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 협상이 쉽지 않은 니퍼트. 8년 연속으로 KBO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재계약 협상이 쉽지 않은 니퍼트. 8년 연속으로 KBO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 두산 베어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팬들이 최근 구단과 재계약에 실패한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36·미국)를 향한 헌사를 담은 신문 광고를 자발적으로 제작하여 화제를 모았다. 지난 28일 한 유명 일간지에는 니퍼트의 사진과 함께 '우리 마음 속 영구 결번 베어스 40번(니퍼트의 등번호)'이라는 글이 들어간 전면 광고가 게재됐다.

두산 팬들은 광고를 통하여 "베어스의 에이스 No.40 니퍼트, 우리 마음속 영구 결번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꼭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니퍼트를 사랑하는 베어스 팬 일동"이라는 내용을 게재하며 니퍼트를 향한 고마움과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광고 제작은 순수하게 두산 팬들의 자벌적인 참여와 모금으로만 이루어졌으며 니퍼트가 시살상 한국 선수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에서 한글로만 메시지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팬들은 이 신문 광고를 스크랩한 액자를 니퍼트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KBO에서 특정 선수, 심지어 외국인 선수를 주인공으로 팬들이 신문 광고를 올리는 경우는 보기 드문 일이다. 두산 팬들은 지난 2011년 당시 김경문 감독(현 NC 다이노스)이 성적부진으로 팀을 떠날 때에 광고를 제작하여 그 업적을 예우한바 있지만 선수로는 니퍼트가 처음이다. 그만큼 두산 팬들에게 니퍼트가 단지 '한 명의 외국인 선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선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산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 받는 니퍼트

니퍼트는 두산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지난 2011년부터 KBO리그에 진출하여 7년간 두산에서만 활약하면서 통산 94승 43패 평균자책점 3.48의 성적을 남기며 KBO 최정상급 에이스로 군림했다. 2016년에는 28경기에서 22승 3패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 시즌을 보내고 MVP까지 수상했다. 6승을 그친 2015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즌은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승리를 기록할 만큼 '꾸준함'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강했다. 2010년대 두산의 4회 한국시리즈 진출과 2회 우승에서는 니퍼트의 활약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니퍼트는 종전 다니엘 리오스가 가지고 있던 외국인 선수 최다승(90승)을 넘어 KBO 외국인 투수 최초의 100승 기록까지 불과 6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화려한 성적도 성적이지만 니퍼트는 두산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했다. 니퍼트는 프로다운 자기관리와 성실함으로 동료들의 모범이 됐고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도 우수하여 국내 선수들과의 관계 역시 매우 좋았다.

니퍼트는 평소 "두산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니퍼트+하느님을 의미하는 '니느님'이라는 별명이 유명해졌고, 2015년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이후에는 '니서방'으로 불리기도 했을만큼 국내 팬들에게 웬만한 토종 프랜차이즈스타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니퍼트도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2017시즌에도 니퍼트는 14승 8패 평균자책점 4.06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어느덧 36세의 노장이 되면서 구위가 하락세를 보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포스트시즌에서도 3경기 16.2이닝 16실점(15자책)으로 부진했다. 두산은 고심 끝에 니퍼트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대안으로 롯데에서 활약하던 조쉬 린드블럼을 영입했다.

'정과 의리'가 아닌 현실을 고려해야하는 프로구단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니퍼트와 두산 팬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팀을 위해서 헌신하고 오랫동안 꾸준한 성적을 올렸어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국인 선수'일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두산의 레전드'로 인정받은 훈훈한 장면

올겨울 스토브리그에는 유독 '이별'의 순간이 많았다. 니퍼트 외에도 넥센에서 활약하던 밴헤켄, NC의 에릭 해커 등  오랫동안 KBO에서 활약하던 장수 외인들과의 아쉬운 결별 소식이 이어졌다. 국내 선수들도 강민호(삼성)-민병헌(롯데)-김현수(LG) 등 프랜차이즈급 선수들이 잇달아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팬들을 아쉽게 했다.

특히 린드블럼은 롯데를 떠나 두산과 계약하면서 SNS를 통하여 롯데와의 협상과정에서 겪었던 불화를 폭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LG는 베테랑 정성훈을 전격 방출한 이후 극성팬들이 구단의 방침에 반발하여 프런트를 향한 문자 테러와 항의집회가 벌어지는 등 후폭풍을 앓기도 했다. 한때 행복했던 추억도 이별마저 아름답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니퍼트를 향한 두산 팬들의 예우는, 구단과 선수간에 미처 다하지 못한 '품위있는 이별'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서류상의 계약이 끝나는 순간 구단과 선수는 '남남'이 되지만, 팬들에게는 그렇지않다. 팬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구단이나 선수들과 함께 공유한 시간동안에 남긴 추억이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지만 스포츠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결별하는 순간에 이르더라도 '사람과 추억'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우는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그런 것이 한국 스포츠 문화의 격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두산 팬들은 니퍼트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구단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니퍼트의 헌신과 업적에 대하여 구단이 못다 한 존중을 대신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적어도 팬들에게 니퍼트가 팬들의 마음 속에 단지 한 명의 외국인 선수가 아닌 '두산의 레전드' 그 자체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훈훈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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