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한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아내 권주리씨가 직접 준비한 ‘주리 메달’을 목에 걸고 즐거워 하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한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아내 권주리씨가 직접 준비한 ‘주리 메달’을 목에 걸고 즐거워 하고 있다. ⓒ 이희훈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아내 권주리씨가 직접 준비한 ‘주리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아내 권주리씨가 직접 준비한 ‘주리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 이희훈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아내 권주리씨가 직접 준비한 ‘주리 메달’을 목에 걸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아내 권주리씨가 직접 준비한 ‘주리 메달’을 목에 걸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희훈


"난 이 메달만 있으면 돼요. 다른 메달 필요 없어요. (웃음)"

박항승 선수가 웃었다. 목에 메달을 걸었다. 진짜 패럴림픽 금·은·동메달은 아니었다. 대신 진짜 메달보다 훨씬 큰, 그의 아내 권주리(33)씨가 가져온 메달이었다. 메달에는 권주리씨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박항성 선수는 아내를 안아주고 "최고"라며, 동료들에게 "부럽지?"라고 약을 올렸다.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스노보드 뱅크드 슬라롬(BSL) 경기 SB-UL 등급에서 박항승 선수는 개인 최고기록인 57.07초를 기록했다. 22명의 선수 중 12위로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부인 권주리씨가 있었다.

"인터뷰요? 네, 지금 괜찮아요. 아, 잠깐만요. 오오~!! 괜찮아, 일어날 수 있어. 거기 일어날 수 있어!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죠?"

16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는 작은 눈송이가 흩날렸다. 박항승 선수의 부인인 권씨는 눈발에도 불구하고 박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항승 선수가 출전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지만, 권씨는 이미 열성적으로 슬로프 위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권씨와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패럴림픽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박항승 선수가 출전하자 박 선수의 아내 권주리씨와 지인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박항승 선수가 출전하자 박 선수의 아내 권주리씨와 지인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박항승 선수 응원하러 온 부인 권주리씨 16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뱅크드 슬라롬 시합이 펼쳐졌다. 눈이 날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노보드 국가대표 박항승 선수의 부인 권주리씨가 관중석에서 그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 박항승 선수 응원하러 온 부인 권주리씨 16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뱅크드 슬라롬 시합이 펼쳐졌다. 눈이 날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노보드 국가대표 박항승 선수의 부인 권주리씨가 관중석에서 그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 곽우신


남자 경기에 앞서 여자 경기가 진행되고 있던 시간. 넘어진 이란 선수가 일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메달권에서 멀어진 지 오래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재개하려는 선수를 향해 권씨는 "할 수 있어!", "조금만 더!"라고 외치며 그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란 선수는 다행히 빠져나와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제가 장애인 선수의 가족이라서 그런 있지만, 저도 사실 '스노보더'에요, 취미로. 그렇기 때문에 스노보드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저 선수들이 의족을 하고 다리가 불편한 채로 보드를 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선수에게 응원을 주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권주리씨는 박항승 선수와 결혼식을 올릴 때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스노보드를 신었다. 결혼식장도 스키장이었다. 박 선수는 권씨의 권유로 처음 스키장에 가서 보드를 탔고, 그를 계기로 진로를 바꿨다. 특수학교 선생님이었던 박 선수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스노보드 선수가 됐다. 소치동계패럴림픽 때 시범 종목이었던 스노보드는 이번 평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외국 선수들을 보니까, 장애를 가진 선수들을 위한 전문가들이 같이 있더라고요. 우리 팀에 있는 감독과 코치님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장애인 선수들을 지도해본 적이 없고, 장애인 의족 보더를 어떻게 가르치고 기술을 전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모두가 고민하고, 또 다시하고 다시하고 반복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외국의 지원을 받든가, 다른 팀처럼 외국 코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면이 조금 아쉽죠. 스노보드가 이번이 처음 만들어진 팀이라서 더."

비록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옆에서 그와 함께해온 권씨는 이번 패럴림픽으로 인해 한국에서 장애인들의 지위나 박항승 선수가 응원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리라 보고 있다.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겠죠. 그래도 저는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건 방송과 같은 매체의 힘이겠죠. 장애인 운동선수들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바뀌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기자님들이 힘 좀 내주셨으면 좋겠고…. (웃음)

패럴림픽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고, 그냥 '장애인들이 자기네들끼리 경기하나 보다'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많았잖아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선수들'이라고밖에 홍보해주지 않으니까…. 보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일반 국민들은 잘 몰랐잖아요. 그런데 이번 평창 동계 패럴림픽을 계기로 바뀌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조금이나마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것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박항승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펼치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박항승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한 박항승 선수 왼쪽 팔에는 '세월호 기억팔찌'를 차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한 박항승 선수 왼쪽 팔에는 '세월호 기억팔찌'를 차고 있다. ⓒ 이희훈


앞서 박항승 선수가 세월호 기억 팔찌를 차고 경기에 나선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12일 믹스드존 인터뷰 때였다. 평창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김아랑 선수의 헬멧에 있던 노란 리본이 논란이 된 게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일부 정당과 언론에서 '정치적 중립'에 어긋난다며 올림픽 헌장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아랑 선수는 이후 자신의 헬멧에 검은 테이프를 붙이고 출전했다.

"항승씨도 학교 선생님이었고, 저도 학생들을 만나는 연극 강사였거든요. 교사로서 상당히 부끄러웠어요. 정말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고, 우리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항승씨랑 저랑 차와 팔찌에도 다 표시를 했죠. 기억하려고,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이) 정치적인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라 개인의 표현일 뿐인 거고, 그걸 정치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잘못된 시선인 것 같아요."

이처럼 박 선수와 권씨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왔다. 타고 싶어서 스노보드를 탔고, 기억하고 싶어서 팔찌를 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까지 닿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고난이 무수히 있다. 옆에서 박 선수를 지켜봐온 권씨는 누구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패럴림픽이 끝났을 때, 박 선수에게 이번 경험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미련 없이 해봤다'라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거에 정말 '올인 해봤다'라고요. 결과가 좋으면 더 좋은 추억이 되겠죠? (웃음)

이게 보기에는 그냥 자기가 원하는 걸 하고,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했다'라는 정도로만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항승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아무도 그 속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너를 알고 있다'는 것. 그걸 전해주고 싶습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 선수의 왼쪽팔에는 '세월호 기억팔찌'를 차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 선수의 왼쪽팔에는 '세월호 기억팔찌'를 차고 있다. ⓒ 이희훈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응원해준 관중을 향해 엄지를 지켜세우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출전했던 박항승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응원해준 관중을 향해 엄지를 지켜세우고 있다. ⓒ 이희훈


박항승 선수는 상지와 하퇴 절단이다. 이처럼 상지와 하지에 모두 장애를 가진 스노보드 선수는 그 이외에 없다. 다리 힘과 팔의 균형감각이 중요한 종목에서, 그가 장애를 안고 역주하는 모습은 메달 유무와 관계없이 감동 그 자체이다. 그는 어느새 한국 장애인들의 희망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에게 장애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항승씨가 가진 장애가 결코 가볍지 않아요.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길에 도전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다른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수많은 지체장애인 분들이 '난 할 수 없을 거야'라고 포기하는 경우가 진짜 많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요. 할 수 없는 것도 국가의 도움, 주변의 기술적인 도움을 받으면 할 수 있게 되거든요.

장애인 분들이 항승씨를 통해서 그런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비장애인 분들은, 장애인이 단순히 도움을 줘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적절한 지원이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걸요."


평창동계패럴림픽 패럴림픽 스노보드 박항승 권주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