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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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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win Andrad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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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법륜스님의'즉문즉설'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중 한 강좌에서 여고생이 스님께 이런 질문을 한다.

"다들 하고 싶은 걸 하라는데 저는 좋아하는 일을 못 찾겠어요."

그러자 스님이 참으로 스님다운 멘트를 한다.

"좋아하는 일이 없다니 얼마나 행운입니까?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꼭 해야 해서 힘들 텐데 그게 없으니 그냥 아무 거나 해도 되잖아요?"

그러자 좌중이 와하하 웃는다.

좋아하는 일을 못 찾겠다는 고민은 의외로 흔하다. 문제는 '좋아하는 일을 못 찾는다'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 없다는 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건 '한 분야에 미쳐서 열심히 노력하라. 그렇게 성공하라!'는 20세기적 자기계발 강박이다. 자기계발 프레임은 대략 이런 식이다.

1. 어느 날 문득 좋아하는 걸 발견한다
2. 미친 듯이 잠도 안 자고 노력한다
→ 결과1)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다!
→ 결과2) 잘 안 된다 → 노력하지 않은 당신의 탓이므로 다시 2번으로 돌아가서 미친 듯이 노력한다.

이 프레임에서 우리는 대개 1을 스킵하고 일단 2를 한다. 대부분 결과 2를 얻고 다시 2를 반복한다. 즉,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채 미친 듯이 노력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한다는 말이다.

잠도 안 자고 할 만큼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것 자체가 힘들 뿐더러 그 분야에서 거둔 '성공'의 모호함은 자기계발 강연자의 후광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가장 신기한 점은 우리 사회처럼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용케도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실패자에게 낙인을 찍고 기회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하면, 시작을 대기업으로 안 하면, 남들 다 할 때 결혼을 안 하면 제2의 기회를 거머쥐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경험하지 않고 대체 어떻게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까?

'좋아하는 일'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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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k Lab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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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이런 일 저런 일을 많이 시도해 보아야 한다. 그게 설사 쓸데없고 돈 안 되는 딴짓이라도 말이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나는 디저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상수동에서 밀푀유를 정말 잘 만드는 집에 갔다가 그 맛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그후에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밀푀유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내가 밀푀유를 먹어보지 못했더라면, 그 전에 다양한 디저트를 즐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해 보지 않고서는 그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좋아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해 보지 않고서도 그 일이 좋다면 그건 그 일이 아니라 이미지화된 어떤 환상을 좇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스님 말대로 좋아하는 일이 없다면 일단 뭐라도 시작해 보자.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건 일 자체보다 일을 둘러싼 환경인 경우가 많다. 일에 따른 보수, 명예, 근무 조건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혼자 일하는 게 좋은지, 여럿이 일하는 게 좋은지, 근무시간이 유동적인 게 좋은지 고정적인 게 좋은지,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일을 하는 게 좋은지, 창의적이고 변화가 많은 일을 하는 게 좋은지는 해 보면 알게 된다.

직업 말고 '딴짓'으로 이것저것 해 보는 건 실패자에게 가혹한 사회에서 해 봄직한 시도이다. 만약 그래도 못 찾겠거든 싫어하는 일을 소거해 나가면 편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일 하기 싫어", "이런 일은 도저히 못해!"라는 걸 지워 가다 보면 좋아하는 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일 정도는 찾을 수 있다.

딴짓, 2018년형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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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열심히 하기'가 유일한 미션인 중고등학생들은 고3이 되어 느닷없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공부 외에는 제대로 된 동아리 활동 한 번 해 본 적 없는 고등학생이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진로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얼렁뚱땅 선택한 과에 진학했더라도 아직 희망은 있다. 대학 때 이런저런 딴짓을 해 보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 걸 만족스러워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도 학점과 토익에 치인 학생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딴짓할 기회는 없다. 결국 취업을 하고서야, 혹은 취준생으로 방황하고 나서야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오춘기를 겪는다.

"딴짓하지 마"라는 건 공부하는 학생에게 선생님이나 부모들이 흔히 하는 충고다. 그러나 딴짓해 보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어떤 일이 잘 맞는지 알 방법은 요원하다. 노래하고 춤을 추는 딴짓, 축제를 기획하는 딴짓, 만화를 그리는 딴짓, 옷을 만들어 보는 딴짓, 유튜브 방송해 보는 딴짓을 적극 권장하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고 낯선 곳을 여행하는 딴짓을 경험하자. 자신이 좋아하는 유일한 것을 찾지는 못 하더라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분야의 일을 해야 조금 더 만족감을 느낄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은 좋아하는 일을 꼭 찾을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성공하는 시나리오는 첫사랑과 꼭 결혼해야 한다는 프레임과 비슷하다. 좋아하는 일도 계속 변할 수 있다.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둘러싼 환경을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이 꼭 직업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꿈'이라는 단어는 평균 수명이 약 80세였던 세대, 그래서 평생 하나의 직업이나 직장에 머물렀던 세대에 어울리는 말이다. 그렇게 평생 하나의 직업을 가지다 은퇴해서 20년쯤 지나다 보면 삶을 마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120세 시대다. 직업은 8번 정도, 배우자는 4명 정도 바뀐다는 시대. 이런 시대에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생 이뤄야 할 단 하나의 '꿈'이 아니라 '원하는 일상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딴짓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더듬어 나갈 수 있는 지팡이다.  딴짓하자! 딴짓이야말로 2018년형 자기계발일지 모른다.


태그:#딴짓, #꿈, #퇴사, #회사,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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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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