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림축구>포스터

영화 <무림축구>포스터 ⓒ 선익필름


최근 국내의 한 영화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첨부된 사진 속엔 헐크, 토르,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장은 엉성하고 의상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륙의 '어벤져스'가 등장하는 영화의 제목은 <무림축구>다.

영화 <무림축구>를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네이버와 왓챠엔 "주말에 본 최악의 쓰레기 영화", "아무 생각 없이 보기도 힘든 영화" 등 부정적인 평가가 줄을 잇는다. 이들이 내린 평가는 틀리지 않다. 싸구려 CG, 황당무계한 전개, 유치찬란한 연기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무림축구>는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볼 만한 점은 있다. 하나는 2001년 데뷔해 지금까지 맹활약 하는 그룹 '트윈스' 멤버 종흔동과 채탁연이 2007년 영화 <쌍자신투> 이후 오랜만에 함께 스크린에 나온다는 것. 그녀들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반가운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감독이 유진위라는 점이다.

1986년 영화 <홍콩 여복성>으로 데뷔한 유진위 감독은 1990년대 아시아의 할리우드라 불리며 홍콩 영화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기의 산 증인과 다름없다. 1990년 연출한 영화 <도성>은 유진위를 오늘날 중화권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만들었고 주성치를 스타로 발돋움하게 한 대표작이다.

이후 유진위는 주성치와 콤비를 이뤄 <신정무문> <서유기-월광보합> <서유기2-선리기연> <홍콩 레옹> <쿵푸허슬> 등을 작업했다. 그는 최근 연출한 영화 <삼장법사의 모험> <기기협> <월광보합> <서유기3: 월광보합 리턴즈>에서도 1990년대 홍콩 코미디 장르를 가미한 바 있다. <무림축구>에서도 그 시도는 이어진다.

<소림축구>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영화 <무림축구>의 한 장면

영화 <무림축구>의 한 장면 ⓒ 선익필름


<무림축구>는 (아마도) 중국 송나라 시기, 축구팀 '독수리 발톱'을 앞세운 (어쩌면) 몽골 제국의 칸 바오가 침략한다는 설명으로 문을 연다. 황제와 신하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공주 장평(종흔동 분)은 독수리발톱에 맞서 나라의 운명을 건 축구경기를 할 무림 8대 고수를 찾아 나서고, 몰락한 모산파 재건을 위해 사매(채탁연 분)와 힘쓰던 모차랑(허지옹 분)이 무림 8대 고수 축구팀에 들어가고자 공주에게 접근한다.

<무림축구>의 상상력은 영화 2001년 영화 <소림축구>에 기반을 둔다. <소림축구>는 소림사에서 같이 무예를 다지던 동료들이 뭉쳐 무술로 축구를 한다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였다. <무림축구>는 나라의 명운이 걸린 축구경기에 무림 8대 고수가 나선다는 아이디어를 내세운다. 이것은 <소림축구>와 비슷하기에 진부하게 느껴졌다. 축구 장면의 연출도 <소림축구>에 상당한 빚을 졌다. 심지어 <소림축구>의 주연 배우마저 <무림축구>에 나올 정도다.

 영화 <무림축구>의 한 장면

영화 <무림축구>의 한 장면 ⓒ 선익필름


반면 '독수리발톱'은 구성원은 신선하다. 무려 <어벤져스> 시리즈의 헐크, 토르, 스파이더맨, 캡틴아메리카, <판타스틱4>의 휴먼토치, <엑스맨>의 스톰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작권은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 의문은 계속 된다. 흡혈귀는 왜 넣은 걸까?

<무림축구>는 프롤로그에 이어 공주가 무림 8대 고수를 찾는 '제1장-봉황, 꿩이 되다', 자객단에 납치된 공주와 모차랑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제2장-역경 속 진실된 사랑을 찾다', 중국 어벤져스와 무림 8대 고수가 축구경기를 하는 '제3장-상운국 대 독수리발톱'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와 1장은 아이디어와 웃음으로 재미를 주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농도가 떨어진다. 스토리가 설정을 못 따라간다는 말이다.

도리어 불편한 구석이 많다. 극중에서 공주가 내뱉는 "오랑캐들이 문전에 와 있는데. 힘을 합쳐야 할 때 왜 우리끼리 싸우고 있는 거야?"란 대사는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현실을 연상케 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서구 열강의 다양한 중국 침략을 어벤져스, 엑스맨 등으로 은유한 느낌도 든다.

1990년대 무협 영화에 대한 유진위의 농담?

 영화 <무림축구>의 한 장면

영화 <무림축구>의 한 장면 ⓒ 선익필름


20세기 후반, 홍콩에서 슬랩스틱 코미디가 유행한 현상을 '모레이타우(無厘頭)"라고 일컫는다. 넓게는 1970년대 허관문, 허관영, 허관걸 형제의 <미스터 부> 시리즈와 1980년대 성룡의 영화 <오복성> <복성고조> <칠복성> <대복성>까지 여기에 포함된다. 좁게는 주성치의 두서 없고, 말도 안 되는 코미디를 뜻하는 문화 용어다. 무의미한 패러디, 대조적인 요소의 병치로 일어나는 문화적인 상호 작용이 모레이타우의 특징이다.

<무림축구>에도 모레이타우는 이어진다. 마블의 슈퍼히어로와 무림 8대 고수가 축구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모레이타우의 관습에 충실하다. '첨단 손바닥 카메라'와 '가짜 얼굴' 같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요소도 마찬가지다. 모차랑이 웃음을 주는 몇몇 장면은 주성치의 것들을 고스란히 복제한 인상마저 준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대중문화를 향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헌사'란 평가를 이끌었다. 반면 <무림축구>는 <동사서독> <소오강호> <동방불패> 등을 패러디하며 1990년대 SFX 무협물을 추억하고, 무협물에 초현실적 코미디를 덧씌웠다. 말하자면 '무협물을 향한 유진위의 농담'인 셈이다.

유진위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할 때 <무림축구>는 웃음의 양과 질 모두 예전만 못하다. <서유기-월광보합> <동성서취> <홍콩 레옹> 등에서 빛나던 특유의 B급 개그 코드는 <무림축구>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극중에서 "이런 막장 스토리에 아무 관심 가지지마. 그냥 보고 웃으면 돼" 같은 대사를 넣어 스스로 변호하는 모습조차 안타깝다.

<무림축구>는 중국에서 2014년 5월에 촬영이 끝났지만, 2017년 7월에서야 뒤늦게 개봉했다. 말하자면 중국산 창고 영화다. 후반 작업 때문이라고? 영화의 CG를 보면 그런 말을 절대 할 수 없다. <무림축구>는 유진위의 실패한 농담이다.

무림축구 유진위 허지옹 종흔동 채탁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