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A조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개최국 러시아가 배정된 조라는 점이다. 가장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는 홈 팀의 이점을 안고 있으며, 개최국의 선전 여부에 따라 대회의 흥행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

이전까지 20번의 월드컵 중 개최국의 우승 사례가 6회(1930 우루과이, 1934 이탈리아, 1966 잉글랜드, 1974 서독, 1978 아르헨티나, 1998 프랑스)나 될 정도로 개최국에 대한 관심과 그 성원에 대한 성적 향상은 영향이 크다. 그런 만큼 개최국과 상대하는 팀들이 어떤 팀들이 되느냐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진다.

이번 월드컵에서 개최국 러시아를 상대하는 국가들은 일정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아시아), 이집트(아프리카) 그리고 우루과이(남아메리카, 우승 2회)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개막전에서 맞이하여 5-0 대승을 거둔 덕분에 16강 진출이 가장 유력한 상태다.

28년 만에 진출한 월드컵 본선, 첫 출전한 EPL 득점왕 살라

A조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팀은 이번 월드컵 출전이 통산 2번째인 이집트다. 고대 문명 발상지이기도 하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고도로 발전했던 역사를 지닌 이집트는 월드컵 역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먼저 출전한 이력이 있다(1934 이탈리아).

또한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 내 국제대회인 네이션스컵에서도 가장 많은 7회 우승을 차지하며 축구에 있어서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이력을 뽐내고 있다. 최근에도 2017년 가봉에서 열렸던 네이션스컵 대회에서 준우승(상대 카메룬)을 차지했으며, 네이션스컵 예선을 겸하여 치르는 월드컵 예선도 오랜만에 통과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대륙을 벗어난 월드컵에서는 그렇게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34년 월드컵 본선은 모두 토너먼트로만 치렀기 때문에 이집트는 당시 첫 경기에서 헝가리에 2-4로 패하고 탈락했다. 이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 2무 1패로 F조 4위에 그친 이집트는 아직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가 없다.

'침착하게'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흐가 패널티킥을 성공하고 있다.

▲ '침착하게'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흐가 패널티킥을 성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집트 대표팀이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활약하는 슈퍼 스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가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1992년 6월 15일 생인 살라는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 클럽에서 활동했고, 2012년 FC 바젤(스위스)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살라는 첼시(잉글랜드), ACF 피오렌티나(이탈리아), AS 로마(이탈리아)를 거쳐 지난 시즌부터 리버풀(잉글랜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에 첫 발을 디딘 살라는 첫 시즌에 32득점을 기록하며 해리 케인(토트넘,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30득점)을 제치고 EPL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해외축구 마니아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정도로 살라는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랬던 만큼 살라가 출전한 이집트 대표팀에 대한 관심도 컸고, 살라가 첫 출전하는 월드컵에서 어떤 활약을 보일지 큰 관심을 보였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의 치명적인 부상, 1차전 출전하지 못한 살라

살라의 활약 속에 그의 소속 클럽인 리버풀은 2017-2018 EPL 리그 4위에 올랐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클럽이자 프리메라리가(스페인) 최다 우승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였다.

그러나 결승전에 출전했던 살라는 전반 28분 볼 다툼 과정에서 세르히오 라모스와 몸싸움을 하다 팔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왼쪽 어깨가 흉부를 향해 심하게 꺾였고, 일단 버티고 뛰던 살라는 결국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교체되고 말았다.

교체되는 과정에서 살라는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라와서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점과 눈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출전에 대한 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보이며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검진 결과 구단 검진에서는 어깨 탈구로 전치 16주 진단을, 이집트 축구협회 측에서는 어깨 인대 염좌 진단을 발표했다.

일단 살라는 생애 첫 월드컵 본선 출전을 목표로 재활에 몰두했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으로 인하여 우루과이와의 A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는 끝내 벤치를 지켜야만 했다. 살라 없이 경기에 나섰던 이집트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1점 차로 석패했다.

살라의 현재 상황은 마치 챔피언스리그 결승 상대 팀의 감독이었던 지네딘 지단 전 감독(프랑스)의 처지와 비슷했다. 지단은 선수 시절이던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개최국이었던 대한민국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부상을 입는 바람에 그 여파로 조별리그 첫 2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지단이 벤치를 지키는 동안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프랑스는 서울에서 열렸던 개막전에서 한때 자신들이 식민 통치했던 세네갈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우루과이와도 득점 없이 비기며 위기에 놓이자 지단은 3차전 덴마크와의 경기에 출전을 강행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프랑스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1무 2패 무득점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2차전 출전 강행한 살라, 득점했으나 막지 못한 패배

비록 부상으로 경기력이 정상은 아니었으나, 조국 대표팀이 고전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살라는 6월 20일(이하 한국 시간) 개최국 러시아와의 2차전 출전을 강행했고, 4-2-3-1 포메이션 2선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여 풀 타임을 소화했다.

