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2017년 연말 콘서트,무대 사진

이소라 2017년 연말 콘서트,무대 사진 ⓒ 김시정


지난 21일 저녁, 공연장을 찾으면 으레 여기저기 붙어있을 법한 포스터 하나 없이 입구에 '비긴어게인 JTBC'라고 씌여진 화환을 발견하고서는 '여기구나' 피식 웃음이 났다.

그녀의 공연장을 찾는 길이 그녀와 퍽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평일 저녁임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가게들 사이로 북적이는 사람들, 그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한적한 3층에 자신의 이름 하나, 포스터 하나 걸리지 않은 공연장, 코엑스 오디토리움. 눈길을 끌거나 귀를 잡아당기는 그 어떤 꾸밈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소라, 그녀의 공연을 처음 본 건 12년 전 봄. 노래방에 가면 이소라 노래가 한 번쯤은 꼭 불리던 시절, 한참 사랑이 무르익었던 남자친구와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갔다. 화이트 데이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소라가 첫곡으로 '청혼'을 부르고는 수줍게 "제 노래 중에 신나는 곡은 이곡 밖에 없어서... 연인들이 많이 오셨는데 공연 끝나고 가실 때 울면서 따로 나가지 않으셔야 할 텐데요." 농담처럼 던진 말이 사실이 되었다. 옆에 앉은 남자친구는 안중에도 없이 그녀의 음악에 흠뻑 빠져 공연 내내 펑펑 울고 나서부터였다, 이소라 콘서트가 혼자만의 취미가 된 건.

아직 조명을 밝히지 않은 무대는 아무런 장식이 없이 액자의 프레임처럼 테두리에만 은은하게 조명이 켜져 있었다. 이후 공연장이 어두워지며 무대에 약간의 조명이 들어오고, 공간을 차분하게 메우는 음악의선율을 따라 이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8시하고도 약 20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Siren'으로 관객을 맞았다.

무대 전면을 메웠던 얇은 막이 걷히고 그녀와 음악팀이 관객들 앞으로 선명하게 다가오며 다음 곡으로 'Happy Christmas'가 이어졌다. "며칠 있으면 크리스마스네요." 늘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신이 서운하지 않게 선물을 챙겨주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며 감사를 전한 그녀는  "공연을 하는 게 항상 두려워서 다 안 한다고 하지만, '크리스마스인데 공연 해야지' 하면 '아니야'라는 말이 나오진 않아요. 그렇다고 밝은 노래, 크리스마스 캐롤을 하는 공연은 아니라는 걸...아시는 분들이...오셨겠죠"라고 조심스레 이소라다운 공연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뒤이어  "오늘 숨이 많이 찬다. 여러분 들으시면서 숨이 많이 차셨겠다"며 "관객이랑 노래하는 사람이랑, 연주하는 사람이 보고, 듣고 하다보면 호흡을 같이 하게 된다"고 관객들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시공간만큼은 공연장의 모든 이가 함께 호흡하는 시간임을 상기시킨 그녀는 "진정이 돼서 여러분이 편하게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하며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도 침묵하며 그녀의 숨소리에 집중

최근 JTBC에서 방영한 <비긴어게인>을 통해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린 그녀의 이번 연말 공연은 이소라만의 독보적인 감성이 짙은 초창기 대중적인 발라드곡들로 알알이 채워졌다. '그대와 춤을', '랑데뷰', '겨울 이별', '기억해줘',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이 연달아 불렸고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관객들은 그녀가 노래하는 사랑에 빠져들었다. 이소라의 노래에 담긴 사랑은 처절하다. 잔인하리만큼 비참하고, 질척거린다. 그런 그녀의 감성을, 마음을,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관객들은 노래와 노래 사이에도 침묵하며 그녀의 숨소리에 집중했다.

여러 곡의 노래가 한 곡처럼 들렸다. 한참 열애 중이었던 연인과 함께 들어도 사랑의 아픔이 날이 선 겨울 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들었었다. 하물며 이별 중인 이 겨울, 그녀를 만난다면 그 아픔을 어찌 감당하랴...망설였던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괜한 기우였다.

이소라의 라이브 앞에서는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진다. 액자처럼 꾸며진 그녀의 무대는 그녀가 늘 그렇듯 자신의 세계 속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한 장치 같아 보였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몰입이 그런 그녀와 그녀의 세계를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에 온전히 닿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깊은 슬픔과 아픔 안에서 나의 슬픔과 아픔은 객관성을 잃고 '온전하게' 경험된다.

