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정지우 감독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침묵' 정지우 감독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18년만의 재회였다. 배우 최민식과 감독 정지우는 영화 <침묵>으로 꼭 18년만에 다시 만나 영화를 함께 찍었다. 시사회나 영화제 등 행사에서 오다가다 몇 번 본 것 말고는 그 긴 세월동안 거의 본 일이 없단다. 그럼에도 최민식은 감독이 정지우라는 말을 듣자마자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영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물었다. "18년만의 만나서 작업을 했는데 달라진 점은 없었냐고. 두 사람은 똑같은 답변을 했다.

"최민식은 핵심의 덩어리"

"나는 최민식이 18년 전이랑 똑같은 것 같다. 완성체? 핵심의 덩어리 같은 배우고 지금도 여전하다. 뜨겁고 '완성적'이고. 다르다는 기분은 들지 않은데 이제 주름이 더 많으시지. (웃음) <침묵> 때문에 <해피엔드>를 본 사람들이 있는데 다들 어쩜 이렇게 뽀송한 청년이 나오냐고 하더라."

- 최민식 배우도 마찬가지 대답을 하더라. 정지우 감독도 18년 전과 똑같다고. (웃음) 최민식이랑 같이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한 건가 아니면 시나리오가 최민식이랑 맞아서 최민식을 캐스팅한 건가?
"임승용 용필름 대표가 중국 영화 <침묵의 목격자>를 리메이크하는 게 어떤지 물었고 원래 이런 소재로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승낙했다. 최민식 선배가 시나리오 작업이 이뤄지기 전에 합류를 했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시나리오 작업부터 해나간 셈이라고 봐야 한다."

- 시나리오 작업 전부터 최민식이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였다니 정지우 감독과의 의리로 봐야 하나?
"(웃음) 나도 나지만 임승용 대표가 이 영화의 제작자인데 역시 <올드보이>와 <주먹이 운다>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침묵>은 두 사람의 조합이라기 보다는 세 사람의 조합이라고 봐야 더 말이 맞는다. 또 그런 게 있다. 작품이라는 게 마치 그 사람의 알몸처럼 다 드러난다.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 같다거나 그렇지 않나? 그런 속일 수 없는 기분이라는 게 있다.

나도 그동안 최 선배님 영화를 꾸준히 봤고 최 선배님도 내 영화를 봐주셨기 때문에 만나서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도 의미가 있지만 작품을 따라가면서 '아 고민이 많으시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게 무의식이 겉으로 드러나는 작업이니까. 일반 대중들도 배우나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게 있는데 한 번 작업을 하고 나면 부부 못지않게 속내가 느껴지니까 더 잘 알겠지. 누구보다도."

'침묵' 정지우 감독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무리 감독이라지만 배우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요청은 되도록 덜 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것보다 자기 몸으로 무언가를 드러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드러냄은 상대 배우와 연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니까 최민식 선배님 같은 경험 많은 배우가 상대 배우로 있다는 건 젊은 배우들에겐 되게 좋은 거다." ⓒ 이정민


- 작업을 하면서 최민식 배우와는 많은 대화 나누셨나.
"그렇다. 현장에서 굉장히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 번은 최 선배님이 그러시더라. <침묵>은 '어른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물론 18년 전에 같이 찍었던 <해피엔드>도 '어른들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그 영화는 나이 어린 사람이 봐도 그냥 잘 볼 수 있는데 이번 영화에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나오고 그런 의미에서 더 '어른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침묵>을 찍다 보니 <해피엔드>도 한 번 보고 싶어지더라. 상영을 한 번 묶어서 해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연달아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 <해피엔드>는 '치정극'이고 <침묵>은 '법정 스릴러'로 장르가 많이 다른데?
"누군가는 <해피엔드>의 주인공이 18년의 세월이 지나 (최민식이 <침묵>에서 맡은) 임태산이 됐다고 생각하고 말을 만들어 보면 완벽하게 이어 붙일 수 있다고도 했다. 장르는 물론 다르지만 <침묵>은 '법정 스릴러'라는 '외피'가 영화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가면 갈수록 두 영화가 그렇게까지 다르진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 <침묵>을 두고 '장르가 최민식인 영화'라고까지 했다.
"임태산의 마음 속 흐름이 전체 프레임이기 때문에 그것에 공감해서 읽으면 더 재밌고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기도 하는 그런 영화가 될 것 같다. 임태산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까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마음을 숨긴 상태에서 임태산이 의도적으로 드러낸 부분만이 남게 된다. 그 전체 이야기의 골조가 최민식 마음 속 '지형도'다. 최민식의 연기가 뛰어나서 혹은 그 사람이 제1주인공이라 장르가 최민식이라고 했던 게 아니다."

