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부근부터 드리블해 수비를 하나둘 제쳐낸다. 자신을 막아서는 선수가 몇 명이든 상관없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발에 똑 붙어있는 드리블로 박스 안쪽으로 진입한다. 골키퍼와 마주한 상황에선 침착한 마무리 능력을 뽐내며 골망을 가른다.

지난 2014년 AFC(아시아축구연맹) U-16 챔피언십 일본과 8강전에서 그랬고, 지난해 국내에서 개최된 U-20 월드컵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와 맞대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우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유형의 선수였고, 역대 최고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유소년 대표팀은 세계무대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이승우가 지난 6일 '만 20세'가 됐다. '일본 정도는 가볍게 이길 것'이라는 당돌한 인터뷰를 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성인이 된 지도 한 참 지났다. 정들었던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탈리아로 둥지를 옮겼고, 어엿한 프로 선수가 됐다. 기다린 끝에 데뷔전을 치렀고, 선발로 나선 경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우의 현재는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프로에서도 유소년 시절 보여준 폭발력을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기대했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팬들은 환상적인 골 장면에 환호했던 과거와 달리, 경기에 출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뻐하고 있다. 대한민국 특급 유망주였던 이승우는 잘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힘겨운 프로 데뷔 시즌

 한국 U-20 축구대표팀 이승우가 지난 29일 충남 천안축구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 대표팀은 오는 30일 오후 8시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포르투갈과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16강에서 맞붙는다.

한국 U-20 축구대표팀 이승우가 지난해 5월 29일 충남 천안축구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여름 이적 시장이 닫히기 직전, 팬들은 환호했다. 이승우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바르셀로나 B를 떠나 이탈리아 세리에 A 승격에 성공한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주전 확보는 손쉬울 것처럼 보였다. 베로나에는 지암파올로 파찌니를 제외하면 두 자릿수 득점을 해준 선수가 없었다. 세리에 B(2부)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공격수가 적었다. 17세 모이스 킨과 다니엘레 베르데가 새롭게 합류(임대)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승우라면 경쟁 우위를 점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데뷔전부터 늦춰졌다. 지난해 여름 이적 협상에만 몰두한 탓에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하루빨리 데뷔전을 치르고 싶었지만, '대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마침내 기회가 주어졌다. 명단에 포함된 지 4경기 만이었다. 이승우는 '강호' 라치오와 홈경기서 0-3으로 밀리고 있던 후반 25분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승우의 프로 데뷔전은 나쁘지 않았다. 측면 공격수로 투입됐지만, 중원에서 빌드업을 도맡았다. 안정적인 볼 터치와 드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가 돋보였다. 장기인 드리블도 여전했다.

선발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라 여겼다. 특히 베로나는 1승도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 변화가 불가피했다. 그런데 데뷔전 이후 두 번째 출전까지는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주어진 시간도 데뷔전(19분)보다 적은 13분이었다.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난달 23일 우디네세 원정에서 교체로 뛴 34분이 프로 데뷔 이후 최다 출전 시간이다.

선발 출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우는 코파 이탈리아(FA컵)에서 두 차례의 선발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11월 지역 라이벌 키에보 베로나와 경기에선 90분을 소화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힘을 보탰다. 후반 막판 다리 경련을 호소하며 교체됐을 정도로 투혼을 불살랐다.

두 번째 선발 출전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우는 지난달 AC 밀란과 맞붙은 코파 이탈리아 16강전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번뜩이는 드리블을 보여줬고, 수비 가담과 중원 싸움에도 끊임없이 가세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공격 포인트는 없었다. 절실함을 안고 뛴다는 것은 보였지만, 베로나가 자신을 선발로 써야 할 이유를 증명하진 못했다.

2주간의 휴식기, 반전 마련할 수 있을까 

이승우는 절반이 지난 2017·2018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7경기를 뛰었다. 모두 교체였고, 그라운드를 밟은 총 시간은 126분이었다. 냉정하게 이승우의 현재까지 성적은 낙제에 가깝다. 투지 외에 보여준 것이 없다. 방출당해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이다.

이승우가 몇 차례 번뜩이는 드리블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 페널티박스 부근이 아닌 중앙선 혹은 수비 지역인 경우가 많았다. 들쑥날쑥한 출전 시간과 적은 기회 탓에 컨디션 관리도 쉽지 않다.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투지를 불사르지만, 10cm 이상 큰 선수와 몸싸움은 매번 힘겹다. 최근에는 조급함까지 더해지며 패스 성공률이 떨어졌고, 자신감마저 잃은 모습이다.

이승우는 자신의 생일이자 만 20세가 된 6일 나폴리와 경기에서 벤치를 지켰다. 지난달 31일 유벤투스전에 이은 2경기 연속 결장이다. 유벤투스전을 앞두고선 부상 소식까지 전해졌다. 여러모로 풀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겨울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이승우에게 약 2주에 가까운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파비오 페치아 감독에게 자신이 주전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특히, 이승우는 공격수다. 상대 진영에서 수비를 헤집고, 결정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패스 성공률도 끌어올려야 한다.  

베로나는 최근 주전과 조커를 오가는 스트라이커 파찌니, 이승우가 선호하는 왼쪽 측면 공격수 베르데, 풀백이지만 팀 내 득점 2위에 올라있는 마르틴 카세레스가 이적설에 휘말리고 있다. 19위에 위치한 베로나는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위기지만, 이승우에겐 기회일 수 있다. 겨울 휴식기가 중요한 결정적인 이유다.

휴식기 이후에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뛰어야 한다. 유망주를 벗어나 어엿한 성인 선수로 인정받아야 한다. 휴식기를 마친 이승우는 이전과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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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헬라스 베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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