그러나 홈 팬들의 성원을 압도적으로 받고 있었던 개최국 러시아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러시아는 이집트 선수들이 살라에게 공을 패스하지 못하게 사전 차단했으며, 이집트의 수비진을 과감하게 뚫어냈다.

전반전은 득점 없이 끝났으나, 끈질기게 버티던 이집트의 수비진은 결국 한 순간 뚫리고 말았다. 후반 2분 러시아 공격진의 슛이 이집트 주장이자 수비수인 아메드 파티의 다리에 맞고 방향이 크게 바뀌는 바람에 공이 이집트 골문으로 들어갔고, 파티의 자책골로 기록됐다.

러시아는 데니스 체리셰프와 아르템 주바의 연속 득점으로 사실상 승리를 굳혔고, 부상 투혼을 발휘한 살라는 후반 28분 공격 과정에서 겨우 패널티킥을 얻어내 만회골을 기록했다. 살라의 생애 첫 월드컵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지만 이집트의 득점은 거기까지였다.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한 살라는 웃을 수 없었다. 살라의 목소리를 듣길 원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살라는 입을 열지 못하고 기자들이 몰린 믹스트 존을 그대로 빠져나갔다. '이집트의 왕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살라였지만, 살라는 월드컵에서 리그 득점왕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한 모습을 떨쳐내지 못했다.

'침착하게'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흐가 슛하고 있다.

▲ '침착하게'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흐가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희박한 16강 가능성, 사실상 탈락 위기 놓인 이집트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먼저 2패를 당했지만, 이집트의 탈락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20일 밤에 열리게 될 A조 조별리그 2차전의 또 다른 경기(우루과이 VS 사우디아라비아) 결과에 따라 이집트는 아직 실날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2승을 거둔다면, 이집트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우루과이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무승부를 기록할 경우에도 이집트는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며, 이 경우 개최국 러시아는 32개국 중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다.

한 가지 가능성은 남아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루과이를 상대로 승리하면 이집트는 3차전에서 또 한 번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만일 러시아가 3차전에서 우루과이에게도 승리하여 3승을 거두고, 나머지 3팀이 1승 2패로 맞물리기를 기대하는 방법이다.

3팀이 1승 2패로 맞물릴 경우 개막전에서 5점 차로 패배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단 16강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집트로서는 일단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최대한 많은 득점으로 승리함과 동시에, 우루과이가 나머지 2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실점으로 패배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나 이집트에게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개막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여준 경기력은 A조에서 다른 팀들에게 승점을 제공하는 역할이나 다름 없었고, 과연 월드컵 본선에 나올 만한 자격을 갖췄는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월드컵 초창기 2회 우승 경력의 우루과이를 상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84년 동안 월드컵 승리 없는 이집트, 마지막 도전은 남았다

16강 진출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지만, 살라와 이집트에게는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직 한 가지 남아있다. 총 3번의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이집트는 아직까지 본선에서 승리를 거둬본 적이 없다. 첫 출전에서 첫 승리까지 48년이 걸린 대한민국보다도 더 긴 기록이 무려 84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은 선수 개인에게 있어 출전하는 그 자체가 영광스러운 대회다. 일단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 대륙 안에서 치열한 예선을 치러야 하며, 대표팀 23명 안에 들어야 하는 내부 경쟁을 거쳐야 한다. 그 안에서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만 지키고 돌아가는 선수들도 몇 명 생길 정도다.

월드컵과 큰 인연이 없는 이집트인 점을 감안하면, 이집트에서 배출한 세기의 스타 살라에게는 월드컵 출전의 기회가 앞으로 언제 또 찾아올지 알 수 없다. 라이언 긱스(현 웨일스 대표팀 감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간판 스타로 활약하면서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본선에 출전하지 못한 슈퍼 스타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살라에게는 이번 월드컵이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월드컵에 그나마 가장 많이 출전한 나라가 나이지리아(총 6회 출전, 2018 포함) 뿐일 정도로 아프리카에서는 월드컵 본선 출전의 기회가 항상 보장되진 않는 상황이다. 살라에게 월드컵 본선의 기회가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를 두고 서로 마주보는 이웃나라 사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관련이 깊은 사이인 만큼 두 나라의 마지막 경기는 16강 진출과는 별개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살라에게도 비록 16강의 꿈은 희박하지만 선수 본인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경기가 남은 셈이다. 2017-2018 시즌 EPL 득점왕을 차지했던 본인의 개인 실력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물론 어깨 부상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지만, 살라와 이집트가 조별리그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스포츠 페어 플레이 정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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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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