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2013년부터 5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두 번의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간판타자 민병헌(롯데 자이언츠)을 떠나 보냈다. 그리고 두산은 민병헌이 떠난 공백을 새 외국인 선수 지미 파레디스로 메우기로 했다. 그리고 파레디스가 시즌 개막 2경기 만에 첫 홈런을 때려 냈을 때만 해도 두산의 꿈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홈런 친 파레디스 25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리그 삼성 대 두산 경기. 2회 말 1사 두산 파레디스가 솔로 홈런을 친 후 주루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2018.3.25

▲ 홈런 친 파레디스 지난 3월 25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리그 삼성 대 두산 경기. 2회 말 1사 두산 파레디스가 솔로 홈런을 친 후 주루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파레디스의 활약은 딱 거기까지였다. 개막 후 3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낸 후 9경기에서 4안타를 추가하는 데 그친 파레디스는 12경기에서 타율 .179 1홈런 1타점 5득점 1도루의 성적에 그쳤다. 12번의 득점권 상황에서는 단 하나의 안타도 치지 못했고 득점 기회에서 대타로 교체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결국 파레디스는 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사실 두산에게 외국인 타자의 2군행은 익숙한 편이다. 2015년의 잭 루츠와 2016년의 닉 에반스도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선수가 두산에 남긴 족적은 전혀 다르다. 루츠는 두산 팬들에게 사실상 금지어가 됐지만 에반스는 두산에서 활약한 2년 동안 51홈런 171타점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과연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파레디스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두산 외국인 타자 루츠-에반스의 '같은 시작, 다른 결말'

2014 시즌을 끝으로 주전 3루수로 활약하던 이원석(삼성 라이온즈)이 군에 입대하면서 두산은 3루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물론 백업 내야수 최주환과 허경민이 있었지만 이들은 프로 데뷔 후 한 번도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했던 경험이 없었다. 결국 두산은 뉴욕 메츠 출신의 외국인 타자 루츠를 영입해 핫코너를 맡기기로 했다.

기대를 모았던 루츠는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타율 .111(27타수3안타) 1홈런 3타점으로 부진하며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결국 2015 시즌 KBO리그 퇴출 외국인 선수 1호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두산은 허경민이 주전 3루수로 도약하면서 맹활약했고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루츠의 대체 선수 데이빈슨 로메로까지 기대에 못 미치면서 두산은 사실상 외국인 타자의 도움 없이 2015 시즌을 치렀다.

두산은 2016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출신의 내아수 닉 에반스를 영입했다. 허경민이 주전 3루수로 확실히 자리 잡은 만큼 두산은 포지션에 대한 부담 없이 에반스에게 1루와 지명타자를 오가며 많은 장타를 쳐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에반스 역시 시즌 개막 후 18경기에서 타율 .164 1홈런 5타점으로 부진에 빠지며 2군으로 내려갔다. 두산팬들은 루츠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며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퓨처스리그에서 이천쌀을 먹고 힘을 낸 에반스는 5월 6일 1군에 복귀해 5월 7홈런21타점, 6월 7홈런 22타점을 기록하는 엄청난 반전을 써내려 갔다. 당연히 에반스를 조기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6년 정규리그에서 타율 .308 24홈런 81타점을 기록한 에반스는 NC다이노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438(16타수 7안타)를 기록하며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큰 역할을 했다.

68만 달러에 두산과 재계약한 에반스는 2017년에도 138경기에 출전해 타율 .296 27홈런 90타점 82득점으로 중심타선에서 외국인 타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두산은 작년 시즌 양의지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는 기간이 있었고 박건우, 오재일 등 나머지 주력 타자들도 타격감이 늦게 살아났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시즌 초반부터 꾸준한 활약을 펼친 에반스의 공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안 넘치는 두산의 선수층, 파레디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지난 2년의 활약만 놓고 보면 당연히 재계약 고려 대상이 돼야 했지만 두산은 작년 11월 26일 에반스를 2018 시즌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민병헌과의 협상이 결렬된 만큼 민병헌의 이적에 대비해 외야 수비를 맡을 수 있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산은 민병헌의 롯데 이적이 결정된 지 3일이 지난 후 파레디스와의 계약을 발표했다.

파레디스는 2루수와 3루수, 코너 외야까지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멀티 플레이어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동안 빅리그에서 332경기에 출전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이었던 2015년에는 볼티모어의 주전 지명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275 100안타 10홈런 42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지바 롯데 말린스에서 활약한 경력도 있어 동양야구에 대한 빠른 적응도 기대할 수 있었다.

두산은 2루수 오재원, 3루수 허경민, 유격수 김재호로 이어지는 확실한 주전 내야진이 있고 뒤에는 최주환과 류지혁이라는 주전급 백업 내야수들이 버티고 있다. 파레디스를 내야수로 투입해 굳이 잘 정리돼 있는 내야진에 혼란을 줄 필요는 없었다. 김태형 감독은 파레디스가 민병헌의 자리인 우익수를 맡으면서 에반스의 타순이었던 5~6번을 소화해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파레디스 앞에 닥친 현실은 냉정했다.

파레디스는 시즌 개막 후 3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낸 후 1할대 타율에 허덕였다. 파레디스의 타격감을 살려주기 위해 지명타자로도 기용해 보고 타순도 바꿔 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파레디스를 살리기 위해 타격감이 좋은 정진호나 찬스에 강한 최주환을 벤치로 돌려야 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결국 김태형 감독은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 파레디스를 2군으로 보내는 '충격요법'을 선택했다.

파레디스가 2015년의 루츠처럼 그대로 짐을 싸 한국을 떠날 수도 있고 2016년의 에반스처럼 환골탈태해 두산의 보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두산은 작년의 제이미 로맥(SK 와이번스)이나 멜 로하스 주니어(kt위즈)처럼 외국인 선수 교체는 빠른 결단이 중요하단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파레디스가 KBO리그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를 갖지 못한다면 파레디스와 두산의 만남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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