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 시선> '나는 비정규직 경비원입니다' 편 타이틀 캡처.

EBS <다큐 시선> '나는 비정규직 경비원입니다' 편 타이틀 캡처. ⓒ EBS


최근 최저임금이 인상(2018년 기준 시급 7530원)되면서 아파트 경비원들이 해고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아파트가 지금까지 고용해왔던 경비원 94명을 전원 해고했다는 뉴스가 대표적이다(2018년 2월 10일 <연합뉴스>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해고예고' 경비원 94명 결국 전원해고). 이를 두고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문제였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그 아파트와 달리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을 선택한 다른 사례를 들며 전원 해고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그 아파트 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방송된 EBS1 교양 프로그램 <다큐 시선> '나는 비정규직 경비원입니다' 편은 이런 상황에 대한 시청자의 이해를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정보와 다양한 시각들을 알차게 담아낸 시의적절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날 방송분은 '나는 비정규직 경비원입니다'라는 제목처럼 크게 두 가지 이야기에 집중했다. 과연 경비원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여주고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겪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본 것이다.

노년층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

이날 방송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경비원이라는 직업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다시 보게 됐다는 점이다.

방송에 따르면 경비원이라는 일자리는 노년층에게 더없이 소중한 일거리다. OECD 국가 가운데 노년층 빈곤 비율이 가장 높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에게도 생계 수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년층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경비원 말고 사실상 전무하다. 이들에겐 임금 인상보다 일자리의 지속성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시각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로 이들의 근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책임을 경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날 방송에 나온 한 학자의 인터뷰 내용처럼, 그런 사회적인 책임들이야말로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방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비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편협하거나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방송에서는 '내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일부 아파트 주민들의 인식이 '갑질'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또 '형편없는 인생을 살다가 갈 곳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경비원을 하게 됐으리라'는 무지한 편견이 무시 혹은 무례한 태도로 나타난다고 짚었다.

하지만 당장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경비원들의 사연만 봐도 이런 인식이 얼마나 무심한 것인지 알 수가 있다. 직업 군인으로만 20년을 근무했던 분이 있는가 하면, 대기업에 다니다가 은퇴를 한 분도 있고, 목공으로 40년을 일했던 분도 있었다.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

열악한 근무 환경, 무지한 편견...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인데

 EBS <다큐 시선> '나는 비정규직 경비원입니다' 편 캡처.

EBS <다큐 시선> '나는 비정규직 경비원입니다' 편 캡처. ⓒ EBS


<다큐 시선> '나는 비정규직 경비원입니다' 편은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경비원에 대한 인식 제고를 꼽았다. 경비원들이 피고용인 이전에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할아버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들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궁극적으로 아파트 주민들과 경비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지당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거기에 더해 사회적인 합의와 책임을 다하지 않고 무시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본다. 당장 아파트 경비원들의 근무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감독하고 관리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 노동 당국이 그 대상일 것이다.

솔직히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강남에 있는 한 아파트가 경비원들에게 제공했다는 화장실과 휴게 공간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화장실은 협소한 데다 상하수도 시설마저 제대로 안 갖춰져 있었다. 휴게 공간은 제작진 설명을 빌리면 볕이 들지 않고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노동에 대해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경제 논리를 들어 경비원들을 쉽게 해고하고 함부로 대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경제 논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노동이 없어졌을 때 그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가정해보면, 손익 계산이 너무도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지금 한국 사회 경제 시스템이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소리도 된다.

마지막으로 이날 방송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숭실사이버대학교 이호선 교수의 발언이다. 그가 많은 경비원들과 인터뷰를 나눈 뒤 느낀 소회다. 세상에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명징한 교훈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 분은 살아가는 내내 정말 최선을 다하셨다, 이 분은 둘도 없는 애처가구나. 이 사람들의 삶 속에 그 족적들이 깜짝 놀랄 만큼 가려진 채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는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들 이야기가 모이고 모이면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큐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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