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지긋지긋하던 4연패의 늪에서 탈출하며 시즌 6번째 승리를 거뒀다.

박미희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KGC인삼공사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5-22,25-20,13-25,17-25,15-13)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흥국생명은 지난 1월 3일 GS칼텍스 KIXX전(3-2 승리)이후 정확히 한 달 만에 승리를 추가했다.

토종 에이스 이재영이 서브 득점 하나와 블로킹 2개를 포함해 팀 내 최다인 21득점을 기록했고 외국인 선수 크리스티나 킥카도 20득점으로 힘을 보탰다. 37개의 디그를 기록한 주장 김해란 리베로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날 흥국생명에게는 또 하나의 수확이 있었다. 무릎 수술로 시즌 아웃된 신연경 대신 주전으로 출전해 12득점을 올린 5년 차 레프트 공윤희의 발견이었다.

화려하게 프로 입성했지만 존재감 보여주지 못했던 4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화려하게 프로에 입단한 공윤희는 그 동안 1순위의 위용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화려하게 프로에 입단한 공윤희는 그 동안 1순위의 위용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 한국배구연맹


강원도 인제 출신의 공윤희는 원통 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높이뛰기)로 활약하다가 6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배구를 시작했다. 강릉여중을 거쳐 강릉여고에 입학한 공윤희는 강릉여고에서 중앙여고로, 다시 중앙여고에서 세화여고로 고교 시절에만 두 번이나 전학을 다녔다. 아무래도 어린 학생 선수에게 잦은 전학은 혼란을 줄 수밖에 없고 공윤희 역시 이 과정에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공윤희는 슬럼프를 빨리 씻어내고 타고난 점프력과 순발력을 앞세워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공윤희는 2012년 태백산배 중고배구대회에서 공격상을 받았고 3학년 때는 또래 중 가장 돋보이는 선수로 도약했다. 그 결과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공윤희는 고예림과 이고은(이상 IBK기업은행 알토스), 고유민(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등을 제치고 흥국생명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됐다.

2013-2014 시즌 흥국생명은 외국인 선수 엘리사 바실레바에게만 의존하는 약팀이었지만 박성희, 주예나(이상 은퇴), 정시영 등 고만고만한 수준의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윤희를 괴롭히던 발목부상도 완치되지 않았다. 결국 공윤희는 루키 시즌 15경기에서 6득점을 올리는 데 그치며 고예림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그나마 6점 중 4점은 서브 득점이었고 공격 성공률은 단 7.14%에 불과했다).

박미희 감독이 부임한 2014-2015 시즌에도 공윤희의 자리는 없었다. 선명여고 시절부터 성인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던 슈퍼루키 이재영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재영은 입단하자마자 외국인 선수 레이첼 루크와 쌍포를 형성하며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공윤희는 시즌 대부분의 시간을 웜업존에서 보냈다. 2013년 신인 최대어였던 공윤희가 프로 입단 후 두 시즌 동안 올린 득점은 고작 12점이었다.

사실 공윤희의 공격력은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고교 시절 센터와 라이트로 활약했던 만큼 서브 리시브나 수비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이에 박미희 감독은 다른 쪽에서 '공윤희 활용법'을 찾았다. 바로 서브였다. 공윤희는 2015-2016 시즌 흥국생명의 원포인트 서버로 나서며 세트당 평균 0.16개의 서브 득점을 기록했다. 2015-2016 시즌 공윤희는 공격 시도가 197회, 서브 시도는 226회였을 정도로 서브 전문 선수로 활약했다.

2015-2016 시즌 원포인트 서버와 백업공격수로 자주 코트를 밟았던 공윤희는 2016-2017 시즌 다시 출전 기회가 줄어들고 말았다. 박미희 감독이 공격을 이재영과 타비 러브에게 맡긴 채 수비 강화를 위해 신연경을 풀타임 주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윤희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채 프로에서 4년의 세월을 보냈다.

3일 인삼공사전 12득점 7유효블로킹 11디그 맹활약

 수비와 서브리시브가 안정된다면 공윤희의 출전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수비와 서브리시브가 안정된다면 공윤희의 출전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 한국배구연맹


공윤희의 성장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사이,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공윤희와 전체 1순위를 두고 다퉜던 고예림은 실력을 점점 일취월장해 주전급 선수로 성장했다. 또 다른 드래프트 동기였던 이고은 세터는 기업은행에서 김사니 세터의 후계자로 착실히 경험을 쌓다가 작년 8월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출발이 가장 빨랐던 공윤희가 어느새 입단 동기들에게 추월을 당한 모양새였다.

공윤희는 이번 시즌에도 코트보다는 웜업존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박미희 감독은 공격력이 필요할 땐 힘이 좋은 이한비를, 수비를 강화해야 할 땐 재치 있는 신연경을 중용했다. 외국인 선수 테일러 심슨이 부상으로 이탈했던 세 경기에서도 공윤희는 거의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시즌 개막 후 18경기에 출전했지만 공윤희의 시즌 득점은 경기당 2점도 채 되지 않는 21점에 불과했다.

그런 공윤희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흥국생명의 주전레프트 신연경이 1월 14일 기업은행전을 끝으로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된 것이다. 박미희 감독은 공윤희와 이한비를 번갈아 투입하며 신연경의 공백을 메우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주전 출전의 기회를 잡은 공윤희는 최근 3경기에서 25득점을 올리면서 그동안 출전하지 못했던 한을 풀고 있다.

특히 3일 인삼공사전에서 공윤희는 팀 내에서 3번째로 많은 36번의 공격을 시도해 12득점을 올리는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비록 성공률은 33.33%로 썩 높지 않았지만 단 하나의 범실도 기록하지 않았고 조송화 세터와 호흡이 잘 맞은 퀵오픈 공격은 46.15%(6/13)라는 좋은 성공률을 기록했다. 7개의 유효블로킹(자기 팀의 수비로 연결되는 블로킹)과 11개의 디그 역시 흥국생명의 승리에 기여한 공윤희의 활약이었다.

3일 인삼공사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봄 배구 진출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포지션 경쟁자가 이번 시즌 더 이상 코트에 설 수 없고 순위 싸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지금, 공윤희에게는 박미희 감독과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과연 공윤희는 남은 8경기 동안 5년 전 최고 루키였던 명성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 배구 도드람 2017-2018 V리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공윤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