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영화 1987 ⓒ CJ 엔터테인먼트


[기사 수정 : 6일 오후 9시 20분]

이 영화가 예매율 2위라는 매표소 직원의 말은 뜻밖이었다. 언젠가 관객이 적은 인기 없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던지 극장 안에 난방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주로 평일 한가한 낮 시간대 영화 관람을 즐기는 나로선 난감한 일이었다. 서너 명의 관객이 띄엄띄엄 앉아, 히터가 나오지 않는 극장 안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영화를 봐야 했던 경험을 몇 번 한 뒤로는 흥행 실적이 별로 안 좋은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아예 두툼한 옷에 무릎 담요를 챙겨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영화를 보러가기 위해 집을 나서며 잠시 고민을 했다. < 1987 >은 내게 좀 생소한 영화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드물게 스포일러 방해 없이 보게 된 영화이기도 했다. 이제 겨우 개봉 3일째(12월 29일),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로 극장엘 오게 되었다.

지인으로부터 영화 관람을 권유받기 전까지 노트북 화면에 '1987'이라는 두툼한 고딕체의 스틸 컷 홍보화면이 떠 있던 것을 몇 번 보았던 기억은 있다. '1987'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영화에서 다루게 될 내용이 어렵잖게 짐작이 갔다.  

평일, 방학을 맞은 대학가의 멀티플렉스관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매표소 직원의 말에 의하면 <신과 함께>라는 영화가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 매표 광경을 보니 대부분 <신과 함께> 표를 달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 시대물 < 1987 >이 예매 순위 2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987년의 긴박했던 상황을 재현한 영화

해당 영화의 상영관 객석은 3분의 1가량이 채워져 있었다. 평일 낮이고 개봉 3일째라면 괜찮은 반응이다. 관객의 대부분은 젊은층이었다. 내 연령대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 세대 취향에 맞는 오락영화 <신과 함께>의 유혹을 물리치고 추억의 영화 < 1987 >상영관을 선택한 이 젊은이들의 안목이 궁금했다.  

영화 상영이 시작되고 줄거리 전개가 활발해지면서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택한 가장 큰 이유가 짐작이 갔다. 영화에는 국내 유명 배우들이 마치 보물찾기 하듯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의외의, 인기 최절정의 배우들이 화면에 나타났다가 강렬한 여운을 남기고 아쉽게 사라지곤 했다.

다른 영화에서였더라면 혼자서 영화 전체를 종횡무진 했을 주연들이 여기선 조연으로 존재감을 낮추고 스토리를 떠받치는 역할에 그친다. 김윤석, 하정우, 문성근, 우현, 설경구, 유해진, 김의성, 오달수, 박희순, 이희준, 고창석, 김태리 나중엔 강동원이 이한열 역을 연기함으로써 화려한 캐스팅의 풍성함은 최고조에 달했다.

영화는 우리 세대가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굵직한 사건들을 기본 골격으로 1987년의 긴박했던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영화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거나 깨우치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 열린 눈으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익히 보았거나 들었거나 상상했던 일들이 영화라는 장르를 거치며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재연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1987년 이후 태어났음직한 극장 안의 젊은 관객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일 수도 있겠다.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면서도 영화적 상상력과 오락성을 적절히 가미하고 있었다. 약간 허술해 보이는 구성과 낮은 개연성은 상업영화라면 부득이 안고 갈 수밖에 없던 맹점으로 이해할만한 수준이었다. 오로지 팩트로 일관하는 영화에서 극적인 반전과 화려한 결말에 대한 기대는 접어 두어야 한다. 영화는 고집스레 픽션의 상상력과 무한감동의 차용을 거부한 채 개연성, 역사성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영화를 보러 오기 전 무릎 담요를 가져와야 하나 고민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준비가 많은 영화인 모양이었다.

'실명' 달고 나온 등장인물, 현실감 더해줬지만

박종철 군 고문치사와 당국의 은폐시도, 정황 조작, 음모, 진실 규명을 위한 각계각층 인사들의 처절한 노력과 연대, 수배, 고문,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그리고 학생, 시민들의 치열한 투쟁 과정 등 우리 세대에겐 익숙한 상황이 최대한 사실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작품성과 오락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럼에도 '1987'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내겐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무의식중에 작용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토리의 기승전결에 대한 예상 적중률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무료한 객석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역사를 복기하는 자세로 영화 속의 배우가 연기하는 현실 속 인물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았다. 이 영화라면 그 과정이 어렵지 않다. 얼른 매치가 안 되는 인물은 일단 건너 뛰고 나중에 집에 와서 차분히 맞춰 보았다.

