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투저' 시대의 프로야구에 토종 선발투수들의 가치는 오히려 치솟고 있다. 한 시즌 10승 이상-정규 이닝을 보장하는 투수 정도만 되어도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 리그에 그만큼 좋은 투수가 부족하다 보니 구단 입장에서는 다소 비싸더라도 검증된 투수를 구하기위하여 돈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 시즌을 놓고보면 고액 연봉을 받는 투수들이 과연 얼마나 몸값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국내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로서 대박을 떠트렸던 투수들의 현 주소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고액 FA 차우찬-윤석민의 부진

차우찬 '안도의 한숨' 20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리그 한화 대 LG 경기. 6회 초 2사 만루 위기 상황을 무실점으로 막은 LG 선발투수 차우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2018.5.20

▲ 차우찬 '안도의 한숨' 20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리그 한화 대 LG 경기. 6회 초 2사 만루 위기 상황을 무실점으로 막은 LG 선발투수 차우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2018.5.20 ⓒ 연합뉴스


국내 프로야구 FA 투수 최고액은 LG 차우찬이다. 2016년 12월 삼성에서 FA자격을 얻어 이적하면서 LG와 4년 95억 원 초대박 계약을 터뜨리며 부러움을 샀다. 차우찬은 LG에서의 첫 시즌 10승에 3.4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그럭저럭 제 몫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적 2년 차인 올시즌 차우찬은 7승 8패 평균자책점 6.17을 기록하며 부진하다. 시즌 중반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 듯도 했지만 최근 4번의 등판에서 모두 대량 실점을 기록해 평균자책점이 다시 치솟았다. 결국 다리 부상까지 겹친 차우찬은 끝내 2군으로 내려갔다.

차우찬의 부진은 예상 가능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10년 간(2006~2016년)까지 통산 평균자책점 4.44를 기록했으며 2015년 13승이 한 시즌 최다 승수였다. 풀타임 선발로 뛴 경험도 2015, 2016 두 시즌 뿐이었다.

역대 투수 FA 최고액 2위인 윤석민(KIA)는 2015년 4년 90억 원에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에서 친정팀 KIA 타이거즈로 유턴했다. 이적 첫 해 선발투수에서 임시 마무리로 전향했던 윤석민은 30세이브를 올리며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이후 2년간 부상으로 1군 무대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FA 계약의 마지막 해인 올 시즌, 윤석민은 시즌 중반 이후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선발로 나선 3경기에서 16이닝 16실점으로 3연패를 기록한 뒤 다시 불펜으로 전향했다. 그나마 마무리로 보직을 옮긴 뒤에는 5세이브를 기록하며 살아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에이스' 투수의 역할을 기대한 것에 비하면 지난 4년간 윤석민의 성적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올해 아쉬운 성적, 장원준-윤성환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

장원준 '답답한 마음'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두산 대 kt 경기. 두산 선발 장원준이 2회초 상대 공격을 막아낸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2018.6.14

▲ 장원준 '답답한 마음'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두산 대 kt 경기. 두산 선발 장원준이 2회초 상대 공격을 막아낸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2018.6.14 ⓒ 연합뉴스


한때 투수 '모범 FA'의 대명사로 꼽혔던 두산 베어스 장원준(4년 84억 원, 역대 4위)과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4년 80억 원, 역대 6위)도 올 시즌에는 나란히 고전하고 있다. 장원준은 올해 15경기에서 3승 6패 평균 자책점 10.48을 기록하며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윤성환은 3승 7패 평균자책점 7.35에 그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나란히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두 선수는 FA 계약을 맺은 후 3년 간 각각 41승(장원준), 40승(윤성환)을 거두며 팀에 기여했다. 큰 기복 없이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켜주는 안정적인 선발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투수들이기에 올해의 부진은 더욱 뼈아프다.

삼성 라이온즈 우규민(4년 65억 원)은 선발 투수에서 불펜으로 전환한 케이스다.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첫 해 우규민은 7승 10패, 평균자책점 5.21로 부진했다. 올해부터 불펜 필승조로 보직을 바꾼 우규민은 1승 8홀드 평균자책점 3.44로 나름 제몫을 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우규민은 LG 시절에도 선발과 마무리까지 두루 소화한 경험이 있는 투수다. 그러나 당초 삼성이 우규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선발진 보강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활용은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다.

고액 FA 투수들 중 제 몫을 하고 있는 투수들도 있다. SK 와이번스 김광현(4년 85억 원)과 한화 이글스 정우람(4년 84억 원)이 그 주인공이다. 김광현은 올 시즌 8승 4패 평균자책점 2.61를 기록 중이다. 2016 시즌 직후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김광현은 1년여 만에 다시 마운드로 복귀했으며 현재 철저하게 이닝과 투구수 관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고액 FA 중 유일한 불펜 투수인 정우람은 올 시즌 4승 2패 29세이브 평균 자책점 1.91를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라고들 말한다. 투수들이 오래 마운드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최근 부진에 빠진 투수들을 두고 지난 몇 년간 이미 많은 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성환과 장원준은 풀타임 선발로 자리잡은 이후 큰 부상 없이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킨 만큼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선발 투수들이다. 차우찬, 윤석민은 커리어 내내 팀 사정에 따라 선발과 불펜을 오르내리며 투혼을 발휘했다. 고액 FA 선수들의 부진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또한 앞으로 부상 혹은 혹사 경험이 있는 투수와 FA 계약을 맺으려는 구단들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비싼 비용을 들이고도 부진 혹은 부상의 위험 부담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액 FA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엇갈린 성적표는 올 시즌 이후 투수 FA 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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