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 밝히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7일 오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각오를 밝히고 있다.

최근 일본 축구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된 할릴호지치 감독 ⓒ 연합뉴스


러시아월드컵이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일본 축구가 뜻밖의 자중지란에 빠졌다. 일본 축구협회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대표팀 감독의 경질을 전격 발표했다. 지난 2015년 3월 일본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지 약 3년 만이다.

보스니아 출신의 할릴호지치 감독은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알제리 대표팀의 16강진출을 이끌며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한국축구와도 인연이 깊다. 당시 한 조에 편성됐던 홍명보 감독의 한국축구대표팀을 4-2로 완파하며 '의리축구의 심판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한국의 전력을 분석하기 위하여 K리그 경기까지 일일이 찾아보며 열심히 준비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또한 대회 16강에서 우승국 독일을 상대로도 명승부를 펼치며 월드컵 매경기 라인업과 전술이 달라지는 등 변화무쌍한 '맞춤형 용병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할릴호지치 감독이 한국축구의 최대 라이벌인 일본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국내에서도 내심 '경계심 반, 부러움 반'의 시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할릴 재팬'은 아시아 최종예선 무대를 통과하며 러시아월드컵 본선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러시아로 가는 여정은 한국 못지않게 험난했다.

최약체 싱가포르에 홈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최종예선 첫 경기부터 아랍에미리트(UAE)에 덜미를 잡히는 등 갈짓자 행보를 거듭했다. 최종적으로는 어쨌든 조 1위를 차지하며 본선행 티켓을 따냈지만 그 과정에서 할릴호지치 감독에 대한 일본 축구계의 신뢰는 많이 떨어졌다. 한국과는 동아시안컵에서만 두 차례 만났는데 슈틸리케-신태용 체제에서 1무 1패로 부진하며 알제리 대표팀 시절의 위용을 재현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동아시안컵에서는 1-4로 대패한 데다 인터뷰에서 "유럽파 선수들이 있었어도 한국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량 차이를 인정하고 한국축구를 칭찬하는 발언을 했다가 일본 언론과 팬들로부터 엄청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모 아니면 도' 월드컵 앞두고 감독 경질 '초강수' 둔 일본

할릴호지치 감독은 이미 예전에도 몇 번이나 일본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날만한 고비가 있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지역예선 과정에서 부진한 성적과 선수선발 논란 등으로 일본 축구계와 여러 번 갈등을 빚으며 경질설에 시달렸고, 본선진출 확정 이후에는 본인이 가정사를 거론하며 먼저 사퇴를 시사하기도 했으나 일본 축구협회의 만류로 마음을 바꿔 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잡기로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월드컵 본선을 불과 두달 앞둔 시점에서 경질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지난 3월 A매치에서 월드컵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한 말리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1무 1패의 부진을 보인 것이 결정타였다. 본선에서 폴란드, 콜롬비아, 세네갈과 H조에 배정되어 아시아 국가중에서는 그나마 해볼만한 대진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계속된 부진으로 할릴 재팬으로서는 희망이 없다는 비관적인 평가가 많아지자 일본 축구협회가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본축구의 선택은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의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 감독교체가 잦기로 악명 높은 한국축구도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대회를 앞두고 감독을 경질한 경우는 아직까지 없다. 일본은 오히려 대표팀 감독의 임기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암묵적인 전통처럼 이어져왔다. 일본축구가 성적부진으로 감독을 경질한 것은 1997년 '도쿄대첩'에서 차범근호에게 홈에서 역전패를 당하며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도중 경질된 가모 슈 감독 이후 사실상 21년 만에 처음이다.

물론 이후로도 이비차 오심(2006-07)이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2014-15)처럼 중도에 사임한 감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심 감독은 재임기간 중 발병한 뇌경색으로 인한 건강문제였고 아기레 감독은 스페인 라 리가 감독 시절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된 사실이 더 문제가 됐다. 오히려 필립 트루시에, 지코, 알베르토 자케로니 등 4년 계약을 준수하며 '1감독- 1월드컵' 체제를 유지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한국축구 역대 최장수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를 포함하여 4년 이상 '장수 재임'하며 월드컵을 완주한 감독이 드문 한국으로서도 조금은 부러워하던 대목이었다.

한편으로 할릴호지치 감독이 경질된 배경에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의 '성격'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지나치게 괴팍하고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일본대표팀을 맡기 전부터 다양한 국가의 클럽과 대표팀 감독을 넘나들었지만 항상 협회나 언론, 선수들과 갈등을 빚어온 역사가 화려하다. 한 팀에서 3년 이상 길게 머문 경우가 거의 드문 '저니맨' 감독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알제리 대표팀 시절도 한국전 승리 이전까지는 알제리 축구협회와 언론과의 관계가 '폭발 일보직전'이라고 할 만큼 살벌한 분위기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일본에서도 부임 이후 성적이 좋지 않을 때마다 일본 선수들의 기량이나 성향, J리그의 수준을 폄하하거나 일본 축구협회의 지원에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혼다 케이스케나 가가와 신지, 오카자키 신지 등 수년간 일본축구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을 홀대하고 특정 선수들을 편애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스페인이나 브라질 축구의 영향을 받고 기술과 패싱위주의 축구스타일에 익숙한 일본 선수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강한 피지컬과 롱볼 위주의 직선적인 축구를 주입하려다가 갈등을 빚었다. 선수단 관리문제에 있어서도 대표팀 소집때마다 프로 선수들의 외출까지 일일이 통제하며 권위적인 리더십을 보이면서도 정작 자신을 비롯한 외국인 코칭스태프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등 일관성 없는 이중잣대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감독 교체, 어떤 결과 내놓을까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도 할릴호지치 감독의 전술이나 인성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3월 말리-우크라이나와의 경기가 졸전으로 끝난 이후에는 라커룸에서 할릴호지치 감독과 몇몇 선수들이 충돌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월드컵을 앞두고 팀워크의 붕괴를 우려한 일본 축구협회로서도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할릴호지치의 후임으로는 예상대로 국내파인 니시노 아키라 기술위원장이 선임됐다. 니시노 감독은 일본프로축구 J리그 가시와 레이솔, 감바 오사카 등의 사령탑을 역임했으며 2016년 3월부터는 일본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감독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지난 3년간 할릴호지치 감독 체제로 준비해온 팀이 불과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틀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까지 신태용 감독의 리더십에 불만을 토로해왔던 국내 팬들 입장에서도 감독교체라는 강수를 선택한 일본의 상황과 비교하여, 월드컵에서 한일 양국이 과연 어떤 다른 성과물을 내놓을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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