허구적 인물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이 도식은 쉽게 완성되었다. 김윤석→ 박처원 치안감, 하정우→ 최환 검사, 문성근→장세동, 설경구→ 김정남 교육문화수석, 우현→ 강민창 치안본부장 등이 어렵지 않게 파악되었다.

일부, 실제 사건에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보이는 몇 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들 박종철, 이부영, 김승훈 신부, 의사 오연상, 함세웅 신부, 이한열 등이 다 실명으로 나옴으로써 영화의 빠른 전개를 돕고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다큐가 아닌 바에야 팩트 과잉의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상상력과 흥미의 확장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결국 극 후반, 감독으로선 회심의 설정이이었겠지만 묵직한 허구가 갑자기 개입했을 땐 팩트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안도하던 관객에겐 영화에 품었던 신뢰와 긴장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가상의 인물 여학생 '연희'가 생전의 이한열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듯한 설정은 이 영화가 신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일하게 허용한 허구였지만 영화작품과 나 사이 가까스로 유지되던 타협지점은 이로써 허물어졌다. 객관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해도 각자 스토리의 한축을 담당하며 사태를 진전시켜 나가야 할 두 주인공의 느닷없는 설정은 역시 불필요한 설정이었다.

애정라인이 부득이한 것이었다면 영화의 무거움과 진지함을 잠시 내려놓고 젊음에 걸맞은 세련과 낭만이라도 안겨주던가. 잔잔한 BGM과 배우들의 애절한 연기가 호소해도 억지 감동을 쥐어짜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 지루한 러브스토리의 전개는 영화의 흐름을 막고 아까운 러닝 타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극장 안의,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청춘들을 둘러보니 이런 나의 해석이 이기적임을 깨달았다. 선망하는 배우들의 대거 출연과 더불어 잔잔한 러브라인에 대한 기대는 분명 젊은 감성이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정적 사치였다. 젊은층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감독의 직업적 전략과 감각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서울대 다니는 자식이..."란 대사의 불편함

 영화 < 1987 >의 한 장면

영화 < 1987 >의 한 장면 ⓒ CJ엔터데인먼트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의외의 부분에서 내 신경을 몹시 거슬리게 했다. 박종철 군의 죽음을 설명하는 대목, 하정우는 '세상에 어느 부모가 서울대 다니는 자식이 죽었는데...'라고 말한다. 한 번도 아니고 두어 번이나 반복된다.

영화는 하정우가 부검을 주장하는 단계마다 '서울대 다니는 자식이 죽었는데 어느 부모가 부검도 안 하고...'라는 대사를 되풀이해서 반복한다. 87년 당시 최환 검사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굳이 그 대사가 필요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 위 단락 중 확인되지 않은 사실 등 일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경험의 유무는 이 영화를 관람하는데 극명한 호불호를 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이유로 1987년 이후 출생자들인 젊은 관객들의 백지상태가 부러웠다. 영화 배경에 대한 선입견도 인물들에 대한 애증도 사건에 대한 편견도 없이 온전히 한편의 시대물을 감상하는 여유가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삼십년이 경과한 후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영화 속 장면이 남기는 잔상 사이에서 아쉬움과 착잡함이 동시에 엄습했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러도 그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한때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었다. 진실에 대한 왜곡과 거짓에 대한 강요를 일상으로 요구 받던 시절 사람들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더라는 관용구에 빗대어 유사한 상황을 개탄하곤 했다. 영화는 6.29 항복 선언을 끝으로 잠정 끝을 맺었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확실한 결말은 유보한 채 스크린 밖의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혁명이 미완성이듯 영화 역시 아직 결말에 이르지 못했다. 진실이 외면당하고 거짓이 활개 치는 모순이 완전히 타개되지 않는 한 여전히 우리 사는 세상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혁명 이전의 야만 상태이다.

승리의 달콤함에 도취된 자들만이 쉽게 혁명의 끝을 선언한다. 87년 주역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택한 직업군은 정치 분야다. 과거 민주화 운동으로 유명을 떨쳤던 인물들의 좌표를 찍어 추적해 보라. 정치무대, 지방자치단체로 집단 이동한 그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전문직 종사자, 성직자를 제외한 많은 운동권 인사들이 정계와 지방자치단체 요직으로 대거 서식지를 옮겼다. 민주투사→정계 입문으로의 쏠림 현상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더욱 횡행한다. 지역의 역사적 특성상 민주투사 배출이 많은 이곳은 지역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 요직을 전리품 나눠 갖듯 그들이 두루 장악하고 있다.

