의 '장기 프로젝트'를 이끌게 됐다.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이 열리는 4년 주기를 홀로 완주한 감독은 아직까지 전무하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파-외국인을 넘나들며 잦은 감독교체로 인한 혼란과 한국 축구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대표팀을 재건해야 할 적임자로 낙점된 벤투 감독의 어깨는 무겁다.

벤투 감독 개인으로서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직 이후 최근 몇 년간 가는 팀마다 단명하며 지도자 커리어의 하향세를 걷고 있었던 만큼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재기를 위한 마지막 기회나 다름 없다.

벤투 감독이 어떤 전술을 쓰고 어떤 선수를 중용하느냐를 따지기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합리적인 대표팀 운영의 시스템 구축이다. 이는 단지 벤투 감독 개인의 노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변을 둘러싼 축구협회와 K리그, 미디어, 팬들이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호의적이지 않았던 여론, 그러나 히딩크를 생각한다면

사실 벤투 감독이 처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될 당시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선임 위원장은 직접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해외의 유명 감독들을 대거 접촉하며 영입을 타진했으나 금전적인 요구와 아시아 축구의 낮은 위상 등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로 모두 무산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유력한 협상 후보도 아니었고 최근 거쳐간 팀에서 3년 연속으로 경질 당하며 커리어가 다소 주춤하던 벤투 감독이 갑작스럽게 선임되자, 눈높이가 잔뜩 높아진 일부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온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전임자들의 흥망성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거스 히딩크 감독도 한국에 처음 부임할 무렵에는 유럽에서 한물간 감독 취급을 받은 바 있다. 히딩크는 1990년대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과 국가대표팀을 맡아 큰 성공을 거뒀지만 이후로는 레알 마드리드-발렌시아-레알 베티스 등에서 번번이 실패를 맛보며 커리어가 추락한 상태였다. 2001년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 감독으로 취임해 처음 유럽 무대를 벗어난 도전에 나선 히딩크 감독은 아시아 팀 최초로 4강 신화를 쓰며 세계 축구의 주류로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은 과소평가 받는 것과 달리 엄연히 커리어 면에서는 역대 외국인 감독 중 히딩크 다음으로 손꼽힐만한 인물이다. 월드컵과 유럽 선수권 등 굵직한 대회를 경험했으며 나이(49세)도 아직 젊다. 포르투갈은 스페인·독일·프랑스 등과 더불어 유럽의 손꼽히는 축구 강국이고 선수 육성과 훈련 방식에서 선진화된 현대 축구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2002년의 히딩크처럼 전문성을 갖춘 코치진까지 대거 동행한 '벤투 사단'이 그간 수준 높은 지도방식에 목말랐던 국가대표팀의 갈증을 충족시켜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벤투 감독에게는 자신의 축구철학과 리더십을 증명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히딩크 감독이나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팀에서 몇 안 되는 성공사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히딩크 감독은 초창기 축구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대패하며 '오대영' 감독이라는 조롱을 당했고, 월드컵을 앞둔 1월에 북중미 골드컵에서 부진하자 경질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도 지역 예선을 거치며 잦은 무승부와 지루한 경기력으로 '허무축구'라는 별명을 얻었고, 중국과의 동아시안컵 경기에서 사상 최초로 0-3 참패를 당하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목표는 월드컵'이라는 초심을 지켜 흔들리지 않았고 본선에서 훌륭한 경기력으로 반전에 성공했다. 만일 이들이 여론으로부터 한창 비난받고 흔들리는 시절에 경질되었거나, 혹은 초심을 잃고 자신의 축구철학을 포기했다면 월드컵의 성공신화는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본프레레나 베어벡, 신태용 감독 등은 전임자들에 비하여 그리 화려하지 않은 커리어 때문에 부임 초기부터 은근히 무시를 당했고 몇몇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일찌감치 '레임덕'에 휘말려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벤투 감독에게도 당장 눈앞의 몇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한국축구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할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벤투 감독을 무조건 '과보호'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감독의 권한과 철학에 대해서는 당연히 존중해야겠지만, 만일 대표팀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에 걸맞는 비판 혹은 견제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혈질 성격과 거친 언행, 우려되는 부분이지만

손흥민-황의조 화기애애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 황의조가 4일 오후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가볍게 뛰며 몸을 풀고 있다. 대표팀은 오는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코스타리카와 친선경기를 치른다. 2018.9.4

▲ 손흥민-황의조 화기애애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 황의조가 4일 오후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가볍게 뛰며 몸을 풀고 있다. 대표팀은 오는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코스타리카와 친선경기를 치른다. 2018.9.4 ⓒ 연합뉴스


벤투 감독은 내년 아시안컵과 카타르월드컵 지역예선을 거치며 한국대표팀 감독으로서 시험무대에 오르게 된다. 부임 이후 약 5개월 만에 나서야 하는 아시안컵에서 사실 우승까지 기대하기는 힘들 수 있다. 혹은 정반대로 그 뒤에 이어질 아시아 예선에서 약팀들을 상대로는 손쉬운 승리를 챙기며 한동안 순항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나치게 일희일비하는 것은 금물이다. 결국 지금 당장보다 한국축구가 4년 뒤 카타르월드컵에서 얼마나 훌륭한 팀이 되어가는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켜보는 게 더 중요하다.

한편으로 벤투 감독의 언론대처 능력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정도를 제외하면 역대 대표팀 감독들은 미디어를 대처하는 기술이 그리 세련되지 못했다. 최근 대표팀을 거쳐간 조광래-최강희-홍명보-슈틸리케-신태용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설화'로 크고작은 곤욕을 치렀고 결국 팬들의 지지가 흔들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이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출신 감독들이 흔히 그러하듯 다혈질적인 성격과 거친 언행으로 간혹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있었다.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와 중국 충칭 감독 시절 선수단과 갈등을 빚는가 하면 심지어 언론에서 선수들을 대놓고 비난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대표팀 감독의 언행과 태도에 더욱 민감한 한국에서는 결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장면이다. 국내 언론과는 아직 취임한지 얼마되지않아 딱히 이슈가 될일이 없었지만 앞으로 한국대표팀을 이끌면서 크고 작은 갈등에 직면할 시기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또한 축구대표팀은 항상 국민적 관심을 받지만 여론의 '극단주의적인 양면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대상이기도 하다. 조금 잘하면 영웅처럼 떠받들다가 조금 부진하면 금새 역적 취급을 받는 것이 대표팀 감독의 숙명이다. 대표팀을 향한 응원과 비판은 항상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벤투가 진정으로 '제2의 히딩크'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감독 개인의 능력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계 관련 종사자들과 팬들 전체가 함께 성숙해져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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