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포스터.

영화 <소공녀>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영화 < 1999, 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 그리고 <소공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국 독립영화라는 점, 내가 모두 괜찮게 평가했다는 점, 그리고 '광화문 시네마'라는 독립영화 제작사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광화문 시네마'는 최근 가장 유명하고 잘 나가는 제작사 중 하나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동창이었던 감독 다섯 명과 프로듀서 한 명이 뭉쳐 만들었다.

광화문 시네마가 제작한 모든 독립 영화에는 '쿠키영상'이 있다. 홍보가 쉽지 않은 독립영화의 여건상 효과적인 방법임이 분명해 보인다. 영화 홍보뿐만 아니라 제작사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또한 독립영화 제작사로서 계속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도, 스스로 계속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할 듯하다.

광화문 시네마는 6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동창 중 전고운 감독과 김태곤 감독이 공동으로 대표를 맡아 이끌어 가고 있다. 김태곤 감독은 < 1999, 면회>를 연출했고, 2년 전 <굿바이 싱글>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올랐다. 전고운 감독은 영화 <소공녀>로 장편 데뷔를 했다.

한국 사회의 현재를 잘 담아낸 영화

 영화 <소공녀> 스틸 컷. 모든 게 다 변하는 상황에서 집은 포기해도 위스키와 담배는 포기 못하는 미소.

영화 <소공녀> 스틸 컷. 모든 게 다 변하는 상황에서 집은 포기해도 위스키와 담배는 포기 못하는 미소. ⓒ CGV 아트하우스


광화문 시네마가 제작한 네 번째 영화이자 최신작 <소공녀>는 2018년의 트렌드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가리키는 신조어)'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소위 '힙한' 분위기가 묻어나지만 또 동시에 과거 경제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불안감도 곳곳에 드러난다. 그만큼 <소공녀>는 2018년 현재 한국 사회를 잘 담아내고 있다.

미소(이솜 분)는 하루 4만5000원을 버는, 3년 차 가사도우미다. 월세 30만 원 짜리 단칸방에 혼자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5000원짜리 밥을 먹고 12000원짜리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피운다. 그런데 집주인이 월세를 5만 원 올려버렸다. 그리고 2015년이 되자 담배 가격이 4500원으로 올랐다.

매일 가계부를 적는 미소는 2015년 새해 벽두 6000원 적자가 나자 포기해야 할 것을 생각한다. 그녀가 포기하기로 한 건 위스키 한 잔도, 담배 한 갑도, 빌빌거리는 남자친구도 아닌 '집'이었다. 미소는 집주인에게 밀린 월세를 청산하고 집을 나선다. 우선 대학교 때 함께 밴드 활동을 하며 즐겼던 크루 5명을 찾아가 당분간 신세를 지려 한다.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셀프 링거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베이스 문영(강진아 분), 30년 동안 중국집을 운영했던 시댁 부모님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형편없는 음식 솜씨때문에 욕을 먹고 사는 키보드 현정(김국희 분), 결혼 후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아파트를 장만해 20년 동안 돈을 갚아야 하는 이혼 위기남 드럼 대용(이성욱 분), 늦은 나이에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며 빈둥대는 보컬 록이(최덕문 분), 으리으리한 집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 같지만 남편 비위 맞추기에 급급할 뿐인 기타 정미(김재화 분), 그리고 웹툰 작가 지망생이자 현재 백수인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까지.

3포 세대, 5포 세대... N포 세대에 이르기까지

 영화 <소공녀> 스틸 컷.

영화 <소공녀>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영화의 영어 제목 < Microhabitat >은 '미소 서식환경, 미생물·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미생물·곤충을 뜻하는 '미소'인 것도 그래서일까. 미소는 "하루 일당 4만5000원과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갑, 남자친구만 있으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점들을 미뤄볼 때 미소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인물로 보인다.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취업 전선에 빨간 불이 켜졌고, 젊은이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 세대'라는 신조어 등장했다. 이후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도 포기한 '오포 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 세대'로 이어졌다.

'N포 세대'(N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하는 신조어)의 전형으로 보이는 미소는 역설적으로 이 시대 청춘이 가장 먼저 포기한 연애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집을 포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소와 한솔은 돈이 없지만 헌혈하고 받은 영화 티켓으로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한다. 미소는 숙련된 주부에게나 익숙할 법한 '가사도우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미소가 포기한 '집'은 그저 한 몸 뉘일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이다. 'N포 세대'가 포기했다는 '내집 마련'과는 전혀 다른 의미인 셈이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상황에서도 미소는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소확행'이 아닐까.

사회는 발전하는데, 우린 희망이 안 보인다

 영화 <소공녀> 스틸 컷.

영화 <소공녀>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미소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21세기 경제대국으로 손꼽히는 대한민국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2018년 기준 한국의 GDP는 1조5380억으로 세계 11위 수준이다. 30~40년 전 경제 과도기였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그러나 정작 미소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씁쓸하다. 우리 사회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점이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 뿐더러, 미래에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없다. 지금 젊은이들이 지금 당장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는 비록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슬픈 시대의 자화상이다.

소확행이라는 슬픈 자화상은 그야말로 '웃프다'. 한껏 지질함을 풍기니까 웃기고, 그 지질함이 너무나도 진지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슬프다. 특히 안재홍이 연기한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은 '웃프고 지질한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광화문 시네마의 네 작품에 모두 출연한 페르소나다.

나는 연애, 결혼, 집을 포기하지 않았다. 출산은 포기했고 희망과 인간관계는 어정쩡하다. 그런 내가 '소확행'을 추구한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소확행이라는 게 수많은 포기들의 반석 위에 차려진 자그마한 만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신과 불안, 불투명한 희망을 가진 나도 소확행을 추구한다. 참으로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변하는 시대다. 한국 경제는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린 왜 점점 더 작아지는가. 왜 점점 더 작은 걸 찾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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