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대잔치 세대'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현주엽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과 조동현 부산 KT 소닉붐 감독에게 2017-18시즌 전반기는 지우고 싶은 악몽으로 기억될 듯하다. 현주엽 감독이 이끄는 창원은 11승 22패(승률 .333), 조동현 감독의 부산은 5승 28패(승률 .152)로 최하위에 그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은 프로농구 현역 사령탑 중 '막내급'에 해당한다. 조동현 감독은 10개 구단 최연소 사령탑이고, 한 살 위인 현주엽 감독은 올 시즌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사령탑이다. 젊은 형님 리더십으로 프로농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했던 두 감독의 동반 부진은 농구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다.

베테랑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고양 오리온(9위, 9승 24패) 역시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고양은 애런 헤인즈-김동욱-이승현-장재석 등 2016년 우승 주역들의 이적과 군입대 등으로 전력이 약화돼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분류됐으므로 이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창원이나, 조동현 감독 부임 3년 차에도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산의 부진은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농구스타' 현주엽, 그러나 초보 감독 시행착오 이어져

 10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원주 DB 프로미 경기. LG 현주엽 감독이 경기 중 자신에게 온 농구공을 들고 있다.

10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원주 DB 프로미 경기. LG 현주엽 감독이 경기 중 자신에게 온 농구공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현주엽 감독은 올 시즌 창원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현역 은퇴 후 정식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현 감독에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슈퍼스타' 출신이라는 화제성에 거는 기대감도 컸다. 창원은 김영만 전 원주 DB감독과 강혁 전 삼일상고 코치 등을 영입하면서 현주엽 감독의 경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그러나 뚜껑을 연 이후 지금까지의 결과는 실망스럽다. 두 차례 2연승을 제외하면 연패를 거듭하며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6위 전자랜드와는 6.5경기 차로 벌어졌다. 현재로서는 6강은 고사하고 전임 김진 감독의 마지막 시즌이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던 지난 2016-17시즌(23승 31패, 승률 .426, 최종 8위)보다 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꼽힌 부산이나 고양과는 달리, 창원의 전력이 8위에 그칠 수준은 결코 아니다. 창원은 김종규, 김시래, 조성민 등 국가대표 3인방에 득점력이 탁월한 외국인 선수 제임스 켈리까지 보유하고 있다. 물론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잦았다거나, 잇단 외국인 선수 교체 같은 악재들이 있었지만 그런 변수는 장기레이스를 치르는 동안 어느 팀이든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많은 이들은 초보 사령탑으로서 현주엽 감독의 미숙한 팀운영 능력에 책임을 묻고 있다. 시즌 초반 현주엽 감독이 선택한 외국인 선수 조쉬 파웰, 저스틴 터브스는 사실 드래프트 때부터 불안요소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선발을 강행했고 결국 한국농구 적응 실패와 장기 부상으로 일찍 보따리를 쌌다. 대체선수로 뛴 조나단 블락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제임스 켈리는 득점력은 좋지만 개인 플레이가 심하고 와이즈는 수비형 선수에 가깝다. KBL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 농사부터 혼란을 거듭해 초반부터 팀전력이 불안정해졌다.

선수 관리와 운용능력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현감독은 김종규-정창영-조성민 등 주력 선수들의 출장시간 조절과 역할 분담에 실패하며 전력 손실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원래 잔부상이 많았던 김종규에게 충분한 회복 시간을 주지 않고 무리하게 기용하다가 체력적 과부하를 초래했다. 반면 KBL 최고의 슈터인 조성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오히려 초반 슛 감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게 했다. 애제자인 현창영에게는 가드임에도 빅맨 수비까지 맡게 하는 등 능력치와 상관없이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반기 창원은 3, 4번이 약한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박인태-류종현 같은 장신선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무리한 '스몰라인업'을 가동하다가 수비에서의 미스매치로 고전하는 양상을 자주 반복했다. 천적으로 자리매김한 원주 DB 10연패를 비롯하여 내용 상 대등한 경기를 치르고도 후반에 급격히 무너지는 때가 많다. 무엇보다 높이든 스피드든 현주엽 감독이 추구하는 농구색깔이 대체 무엇인지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다.