이 지역은 한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충성심이 견고해서 수구와 진보세력이 중앙에서 엎치락뒤치락 정권교체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단 한 번의 권력교체 없이 일당독식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피선거권자의 프로필엔 여전히 과거 운동 경력이 가장 화려한 스펙으로 작용한다.

긴 세월을 줄곧 직업 정치인로만 군림했던 그들인지라 일반, 사회인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서 갈수록 민중들로부터의 공감과 이해는 멀어져 간다. 한때는 그들이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던 투사들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흔적은 가끔 단체로 기념식장 같은 데서 민중가요를 부를 때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혁명주역들의 현재 모습이다.   

똑같은 상영관에서 나온 두 세대의 전혀 다른 감상

 영화 1987

영화 1987 ⓒ CJ 엔터테인먼트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화면 밖으로 혁명이 미완임을 선언하듯 '그날이 오면'이 울려 퍼졌다. 극장 문을 나서는 학생들 사이 고등학생 교복 차림이 보였다. 고등학생들은 영화 속 러브라인 연인들에 대한 흥분이 가시지 않은지 '김태리는 너무 멋지지 않냐. 아! 강동원은, 진짜 미쳤어', 주인공들의 외모에 관련된 감상평을 재잘거리며 극장 밖으로 사라졌다. 
  
똑같은 상영관을 거쳐 나온 두 세대 사이엔 전혀 다른 감상과 상념이 존재한다. 너무 멋져서 미쳐버릴 것 같은 선망의 대상이 존재하는 그 학생들이 부럽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많은 출연 배우들 중 평소 특별히 호감을 가졌던 사람조차 한 명 없었다.

그렇지만 독보적인 주인공이 없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비중 있는 두 인물 이한열 열사와 고 박종철 군 두 실제 인물에 관해서라면 나 또한 무한한 애정과 감동을 느낀다. 그 분들은 내게 당사자보다는 두 분 부모님의 이미지로 더욱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1990년대 초 무렵, 지역의 모 재야단체에서 주관한 양심수 후원행사장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날 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하신 한 스님이 행사 도중 갑자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여길 봐주세요. 이 두 분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여기, 사랑하는 자식들을 조국의 민주화의 제단에 바치신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스님으로부터 소개를 받은 두 어르신들은 왠지 낯이 익었다. 아!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일제히 탄식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종철 군 아버님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을 그때 처음으로 직접 뵈었다. 두 분은 양심수 후원행사를 격려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아 오셨는데 박종철의 아버님은 부산에서 광주까지 먼 길을 오셨다. 그날 조용한 음성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양심수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후원을 호소하시던 두 부모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고문과 최루탄으로 보낸 두 부모님들은 양심수 석방을 그토록 간절히 기원해 주셨다.

'양심수 석방!', 영화에 등장하던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현실을 부정하며 남영동 대공분실의 살벌함과 최루탄 직격투하의 잔인함을 영화 감상평으로 나누는 2018년 초입의 현실이 나는 진정 더 섬뜩하다. 영화에서 유해진은 수감자와 수배자들 사이의 전령 역할을 하며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조카의 안위까지 위협받는 위험을 감수한다. 유해진과 연희의 용기와 희생이 있어 자칫 역사에서 묻힐 뻔했던 박종철군 죽음에 관한 진실이 국민들 앞에 낱낱이 밝혀질 수 있었다.

"드디어 '비둘기'가 날아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감옥으로부터 날아온 진실을 밝혀줄 결정적 단서이자 국면을 전환할 절호의 문건을 접수한 민주인사가 영화에서 외쳤던 말이다. 2018년 우리 옆에도 지금 진실과 자유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위리안치 상태의 억울한 수형자들이 바깥세상과의 통방을 간절히 갈구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 일주일을 넘기면서 이 영화에 대한 찬사와 비판이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이는 이 영화로 인해 따뜻한 감동과 위로를 어떤 이는 되레 소외와 배신만을 안겨주었음에 분노한다. 상반된 두 평가를 가르는 근거는 혁명의 완성을 선언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영화는 분명 미완의 여운을 남겼다.

'촛불 혁명의 완성'. '양심수 석방'. '이남종 열사, 정원스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나는 이 영화의 유보된 결말에 잇대어 나의 다짐을 지문으로 남겨 놓는다.

1987 영화 박종철 이한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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