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있는 신태용호가 고질적인 수비 불안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터키 전지훈련을 소화 중인 축구대표팀은 몰도바-자메이카와의 2연전에서 1승 1무를 기록했다. 표면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내용은 그리 좋지 못했다. 27일 몰도바전에서 1-0으로 신승했으나 고전을 면치 못했고 지난 1월 31일 자메이카전에서는 수비진의 실수로 2골을 허용하며 무승부에 그쳤다.

공격에서는 유럽파가 빠진 상황에서도 김신욱-이근호-이재성 등 국내파 선수들이 선전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반면, 수비는 사실상 베스트 멤버에 가까운 라인업을 꾸리고도 세계적인 강호라고 할 수 없는 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런 수비로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독일이나 멕시코 같은 강팀을 상대로 버틸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축구의 아킬레스건, 대형 수비수의 부재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31일 오전(현지시간) 터키 안탈리아 타이타닉풋볼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31일 오전(현지시간) 터키 안탈리아 타이타닉풋볼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비난은 몇몇 수비수들에게 유독 집중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실수를 잇달아 저지른 센터백 장현수와 김영권 등이 팬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분위기다. 두 선수 모두 몇 년 전부터 대표팀에 꾸준히 중용되었고 신태용호 출범 이후에는 주장까지 역임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오히려 대표팀 수비 불안의 원흉 취급을 받고 있다.

평가전 이후 골을 넣은 선수보다도 오히려 실수를 저지른 특정 수비수의 이름이 SNS와 온라인의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을 정도다. 지금도 축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 댓글에는 "제발 좀 OOO은 대표팀에서 쓰지 마라"는 식의 비난이 빗발친다.

이러한 대표팀 수비불안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대형 수비수 부재'라는 한국 축구의 아킬레스건과 무관하지 않다. 홍명보-이영표 이후 한국 축구의 간판이라고 할 만한 정상급 수비수의 계보는 사실상 끊긴 상태다.

대표팀 수비진이 국내파와 아시아리거로만 채워진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공격수나 미드필더와 달리 수비진은 '유럽파'가 아예 전무하다. 홍정호, 박주호, 윤석영, 김진수 등 한때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던 수비수들도 지금은 전멸한 상태다. 또한 김영권이나 장현수, 김주영처럼 중국 무대에 진출했던 다수의 국가대표급 센터백들은 '중국화' 논란에 시달리며 기량이 하락세를 타기도 했다. 공격의 손흥민이나 중원의 기성용처럼 수비진의 무게 중심을 잡아줄 안정감 있는 리더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다만 신태용 감독은 "수비라인은 여전히 실험하는 과정"이라며 일부의 지나친 비판에 선을 긋기도 했다. 실제로 신감독은 부임 이후 특정 선수만 쓴다는 비판과 달리, 권경원이나 김민재, 정승현 같은 새로운 수비수들을 기용하고 스리백과 포백을 오가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등 나름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소속팀에서도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김영권을 굳이 재발탁한 것이나, 주장으로까지 선임했던 장현수의 부진은 신감독의 선수 선발 기준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너그럽게 보면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선수점검을 위한 마지막 해외 전지훈련'이었기에 가능한 실험이기도 했다.

장현수, 신태용호 수비라인의 핵심

신감독이 장현수나 김영권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데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현재로서 대표팀에서 그만한 경험과 리더십, 수비 조율 능력 등을 두루 갖춘 '커맨더형 수비수'가 많지않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판을 짜야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비록 외부의 시선에서 보기에는 비판을 받거나 불안 요소가 있더라도 '전술적으로 절대 빼기 어려운 선수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의 대표팀 감독들이 여러 가지 전술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홍명보라는 걸출한 리베로를 중심으로 수비진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 부임 초창기 포백 전술을 도입하기 위하여 여기에 맞지 않는 홍명보를 한때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파격을 두기도 했으나 결국은 홍명보를 다시 불러들여 스리백으로 전환했다. 대신 홍명보의 부족한 대인방어와 제공권 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는, 김태영과 최진철 같은 '파이터형 센터백'들을 보강하며 탄탄한 스리백을 구축할 수 있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이끌었던 허정무 감독은 조용형을 수비의 핵으로 기용했다. 당시 축구 팬들 사이에서 조용형의 별명은 '자동문'이었다. 문전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상대에게 자주 손쉬운 실점을 허용하는 것을 꼬집은 별명으로 수비수에게는 굴욕이나 다름없었다. 월드컵 직전까지 조용형을 둘러싼 비난과 불신의 수위는 지금의 장현수-김영권 이상이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우려 속에서도 꿋꿋이 조용형을 중용했고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큰 실수 없이 안정된 수비로 한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행에 기여했다.

현재로서 신태용호 수비라인의 핵심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장현수다. 팬들 사이에서는 최근 A매치 때마다 거듭된 부진으로 가장 빈번하게 욕을 먹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현수의 팀 내 입지가 당장 흔들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홍명보나 조용형이 그러했듯이 장현수의 실제 팀 내 가치는 팬들과 전문가들간의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과 무승부를 기록했던 티오도르 위트모어 자메이카 대표팀 감독은 이날 멀티골을 기록한 김신욱과 함께 장현수를 가장 인상적인 선수로 꼽기도 했다. 모국에서는 선제실점 상황에서의 어이 없는 실수로 '욕받이' 신세가 된 것을 감안하면 뜻밖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위트모어 감독은 실점 상황보다 장현수가 경기 전반적으로 페널티박스에서 견고한 수비를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축구에서 실수는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슈틸리케 전 감독도 장현수를 "수비진에서 대체불가한 선수"라고 콕 집을 만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순간의 단점에만 치중하는 팬들과, 전술적인 역할에 더 주목하는 전문가들간에 선수를 보는 '시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정 선수를 비난하는 것보다, 전술적 문제점 돌아봐야

인터뷰 하는 장현수 4일 오후 울산종합운동장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장현수가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인터뷰 하는 장현수 4일 오후 울산종합운동장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장현수가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현수는 일정상 전훈 마지막 경기인 라트비아전에서는 뛰지 않고 소속팀에 복귀한다. 신태용호 출범 이후 장현수가 빠진 채로 수비진을 구성하는 경기는 라트비아전이 최초다. 신태용호가 장현수 없이도 얼마나 안정된 수비를 보여줄 수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수비진 구성과 전술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비는 팀 플레이의 산물이고 개인보다도 연속성과 조직력이 더 중요하다. 장현수나 김영권은 개인 활약으로는 이번 전훈에서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표팀의 수비 불안을 단순히 특정 선수의 문제로만 자꾸 몰아가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비수 개인의 실수로 인한 실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이전에 2-3선간의 유기적인 압박이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1차적으로 포백을 앞선에서 보호해줘야 할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왜 없었는지 신태용호의 '전술적인 문제점'을 먼저 돌아봐야할 필요도 있다.

무조건 한두 선수만 빼라고 비난한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건은 남은 기간동안 팀으로서의 완성도에 달렸다. 최종 평가는 결국 1월 전훈이 아닌 5개월 뒤 월드컵 본선에서의 결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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