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 영화 포스터

▲ <이카루스> 영화 포스터 ⓒ 넷플릭스


한국에서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풍부한 미국드라마와 영국드라마를 서비스의 장점이라 말한다. 영화 쪽에선 다큐멘터리를 강점으로 내세울 만하다. 넷플릭스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 3월 4일(한국시각으로는 5일)에 열리는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 다큐멘터리 후보작 5편 가운데 2편(<이카루스>,<스트롱 아일랜드>)을 올렸을 정도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진영은 탄탄하다.

스포츠의 약물 파동을 다룬 <이카루스>(넷플릭스에선 <이카로스>란 제목으로 서비스 중)는 2017년 제33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사이클의 황제로 군림하던 랜스 암스트롱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암스트롱은 "성장호르몬이나 경기력 향상 약물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란 질문에 단호히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화면은 태양을 보여준다.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며 몰락한 암스트롱은 욕망으로 녹아버린 '이카루스의 날개'와 다름없다.

거짓을 일삼다

<이카루스> 영화의 한 장면

▲ <이카루스> 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과거 극영화의 형식으론 <챔피언 프로그램>, 다큐멘터리는 <암스트롱의 거짓말>이 랜스 암스트롱의 사기극을 다룬 바 있다. <이카루스>는 이들과 접근법을 달리한다. 감독 겸 주연을 맡은 브라이언 포겔은 아마추어 사이클 대회에 출전하면서 돈 캐틀린 UCLA 올림픽 연구소 창립자와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모스크바 올림픽 연구소장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약물을 투여하여 경기력을 향상하는 과정을 준비한다. <이카루스>는 '스테로이드'판 <슈퍼 사이즈 미>가 되고자 한다.

<이카루스>는 세계 최고의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들이 출전하는 미니 '투르 드 프랑스'에 약물의 힘을 빌려 참가한 브라이언 포겔의 여정은 순조롭게 따라간다. 그러나 그리고리 로드첸코프가 도핑스캔들에 연루되면서 영화는 의외의 국면에 접어든다.

독일의 한 방송국이 러시아 국가대표의 약물 복용을 다룬 다큐멘터리 <러시아가 승리를 만드는 방법>을 내보낸 후 그리고리는 국가적인 도핑 파동의 중심에 선다. 그는 자신을 러시아와 세계반도핑기구(WADA)를 모두 죽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세계반도핑기구의 조사, 대통령과 체육부 장관, 연방보안국이 연루된 러시아 정부 차원의 약물 커넥션, 올림픽 출전 정지, 미국 국무부와 FBI의 개입 등 일련의 진행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은 줄곧 그리고리를 체포하는 데 혈안이 된다.

처음엔 약물 검사를 통과하여 시스템의 결함을 증명하려던 <이카루스>는 어느새 국가 권력에 쫓기는 개인의 사연으로 바뀌어 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국에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간 그리고리에겐 미국 정부의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과 그를 담았던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가 겹쳐진다. 그리고리가 즐겨 읽는 조지 오웰의 <1984>는 곧 그의 이야기가 된다.

<이카루스>는 약물 검사 프로그램의 허점을 짚어준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을 담은 다음엔 <1984>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국가 권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영화를 보는 도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다. 감독 스스로 "소치 올림픽에서 검사를 담당했던 반도핑기구 연구소장이 왜 이걸 수락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부정을 택한 국가
<이카루스> 영화의 한 장면

▲ <이카루스> 영화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감독이 품었던 의문의 해답은 영화의 한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리는 자신이 만든 스테로이드 프로그램 덕분에 러시아가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많은 금메달을 따고 그 결과 지지도 상승으로 얻은 자신감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발판이 되었다고 말하며 괴로워한다. 약물로 맺어진 스포츠와 국가 권력의 부적절한 관계가 낳은 엄청난 나비효과를 그리고리는 참회하고 있다.

약물은 더는 개인의 욕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가의 잘못된 욕망으로 범위는 넓어진다. 녹아내린 '이카루스의 날개'는 그릇된 욕심에 사로잡힌 국가 권력이 빚은 결과물로 변한다. 그리고리는 "모두가 거짓을 수용하면 거짓은 역사의 일부가 되어 진실이 된다"고 경고한다. 그의 말은 첫머리에 나오는 조지 오웰의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을 알리는 게 혁명이다"와 조응한다. 그리고리가 영화에 참여한 까닭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슈퍼 사이즈 미>로 시작하여 <시티즌 포>에 도착한 <이카루스>. 마치 2개의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가 결합한 인상마저 든다. 다큐멘터리의 훌륭한 점은 감독이 때론 자신의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있다. <이카루스>는 우연히 마주친 뜻밖의 소재를 영리하게 따라간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살아 움직이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보여준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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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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