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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의 조건 ②

지난주에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아본 바, 목적에 맞게 쓰고, 간결하게 쓰되, 비문을 피하여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이번에는 그 세 조건에 이어 네 번째 조건부터 여덟 번째 조건까지 나머지 5개의 조건을 마저 알아본다.

넷째, 능동형으로 쓴다.

학창 시절 영어공부를 할 때 우리는 능동태와 수동태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영어에서는 문장을 구성할 때 사물이나 관념을 주어로 두는 경우가 많아 수동태 표현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반면 우리 말글살이에서는 수동태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말글살이를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영어로 된 문학, 학문, 사유방식이 수입되어 널리 퍼져나가면서, 우리 말글살이에도 피동형(수동태) 표현이 무척 흔해졌다. 하지만 피동형을 의식 없이 사용하면 문장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능동형 문장은 행동의 주체를 주어로 두고, 대상을 목적어로 두고, 행동을 표현하는 말을 서술어로 두는 문장이다. 반대로 피동형 문장은 행동의 목적이 되는 대상을 주어로 변신시키고 서술어를 그에 맞게 변형시킨다.

능동형 문장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순서로 흐른다면 피동형 문장은 한 차례 꼬인 문장이다. 앞서 좋은 문장은 간결하고 명확하고 문장 안 성분의 호응이 잘 맞아야 한다고 했는데, 피동형으로 서술어가 꼬이면 그런 조건을 지니기가 어렵다.

"학생들에 의해 길들여진 책상" 이런 표현을 많이 쓴다. 굳이 이렇게 배배꼬아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학생들이 길들인 책상" 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관찰해 보면 우리말에 들어온 피동형 표현은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글쓴이의 표현 습관일 뿐이다.

특히 피해야 할 것은 이중피동이다. 이중피동은 말 그대로 피동태가 두 번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휴가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계획이 잘 짜여져야 한다."

'짜여져야 한다'를 보면 '짜여'가 피동태 한 번, 이 '짜여'에서 다시 한 번 더 '져야'로 두 번 피동 시켰다. 이걸 자연스럽게 능동태 문장으로 바꾸어보자.

"휴가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계획을 잘 짜야 한다."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중복 표현을 피한다.

밥 먹을 때 매끼 같은 반찬이 나오면 질린다. 글도 마찬가지다. 매번 똑같은 문장이나 단어를 만나면 읽기가 지루하다. 그래서 글쓰기 책이나 강연에서 '중복을 피하라'는 말이 으레 나오는 단골 주의사항이다. 단어만 피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구절이나 문장 역시 중복이 없어야 좋은 글이다.

여섯째, 적절한 단어를 선택한다.

우리가 글을 쓸 때 가장 고심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단어 고르기이다. 상황 설명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할 때 단어에 따라 뉘앙스 차이가 상당하므로 여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 이외수가 쓴 <글쓰기의 공중부양>을 보면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어가 글쓰기의 출발이자 마지막이라고 강조하면서 단어 채집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권하는 방식으로 단어 채집장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도 어휘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흔히 단어장 하면 영어단어장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말글살이에서도 단어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좀 무식한 방법이지만 나는 학창 시절 사전을 통째로 외우는 미련을 떤 적이 있다. 이때 영어사전과 국어사전 두 권을 갖고 무식한 도전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모두 기억에서 사라져서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게 사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단어를 발견하고 습득할 때 훨씬 자연스럽고 빨랐다.

일곱째, 외래어는 적당하게 활용한다.

오늘날의 말글살이에서는 순수한 우리말만으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언어들이 뒤섞여 활용되고 있다. 한자어는 당연하고, 영어나 일본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온갖 곳에서 유래한 다국적 단어들이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외래어를 쓰다 보니 제 기능을 충분히 하는 우리말이 버젓이 있음에도 외래어로 바꿔 쓰는 경우까지 흔해졌다. 하지만 이는 우리 말글살이를 파괴할 뿐 아니라 정확한 의미 전달을 방해하기 쉽다. 널리 사용하는 우리말이 있으면 그걸 우선으로 쓰고, 우리말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에만 외래어를 쓰는 것이 좋다.

외래어를 무조건 쓰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북한 방송국의 축구 중계를 들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구석차기, 벌차기 등 우리말로 바꿔 쓴 축구 용어가 오히려 낯설고 알아듣기 어렵다. 외래어라도 이미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게 말글살이에 들어와 있다면 낯선 우리말보다 친숙한 외래어를 쓰는 것이 더 낫다.

하나 짚어봐야 할 것은 한자어이다. 한자어가 우리 말글살이의 큰 부분임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분별한 한자어 사용은 글을 현학적이고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한자어 역시 가능한 우리말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생활어로 자리 잡은 말까지 우리말로 바꿔 쓰려고 하면 되레 독자에게 혼란이 줄 수도 있다.

여덟째, 맞춤법을 지킨다.

글을 쓸 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장부호를 제대로 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맞춤법은 불필요한 형식이 아니라, 내용 전달을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한 실용적인 규칙이다. 문장부호나 띄어쓰기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고전적인 예,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장부호는 습관처럼 지킬 수 있도록 평소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거리를 걷다가 맞춤법이 틀리거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문장을 발견하면 꼭 교정하는 본능을 보이곤 하는데, 이것도 아주 적절한 글쓰기 연습이다.

좋은 문장의 조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쓸 때마다 이 모든 조건을 다 의식하면서 글을 쓸 수는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처음 글을 쓸 때는 너무 잘 쓰려고 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써내려가는 것이 좋다. 다만 퇴고할 때는 여기서 언급한 원칙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원칙을 가지고 퇴고를 하면 글이 훨씬 좋아진다.

또한 늘 자기 글을 돌아보면서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다 보면 이런 요소들은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몸이 터득한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좋은 글을 쓴다. 그러니 걱정은 붙들어 매고 쓰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좋은 글도 저절로 쓸 수 있게 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태그:#글쓰기, #좋은 문장의 조건, #능동태, #중복을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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