"논쟁적인 영화? 나쁘지 않다"

'침묵' 정지우 감독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침묵' 정지우 감독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침묵>이 개봉하고 며칠이 흘렀다. 호불호가 조금 갈리더라.
"사실 평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나는 '논쟁적인 영화'가 좋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웃음) 논쟁적인 상황이 부담스럽지는 않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 <해피엔드> 이후로 <사랑니> <은교> <4등> 등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다. 흥행 욕심이 별로 없는 감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하하하. 흥행 욕심이라는 말이 좀 특이하긴 하다. 그걸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 그것이 모든 가치에 앞서 중요한 사람도 있긴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가 재밌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기본적으로 내가 재밌어야 하고 영화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자부심 느껴지는 그런 영화를 만들길 바란다."

- <침묵>의 어떤 점이 재밌어서 연출을 하겠다고 했나?
"우리는 무언가를 접할 때 영상이나 이미지가 있으면 그걸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의 일부일 수 있다. 그 사실의 일부에 대한 집착? 무조건적인 신뢰? 그것이 최근 더욱 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보고 믿는 과정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 최민식이 맡은 재벌 총수인 임태산은 돈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임태산은 현재 한국의 어떤 모습이다. 굳이 거창한 '상징'이라는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그렇다. 돈으로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어떤 상징. 돈으로 안 되는 게 없고 모든 걸 다 가진 사람. 그런데 사실 돈 말고 가진 게 없거나 돈 말고 다 잃은 거다. 그런 상태의 인물이 마음을 움직이면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아가는 과정인 거다. 그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길 바라고."

'침묵' 정지우 감독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는 세 명의 '여성 주연 배우'(박신혜·이하늬·이수경)와 함께 했다. 덕분에 <침묵>은 '백델 테스트'(영화 속 성평등을 가르는 척도가 되는 테스트)에 통과한 영화로 회자되기도 했다. "'백델테스트'를 부끄럽지만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처음 듣고는 해당 사항에 없는 영화도 있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여성 인물이 있는) 영화가 많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약간 이상했다." ⓒ 이정민


- <해피엔드>에서는 전도연, <은교>에서는 김고은의 새로운 얼굴들을 만들어냈다. 감독으로서 특별한 생각이 들 것 같은데.
"그 두 사람이 잘 돼 기분이 좋다. 얼굴에 고민이 보이면 걱정도 되고. 새로운 얼굴이 영화 안에 녹아들어 새로운 기운이 영화에 퍼지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 완전히 새로운 얼굴은 아니지만 <침묵>의 이수경 배우도 익숙한 배우는 아니지 않나. 최민식과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와 저 친구 누구냐'는 말도 많이들 해주셨는데 그 새로운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게 되게 좋고 자꾸 해보고 싶다."

- <침묵>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 극장 문을 여는 순간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 생각도 없어지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이나 상황이 생각났으면 좋겠다. 가까운 지인들이 제일 많이 해준 덕담도 '길게 생각이 남는다'였다."


침묵 정지우 최민식 해피엔드 4등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