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과의 월드컵 조별리그 첫 대결이 임박했다. 신태용호의 운명은 물론, 러시아 월드컵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한 판이다.

월드컵은 흔히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에게는 '축복이자 저주'로 통한다. 세계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에 나서는 것은 모든 지도자들의 꿈이지만 큰 책임에는 큰 댓가도 따르기 마련이다. 기대에 못 미친 성과를 남기게 되면 그 책임은 모두 지도자의 몫이 되고 어마어마한 국민적 비난이 따라붙기 십상이다.

역대 대표팀 감독들에게 쏟아진 비난

선수들 격려하는 차범근 차범근 전 감독이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전지훈련 캠프인 오스트리아로 출국하는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2018.6.3

▲ 선수들 격려하는 차범근 차범근 전 감독이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전지훈련 캠프인 오스트리아로 출국하는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2018.6.3 ⓒ 연합뉴스


역대 대표팀 사상 월드컵이 끝나고 계속해서 지휘봉을 유지한 사례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2010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을 이룬 허정무 감독처럼 성공을 거두고도 계약기간이 만료돼 자연스럽게 물러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월드컵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어야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차범근 감독이 대표적이다.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이자 지도자로서도 '도쿄대첩'(1997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 등의 성과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차감독은 정작 프랑스월드컵 본선무대에서 멕시코-네덜란드에 잇달아 참패하며 국민적 비난에 휩싸였다. 당시 한국 축구의 수준이 세계적인 강팀들과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언론과 여론의 무지도 한 몫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차범근 감독은 네덜란드전 0-5 참패 이후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기간 중 경질돼 중도 귀국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이끌었던 홍명보 감독 역시 '영웅'에서 '역적'이 된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월드컵 4회 연속 본선진출, 한일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 등 선수로서 최고의 업적을 남겼던 홍명보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수확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후광을 등에 업고 A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월드컵 본선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에 지휘봉을 잡은 데다 이전까지 성인팀을 지도한 경력이 전무했다는 게 패착이었을까. 많은 논란에 시달렸던 홍명보는 국가대표 감독직을 내려놓은 이후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복귀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이끈 허정무 감독은 국내파 지도자로는 유일하게 사상 첫 원정 16강의 업적을 달성하며 대표팀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러나 그 역시 평탄한 운명을 걷지는 못했다. 허감독은 재임기간 내내 A매치 무패행진 기록을 수립하는 등 성적도 좋았고 큰 과실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극성 팬들의 도를 넘어선 조롱과 악의적인 여론몰이로 고생해야 했다. 심지어 원정 16강을 달성하고도 '박지성 덕분이다' '그 화려한 멤버로 고작 16강밖에 못갔다'는 터무니 없는 폄하에 시달리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이 남아공 대회 이후 축구협회의 재계약 제의를 받고도 포기한 것은 이러한 극성 팬들의 비난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축구가 이후 조광래-최강희-홍명보-슈틸리케 등 후임 감독들 체제에서 연이은 수모를 당하며 암흑기에 시달리면서 뒤늦게 허정무 감독이 재평가 받기도 했다.

한국 축구 팬들에게 던진 베어백 감독의 한 마디

생각에 잠긴 신태용 감독 14일 오전(현지시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베이스캠프훈련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탁 스타디움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2018.6.14

▲ 생각에 잠긴 신태용 감독 14일 오전(현지시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베이스캠프훈련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탁 스타디움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2018.6.14 ⓒ 연합뉴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이끌게 된 신태용 감독의 운명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지난해 7월 이후 신태용 감독이 걸어온 행보를 보면 역대 사령탑들이 겪어야 했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표팀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월드컵 본선을 불과 1년도 남겨놓지 않은 어려운 시점에서 팀을 맡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홍명보 감독과 비슷하다. 또 부임 직후 지속적인 팬들의 불신과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허정무 감독을 연상시킨다. 만일 다가오는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일부 팬들의 예상대로 3전 전패를 하게 된다면 차범근 감독의 전철을 밟게될 수도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쨌든 신태용 감독은 한국축구를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낸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고(故) 이광종 감독의 후임으로 23세 이하 대표팀을 맡아 우여곡절 끝에 리우 올림픽 8강행을 이끌었고, 안익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난 20세 이하 대표팀을 맡아 U20 월드컵 16강행에 성공했다. 심지어 슈틸리케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난 A대표팀을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떠맡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까지 이뤄냈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첫 경기도 하기 전부터 너무 많은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과정이나 성과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신감독은 '구원투수'로서 최소한의 자기 몫은 항상 해냈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안정적으로 팀을 만들어 나갈 시간이 부족했고, 월드컵 본선 진출 이후에도 '히딩크 복귀설' 등 외부에서도 신감독의 리더십을 흔들 만한 풍파가 끊이지 않았다.

2007년 아시안컵 대표팀을 이끌었던 네덜란드 출신 핌 베어벡 감독의 어록은 지금도 종종 회자된다. 베어벡 감독은 "한국에서 대표팀의 팬이라고 자칭하는 이들은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국의 축구수준이나 리그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정작 대표팀에게는 항상 모든 경기, 모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고 착각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베어벡 감독은 2007년 아시안컵에서 3위라는 성적을 올리고 1년 만에 자진사임으로 한국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베어벡의 이 말은 역대 모든 한국축구 대표팀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고충을 대변하는 발언이 아닐까.

신태용호가 월드컵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지금까지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월드컵의 성적만으로 지도자 한 명을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나쁜 악습은 이제 끝낼 때도 됐다. 신태용처럼 수년간 한국축구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지도자를 이번 월드컵만으로 잃게 된다면 큰 손해다.

물론 신감독도 러시아에서 어느 정도는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꼭 16강 진출이 아니더라도 신태용의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신감독은 평가전에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신감독의 호언장담이 월드컵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과연 월드컵이 끝나고도 무사히 생존한 첫 감독이 될 수 있을지, 이제 운명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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