벌써 3년 차 맞은 최연소 감독, 리빌딩이 목표였지만...

 10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 KT 조동현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 KT 조동현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동현 감독 역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그나마 현주엽 감독은 아직 첫 시즌이고 초보감독이라는 면죄부라도 있지만 조감독은 벌써 부산의 지휘봉을 잡은 지 3년차다. 그런데 부산의 성적은 7위-9위-10위로 해가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반기 막바지에는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 기록인 12연패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부산 역사상 단 2회뿐이었던 두 자릿수 연패 기록은 모두 조동현 감독 시절에 달성됐다.

그나마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이상민 감독이 이끄는 서울 삼성과의 '불우이웃돕기' 매치에서 승리하며 간신히 연패 수렁을 벗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후반기 탈꼴찌는 쉽지않아 보이는 상황이다. 9위 고양 오리온과는 4게임 차다. 프로농구 역대 단일시즌 최저승률은 1998-99시즌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가 기록한 0.067(3승 42패)이다. 현행 54게임 체제 이후로는 2005-06시즌 인천 전자랜드가 기록한 0.148(8승 46패)이 가장 저조한 성적인데, 현재 부산의 페이스라면 구단 역사상 최악의 승률을 넘어 인천의 불명예 기록에 근접할 가능성도 높다.

조동현 감독은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코치 생활을 거쳐 2015년부터 친정팀 부산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로 하향곡선을 겪고 있던 팀의 '리빌딩'이 조 감독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조동현 체제에서 부산의 행보는 리빌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초토화'에 더 가깝다.

조성민-이재도 등 한때 팀의 주역으로 활약하던 프랜차이즈급 선수들은 조동현 감독 부임 이후 대부분 팀을 떠났다. 하지만 연이은 트레이드와 선수단 개편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팀전력은 크게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부상자도 해마다 비정상적으로 속출하면서 선수단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신인드래프트 1, 2순위를 싹쓸이하여 허훈과 양홍석같은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드래프트 자체가 예년보다 흉작이었던 데다 이들도 당장 리그 판도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선수들은 아니다. 허훈은 개인 기록상으로는 올 시즌 유력한 신인왕 후보이지만, 실력은 역대 1순위급 신인들과 비교해 무게감이 떨어진다. 허훈의 영입으로 오히려 포지션과 스타일이 겹치는 이재도를 트레이드하게 되는 손실도 있었다. 심지어 고졸 출신 양홍석은 아직 몇 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 선수다.

이대로라면 조동현 감독은 이충희-박수교-박종천-김상준 등 KBL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꼽히는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무엇보다 실패한 선배 감독들이 대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당한 것과 달리, 조 감독만은 나쁜 성적에도 불구하고 3년째 여전히 감독직을 지키고 있다. 3년째라면 최소한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정도는 확실하게 제시해야 하는 게 감독의 의무다. 실력 없는 감독에게 시간적 여유를 준다고 해서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부산의 몰락이 주는 씁쓸한 교훈이다.

젊은 감독들의 혹독한 시행착오는 경험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상범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원주 DB가 약체라는 평가를 딛고 올시즌 전반기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킨 것이 좋은 예다. 최근 프로구단들이 '소통'이나 '스타성', '신선함' 등을 내세워 검증도 될 된 젊은 감독들을 성급히 중용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그러나 감독은 경험을 쌓는 자리가 아니라, 축적된 경험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 가깝다. 선수 시절의 명성과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엄연히 별개다. 아직  준비가 될 된 젊은 감독들이 성급히 뛰어들었다가 농구 커리어에 재기 불가능한 타격을 입기라도 한다면 한국농구로서도 큰 손실이다. 무조건 젊고 새롭다고 해서 좋은 리더십까지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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