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 SOOFILM


영화 <허스토리>에서 배우 김희애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문정숙역을 맡아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열연을 펼친다. 지난 6월 22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시사회 후 진행된 관객과의 만남에서 김희애는 "부산 사투리 배우는 것이 일본어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부산사람을 사투리 선생님으로 삼아 전화로 매일 사투리 연습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며 부산억양을 배웠다고 했다.

시사회를 마친 후 관객들과의 만남을 가지던 김희애와 김해숙은 예고없이 등장한 한 사람으로 인해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바로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의 실존인물인 김문숙씨가 무대 위로 등장을 한 것이다.

서로가 첫 만남이라는 김희애와 김해숙은 잠시 동안 관객과의 대화조차 잊고 아담한 체구의 노인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관객석도 눈물바다가 됐다. 아담하지만 꼿꼿한 모습의 노인의 연세는 올해로 무려 92세, 1927년생이다.

그 나이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정한 김문숙씨는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부산 협의회'회장으로 아직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26일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부산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선생님, 영화 보고 어떠셨어요?"
"놀랐어, 김희애씨 분장과 스타일이 젊은 날 나와 똑 같았어."

그녀의 삶과 영화는 얼마나 닮아있을까?

 영화< 허스토리> 실존 모델 김문숙 회장

영화< 허스토리> 실존 모델 김문숙 회장 ⓒ 추미전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길도 없는 거친 풀숲을 헤치며 길을 만들어온 그녀. 어느 날 뒤돌아보니 자신이 걸어온 길은 역사 속에 뚜렷한 하나의 길이 돼 있었다. 그리고 90이 넘은 이제야 그녀가 걸어온 길에 관심 가진 젊은 감독이 그녀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 그녀의 삶과 영화는 얼마나 닮아있을까?

영화 속 김희애는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이다. 1990년 어느 날 위안부가 처음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자 여성경제인연합회회원들이 그럴듯한 명분을 위해 위안부를 돕기로 결정한다. 문정숙(김희애)은 자신의 여행사 사무실에 위안부 신고 전화를 설치한다. 그런데 실제 신고를 해 온 위안부들의 삶을 만나면서 문정숙(김희애)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에 눈을 뜨고 놀라움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

위안부에 대한 진실 파헤치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녀는 신고를 해온 할머니들 가운데 일본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하겠다는 10명을 이끌고 일본정부에 직접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그리고 무려 6년에 걸쳐 23번이나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재판을 한다. 그녀는 자신이 여행사를 하며 모은 돈을 관부재판 비용에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6년에 걸친 재판 끝에 일본에 제기한 위안부 재판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다. 영화에서 후배 여성기업가가 이제 그만 하라고, 이제 어느 정도 명분도 쌓았으니 본업인 여행업에나 충실하라고, 대체 왜 그렇게까지 위안부 일에 목숨을 거느냐고 말리자 문정숙은 말한다.

"부끄러워서 그런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나만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부끄러워서..."

그 대사는 실제 김문숙의 마음이라고 한다. 1927년생인 김문숙은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과 동년배다. 그러나 그녀는 위안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대구의 괜찮은 집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명문 경북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대학까지 졸업했다.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교육을 받고 신식여성으로 길러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위안부 이야기를 비롯해 주변에서 위안부로 간다는 지인들의 소식을 듣고는 중학교 교사 자격증을 따서 교사를 하며 그 시기를 모면했다. 해방이 된 뒤에는 실제 여행업에 종사했다. 부산 여성 경제인 1호인 그녀는 사업을 하며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1970년대 일본인들이 대거 기생관광을 오는 것을 보고 반대운동에 나섰다가 본격적인 여성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 후 여성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10년에는 제9회 유관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문숙이 헤쳐 온 고난의 삶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전시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전시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 ⓒ 추미전


 관부재판 당시 일본 시모노세키 거리행진을 하는 김문숙 회장과 
위안부 할머니들

관부재판 당시 일본 시모노세키 거리행진을 하는 김문숙 회장과 위안부 할머니들 ⓒ 추미전


영화의 시점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무렵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여행사에 전화를 설치했다는 영화의 설정과는 다소 다르지만 그녀는 자신이 활동하던 여성운동 사무실에 위안부 신고 전화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전화 덕분에 그녀는 또 한 번 삶의 골목을 돌아 또 다른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엄연히 동시대를 살았지만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고통 가운데 내팽겨쳐진 위안부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국가가 저지른 폭력 앞에 희생양이 된 그들의 삶을 누구도 감싸 안으려 들지 않는 사회에 분노한 그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껴안고 함께 울분을 토한다. 이후 영화가 보여주는 문정숙(김희애)의 삶은 그대로 김문숙이 헤쳐 온 고난의 삶이다.

1992년 그녀는 일본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소장을 접수한다. '부산 위안부 근로 정신대 대일 사죄와 배상 청구소송'. 이후 실제 자비를 들여 할머니들을 이끌고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재판을 하기 시작하자 일본에서도 비로소 서서히 위안부 문제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김문숙과 할머니들을 지지하는 일본인들이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후쿠야마 연락회 '라는 후원모임을 구성하고 13명의 일본 변호사들이 무료 변호인단이 꾸린다. 이들은 위안부할머니들이 재판을 위해 일본에 올 때면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10명의 할머니들을 이끌고 일본 시모노세키까지 가 법정에 선 그녀는 영화 속 김희애처럼 유창한 일본어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변한다. 재판 하루 전날, 김문숙씨는 항상 '울지 말고 증언할 것'을 할머니들에게 요구했지만 할머니들은 법정에서는 눈물부터 쏟았다.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어? 영화에서처럼 온 몸에 칼자국이 난, 상처투성이인 할머니들이... 통곡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재판부에 전달하는 일을 했지. 내가 "

되돌릴 수 없는 인생에 한탄하며 절규하는 할머니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김문숙씨는 가장 효과적으로 번역해 재판부에 들려주었다. 어느날은 재판부가 할머니들의 눈물과 김문숙씨의 통역을 듣고 영화에서처럼 눈물을 쏟기도 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열정적이고 뜨거운 순간이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결과가 어떨지는 예상할 수 없었으나 단지 내딛는 한걸음이 옳은 것이면 앞뒤 재지 않고 내디뎠던 날들이었다. 그녀는 '관부재판' 기록을 담은 책을 펴내기도 했다.

92세가 된 지금까지 매일 출근하는 그녀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전시된 관부재판 자료들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전시된 관부재판 자료들 ⓒ 추미전


'관부재판'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판 가운데 유일하게 원고들이 일부 승소한 재판이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뒤에도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4년 관부재판 기록을 비롯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든 자료를 모아 사비로 '민족과 여성 역사 자료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92세가 된 지금까지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 관람객이 오면 열정적으로 위안부의 역사를 소개한다.

"위안부 역사, 이제 다음 세대의 주역인 젊은이들이 알아야지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고 있어요. 그 역사를 아는 누군가는 계속 말해야지요.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를 할 때까지는 위안부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어요."

평생을 '행동하는 여성'으로 살아온 그녀, 92년 만에 비로소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당하고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온 그녀가 바꾼 역사의 한 페이지가 영화 <허스토리>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과 여성 역사자료관'을 찾아오길 기다리며 그녀는 오늘도 사무실 한 켠 책상을 지키고 꼿꼿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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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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