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게임 킬롤로지를 개발한 '폴'과 희생자의 아버지 '알란'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죽음의 게임 킬롤로지를 개발한 '폴'과 희생자의 아버지 '알란'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 연극열전


"당신은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나?"

연극 <킬롤로지>의 로고 속 문구다. 극의 제목 'killology'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kill'은 '죽이다'라는 뜻이고, 'killology'는 '살해학' 또는 '살인을 실행 가능하게 하거나 반대로 살인충동을 억제시키는 요소에 관한 연구'라는 뜻이다.

연극 <킬롤로지>는 영국의 유명 작가 게리 오웬의 작품으로, 제목과 로고에서부터 섬뜩함이 묻어나온다. 그런데 극 속에는 더 섬뜩한 게 있다. 바로 주인공 세 명을 둘러싼 '킬롤로지 게임'이다. 이 게임의 인기 비결은 사람을 더 잔인하게 죽이고 죽인 사람을 또 죽이는 데 있다.

작품에는 '킬롤로지' 게임으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이 나온다. 게임의 개발자인 '폴', 킬롤로지와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 아이 '데이비', 아들 데이비가 살해되자 똑같은 희생자들을 막으려는 '알란'. 이 세 사람은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각자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마치 릴레이를 하듯 독백으로 이야기를 길게 이어간다,

잔혹한 게임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들

 '데이비'가 본인의 이야기를 관객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데이비'가 본인의 이야기를 관객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 연극열전


세 명의 공통점은 모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다. 폴은 희대의 잔인한 게임을 만들어 희생자를 만들었고, 데이비는 선생님을 폭행했으며 알란은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났다. 그런데 한심하고 비난받을 법한 이 인물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이들 모두 '결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들의 죄가 밉다가도 마음 아파 위로를 해주고 싶기도 했다.

<킬롤로지>를 관람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극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어떤 극일까 설레고 궁금증이 많았다. 그런데 극을 보면서, 또 집에 돌아와서 머리가 아플 만큼 여운이 오래 남았다. 불쾌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화도 나고 답답했다. 각 인물들이 당했던 상처들이 마치 내 상처인 것처럼 떠올라서였다. 킬롤로지는 실험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독백이 양이 전체 대사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인물 한 명마다 오롯이 스스로 관객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들려줄 시간이 많다.

관객들은 지금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저 사람의 인생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2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여러 살인의 방법과 범죄 현장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또한 그 현장에서 그 아픔을 다 느낀 피해자의 심정도, 그걸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의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도, 그 게임을 개발한 사람의 솔직한 마음도 다 들여다본다. 인물들은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인생만 살지만 관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가진 세 명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듣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상생활이 잠시 힘들어졌던 것도 당연하다. 두 시간 동안 세 명의 인생을 듣고 공감하면서 힘들었기에 보자마자 훌훌 털어버릴 수는 없었다.

<킬롤로지>가 내 머릿속에 오래 남은 이유 중 연극적 요소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킬롤로지> 안에는 동물 학대, 범죄 등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는 킬롤로지 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 더 사실적으로 사건을 다루는 영화나 책들이 많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면을 통해 더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 <킬롤로지>는 연극이었기에 관객들의 가슴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 작은 극장의 무대 위에는 오로지 세 인물과 거울, 의자만 있다. 이들은 오로지 대사와 몸짓, 눈빛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인물들이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고 있다. 고통의 기억에 몸부림치며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이보다 더 현실적인 게 어디에 있겠는가. 이들이 들려주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집중하며 나는 그들이 겪었던 과거 일들을 상상해나갔다. 그러자 인물들의 말과 내 상상이 합쳐져 더 무섭고 진지하게 다가왔다.

마음 따뜻해지는 작품 <킬롤로지>

 킬롤로지 게임을 개발한 '폴'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킬롤로지 게임을 개발한 '폴'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 연극열전


<킬롤로지>를 보는 동안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런 바로 내가 이들의 결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폴, 데이비, 알란은 각자의 아픔과 결핍, 희망을 이야기 하지만 지금 세상과 현실은 아직 저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받아줄 수가 없었기에 괴로웠다. 세 사람을 힘들게 했던 '어른'들은 극 속에서도 극 밖의 현실 세상에서도 여전히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할 뿐이었다.

이렇듯 <킬롤로지>는 사회 묘사와 비판을 훌륭하게 해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는 아이들, 어른들의 기대에 맞춰가려 발버둥 치는 아이들, 부를 위해 살인자가 생기든 말든 잔인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식을 떠나는 사람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이면서도 아프게 담아냈다.

이것들은 특히 대사에 잘 묻어있다. <킬롤로지>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탄탄한 텍스트다. 길게 이어지는 독백이 자칫하면 지루해질 법도 한데 인물들이 겪은 사건 설명과 그들의 감정 이야기를 적절하게 섞어 조화로운 구성을 만들었다. 또한 인물들의 결핍을 풀어낼 때는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대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무섭고 감정이 메말라 있을 것 같은 이들의 입에서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거나 꿈꿨던 일들을 말할 때면 안타까워서 그 대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극 <킬롤로지>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따뜻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한 번도 사랑받아 보지 못했던 폴, 데이비, 알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시간이 그들에게는 조금의 위로라도 됐기를 바라본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폴, 데이비, 알란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연극 <킬롤로지>를 꼭 볼 것을 요청한다.  


덧붙이는 글 연극 <킬롤로지>는 7월 2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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