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수들의 투지가 한국 축구 대표팀에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되살렸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8일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손흥민·문선민의 후반 연속 골에 힘입어 2대 0으로 승리했다.

온두라스는 FIFA 랭킹 59위로 61위인 한국보다는 높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강호라고 보기 어려운 팀이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멕시코나 독일, 스웨덴 같은 강호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에 홈에서 열린 평가전 승리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하지만 온두라스전 승리의 가치는 무엇보다 침체된 팀 분위기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월드컵 본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신태용호를 둘러싼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권창훈과 김민재, 염기훈, 이근호 등 최종명단 합류가 유력하던 선수들 다수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하면서 신 감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명단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온두라스전에서는 기성용, 장현수 이재성 등 일부 주축 선수들이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또 빠졌다.

이승우-손흥민의 합작 골,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대한민국-온두라스 친선경기에서 선취골을 넣은 대한민국 손흥민과 어시스트를 기록한 이승우가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8.5.28

▲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대한민국-온두라스 친선경기에서 선취골을 넣은 대한민국 손흥민과 어시스트를 기록한 이승우가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8.5.28 ⓒ 연합뉴스


다행히 대표팀에 새롭게 중용된 '젊은 피'들이 그 빈자리를 잘 메웠다. 신태용 감독은 이날 익숙한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는데 눈에 띄는 것은 '깜짝 발탁'된 이승우와 문선민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청용도 모처럼 선발 출전했고 에이스 손흥민은 처음으로 주장 완장까지 찼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역시 이승우였다. 측면에 배치된 이승우는 경기 초반부터 최전방 투톱을 이룬 손흥민·황희찬과 잦은 패스플레이 및 스위칭을 선보이며 찬스를 노렸다. 과감한 드리블 돌파 장면도 여러 차례 선보였다. 이승우와 이미 U-20 대표팀을 통하여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신태용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늘 내가 가장 원하는 악착같은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손흥민의 선제 결승골도 이승우에게서 비롯됐다. 전반을 0-0으로 비긴 한국은 후반 15분 상대의 패스 연결을 끊고 역습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이승우는 드리블로 공을 몰고 가다가 중앙의 손흥민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수비수들이 미처 달라 붙지 못해 공간이 열린 틈을 타 손흥민은 지체 없이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슈팅을 날리며 온두라스의 골문을 열었다. 이승우의 패스는 어시스트로 기록되며 A매치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손흥민에게도 대단히 의미있는 골이었다. 손흥민은 올 시즌 소속팀 토트넘에서 18골을 넣으며 맹활약했으나 지난 3월 프리미어리그 본머스전 끝으로 골 침묵에 시달렸다. 대표팀에서도 지난 3월 유럽 원정 2연전에서 골을 넣는 데 실패하며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아울러 약 두달만에 공식 경기에서 골맛을 본 것은 월드컵을 앞두고 에이스의 자신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특히 2년 전 리우 올림픽 8강전에서 손흥민과 한국축구에 큰 아픔을 준 온두라스를 상대로 뒤늦게나마 한풀이 골을 터뜨렸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후반 28분에는 문선민이 추가골을 터뜨리며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문선민은 이날 온두라스전 후반 10분 이청용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다. 초반에는 다소 긴장한 듯 팀 플레이에 녹아들지 못하고 실수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골 하나로 분위기를 바꿨다. 황희찬이 측면에서 크로스를 내준 크로스를 골대 정면에서 이어받아 침착하게 수비수 한 명을 제친 뒤 골문 구석을 갈랐다. 그동안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던 무명선수의 극적인 인생역전을 상징하는 축포같은 골이었다.

황희찬-손흥민-이승우-문선민 등은 모두 20대의 젊은 선수들이다. 신태용 감독이 추구하는 빠르고 역동적인 축구에 어울리는 스피드와 활동량을 갖추고 있다. 부상으로 낙마한 권창훈과 이근호의 공백을 대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내내 경기를 주도하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마무리한 것도 의미가 있다. 부동의 플레이 메이커 기성용이 빠졌음에도 주세종과 정우영이 안정된 볼란치를 형성하며 중원을 장악했고 김영권-정승현 등이 호흡을 맞춘 포백 수비진은 모처럼 큰 실수 없이 온두라스의 역습을 잘 차단했다.

기분 좋은 승리, 그러나 객관적 점검은 불가능

고통 호소하는 이청용 28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온두라스의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 파울당한 이청용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 고통 호소하는 이청용 28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온두라스의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 파울당한 이청용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소 아쉬운 부분은 월드컵을 대비한 평가전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졌다는 점이다. 온두라스를 맞아 기분 좋게 승리한 것은 좋지만 당초 기대했던 본선 상대팀을 고려한 '맞춤형 파트너'로서의 의미는 크지 않았다. 온두라스를 두고서는 가상의 멕시코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전망이 많았다. 멕시코는 북중미에서 가장 기술이 좋고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다. 온두라스는 전력 자체가 멕시코에 비하여 크게 떨어지는 데다 정작 뚜껑을 열자 한국전에 나선 선수들도 1.5군급에 가깝다는 평가다.

한국도 부상 선수들이 많아서 최상의 전력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지만 온두라스의 경기력은 우리가 기대했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두라스는 이날 라인을 내리고 수비수를 많이 둔 상황에서 가끔씩 역습에 나서는 경기운영을 선보였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될 팀들을 상대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지 않으니 신태용호의 약점으로 꼽히는 수비진의 기량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았다.

대표팀을 괴롭히고 있는 부상의 악몽은 온두라스전에서도 있었다.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투입된 이청용이 부상으로 55분 만에 교체되는 아찔한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이청용은 경기력 측면에서도 크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특유의 드리블 돌파와 감각적인 크로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수년간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던 이청용은 온두라스전에서 떨어진 실전감각에 대한 우려를 재확인했다. 이승우와 문선민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이들의 A매치 경험은 아직 부족하다. 대표팀의 측면 라인을 책임질 수 있는 선수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신태용 감독의 계속된 고민거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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