"아는 사람이 공연에 온다고 하면 떨려서 잘 못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그녀는 "제 옆에 있는 사람들, 제가 방송하거나 노래하거나 그럴 때, 뭘 끈기있게 못하는 저를 노래할 수 있도록, 토닥토닥하면서 잘 이끌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어 <비긴어게인>을 촬영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노래하느라 '제대로 못해' 아쉬웠던 노래, 또 하면서 좋았던 노래들('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Track4')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문득 <비긴어게인>에서 유희열과 이소라의 대화가 떠올랐다. 한 카페에서 유희열은 자신이 진행하던 음악 프로그램 <스케치북>에 이소라가 아주 오랜만에 나와 했던 인터뷰를 되짚으며 이소라를 읽었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뭘까요?'라는 얘기를 하면서 '노래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했더니 누나가 '생각이요'라고 답했다. 그게 누나(이소라)다. 누나는 음악을 만들 때나 대할 때나 노래를 할 때 목소리를 내 가지고 그냥 부르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자기다. 그 생각이 다 담겨있는 사람이니까 제일 괴로운 사람이 누나다"라고. 이에 이소라는 "살아가는 이유라던지 존재 가치가 다른 거 외에는 없는데 이걸(노래를) 그냥 해버리면 난 아무 것도 아닌거야."(<비긴어게인 2회> 중에서)라고 음악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었다.

"노래를 대충 해버리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거야"라고 화면에 뜬 자막이 생생하다. 그것이 이소라 음악의 힘이다. 그녀의 음악은 그녀의 생각이자, 그녀 자신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을 최대한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큰 과제인 것.

그녀가 마치 수화기 건너편에서 내게 속삭이듯

 이소라 콘서트 후에 받은 포스터.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이름과 공연 설명.

이소라 콘서트 후에 받은 포스터.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이름과 공연 설명. ⓒ 김시정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그녀가 마치 수화기 건너편에서 내게 속삭이듯,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 망설이는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어 연주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Track9',  '바람이 분다'가 관객들을 폭풍처럼 휩쓸고 간 사랑의 끝에 쓸쓸하게 남겨두었고 관객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쳐버린, 달라져버린, 사라져버린 사랑의 끝에 함께 서 있음으로 홀로 남겨진 허전함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부르기가 늘 벅차다'며 자신의 음악팀 없이는 부르기를 꺼렸던(<비긴어게인> 中에서)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어 하나의 소리를 내어주는 음악팀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소개했다. 또 내년에는 오래 손 놓고 있었던 10집 앨범을 꼭 자신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늘 아이같이 이랬다 저랬다, 나갔다 안 나갔다, 했다 말았다, 이런 거 말고 조금 더 어른이 되어서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저를 저에게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피아노 이승환, 기타에 홍준호와 김동민, 드럼 이상민, 베이스 최인성으로 꾸려진 음악팀과 함께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선사한 곡은 'Track3'.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 않을 땐 속상해하지 말아요
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 내지 마세요
너무 아픈 날 혼자일 떄면 눈물 없이 그냥 넘기기 힘들죠
모르는 그 누구라도 꼬옥 손잡아 준다면 외로움은 분홍색깔 물들겠죠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Track3'(<7집>,2008)

공연 내내 사랑의 아픔을 노래했지만, 결국 그녀의 음악과 그녀의 삶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 이승환의 피아노 선율과 이소라의 목소리만으로 꾸며진 마지막 곡 'Amen'을 통해 이소라는 자신을 향한 기도를 쓴다. "수많은 밤을 남모르게 별을 헤며" 자신을 위로했을 그녀가, "강해지길 기도하고 지나간 이별로 울기도" 했을 그녀가 바치는 간절한 기도. 그 기도 안에는 각기 다른 경험으로 각기 다른 아픔을 겪었을 우리들이 있고, 그런 우리 모두의 간절함이 있다. "방황"도, "가난"도, "욕망"도, "절망"도 다 잊고, "나를 믿기로", 이 모든 것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를 믿기로, 우리 안에 사랑을 믿기로 하는 기도.

또 언제 할지 모르는 공연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는 그녀가 '더 어른이 되겠다'는 바람과 달리 '지금'처럼 나이 들기를 바란다. 사랑과 이별에 익숙해지고, 약아지고, 쿨해지고, 빨라지지 않고, 지금처럼 이보다 더 깊을 수 없을 사랑 속에서 아파하고, 그래서 잊지 못하고, 매달리고, 그렇게 떠나보내고 그 쓸쓸함 속에 머물고 그러나 다시 사랑하고 또 다시 울 수 있는 아이같은 그녀이기를. 그런 그녀와 그녀의 삶과 그녀의 음악을 통해 늘 나를 믿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녀가 보내는 기도. 그 기도를 가슴에 품으니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가 있는 세상도 살아볼 만하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공연장을 나서며 나누어주는 흰 종이를 받아들었다. '이게 뭐야?' 갸우뚱한 순간 종이 한 귀퉁이에서 촉감이 느껴진다.

손으로 더듬어야, 잘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글귀. 다시 한 번 피식 웃음이 난다. 있는 듯 없는 듯 내 마음에 가로새겨진 이소라의 음악에 한동안 이별앓이가 생생하게 아름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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