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팬서>의 포스터.

영화 <블랙팬서>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할리우드의 무수한 히어로들을 만났다. 그 히어로의 대부분은 대중문화의 핵심을 장악한 남성이었고 백인이었다. 권력의 흐름에 따른 인간사의 이치일 테고, 자의든 타의든 대중의 기호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블랙 팬서>는 흑인 히어로를 탄생시켰다. 사실 흑인이 모종의 서사와 권력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이제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인식이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블랙 팬서는 비브라늄을 가진 아프리카의 와칸다 왕국의 왕이다. <블랙 팬서>에 등장한 그의 존재는 이미 '어벤저스' 시리즈의 전작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예고됐다. <시빌 워>에서 왕자로 등장해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던 티찰라는 <블랙 팬서>에서 왕이 되고,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에 직면한다. 영화는 사실 왕자가 왕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담 같은 것이며, 미래의 시리즈에서 중요한 활약을 보일 히어로의 캐릭터를 결정짓는다. 티찰라는 왕과 흑인 히어로서의 정체성을 본편에서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착하기만 해서는 왕이 될 수 없다?

 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우주가 준 선물, 비브라늄으로 놀라운 기술 발전을 이룩한 아프리카의 와칸다는 5부족의 원로들과 왕이 다스리는 군주국이다. '묘'종의 계시로 '선택받은 자'가 보라색 허브를 섭취한 후 블랙 팬서와 최초의 왕이 된 이후에 그 지위들은 요식적인 절차로 계승된다.

지배자에게 부여된 이 특별함은 비민주적 절차에 대해 발생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감을 차단시킨다. 왕의 존재는 우주에서 날아 온 비브라늄과 같은 축복과 같다. 그러나 이 공고함을 약속받은 자리에 오른 티찰라는 자신의 내부와 외부의 도전에 직면해 '선택받은 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이 된 티찰라는 '어떤 왕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뇌한다. 선왕은 환상의 형태로 나타나 그에게 "착하기만 해서는 왕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티찰라는 혼란스럽다. 전작 <시빌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결을 관찰자 위치에서 바라보던 그는 복수가 복수를 낳는 현실에서 발을 빼고 왕국으로 돌아왔다. 티찰라의 선한 본성을 드러냈던 <시빌 워>를 생각하면, 선왕의 조언은 상당히 함축적이다.

이런 그의 앞에 진실을 알리는 도전자가 나타나, 그가 과연 착하기만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착하기는 커녕 그런 태도를 경멸하는 도전자는 목적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합리화할 수 있는 단호하고도 잔인한 사람이다. 그 이면에는 '버려졌던' 아픈 상처가 존재한다.

티찰라의 아버지는 왕국에 찾아올 혼란을 막기 위해 진실을 은폐했고, 그 과정에서 홀로 남게 된 동생의 아들인 어린 조카 은자다카를 보살피지 않았다. 사촌과 목숨을 건 대결을 통해 티찰라는 왕국의 사수하기 위해 이어지던 전통적 방법인 은닉을 버리고, 왕국의 공개를 통해 세계의 부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택하게 된다. 은폐와 방관이 낳은 결과를 체득한 주저없는 선택이다.

티찰라의 선택은 선의 의미를 '악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악의 행동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확대한다. 이것을 와칸다 왕국의 '착한 왕'이자 흑인 히어로 '블랙 팬서'인 티찰라의 정체성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세상을 구할 것인가, 적대할 것인가?

 영화 <블랙 팬서>의 한 장면.

영화 <블랙 팬서>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패니코리아㈜


세상을 구할 흑인 히어로는 백인 히어로보다 조금 더 골치가 아프다.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맨 등 백인 히어로는 개인적인 고뇌와 싸우며 세상을 구한다. 백인 히어로가 구조해야 하는 세상은 곧 그가 속한 세상이다. 반면 흑인 히어로는 개인적인 고뇌와 더불어 자신의 종족을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책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구해내야 할 세상은 때때로 자신의 종족을 속박하고 위해를 가하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티찰라가 구해야 할 세상은 기득권자로서 그가 속한 동시에 차별받는 종족으로서 그가 적대해야 할 세상이기도 하다. 이 상충되는 세상의 가운데에 선 티찰라는 어떤 방법으로 평형을 유지할 것인가.

부당한 처사에 맞서더라도 세상의 평화를 해치지 않으며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종족을 부당한 대우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늘 흑인 인권 운동계에서 온건과 급진이란 이름으로 마주하고 있을 터이다. 영화를 보며 흑인 인권 운동사의 큰 별인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영화는 이 접점에서 막강한 힘을 선을 위해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이란 예상된 결말에 이르른다. 그 과정에 방어를 위한 폭력이 내포될 것이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히어로물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티찰라가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루며 목숨을 걸고 되찾은 것이란 것을 기억해야겠지만, 그에게 이미 주어진 부와 권력이 없었다면 이런 온건한 접점이 쉽게 가능했을 것인가란 씁쓸한 의문이 남는다.

이후의 '어벤저스' 시리즈에는 현실의 바닥에서 태어나 흑인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차별을 온 몸으로 보여줄 처절한 히어로가 가식없이 보태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은자다카처럼 세상을 향한  복수에 사무친 무자비한 악당이 아닌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 온 몸으로 고뇌하며 영웅이 되는 흑인 히어로 말이다. 그러한 흑인 히어로의 고뇌는 분명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티찰라의 고뇌와 그 선택과는 질이 다를 것이다. 부자가 아닌 (세상의 다수인) 빈자가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보다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은자다카가 환영으로 만난 아버지가 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아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아버지의 처연한 눈물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현실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촉발된 아들의 선택과 끝을 바라보는 아비의 마음처럼, 흑인들로 대변된 부당한 차별은 결국 분노와 폭력을 불러 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블랙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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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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