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굴 FA시장이 열렸다.

한국야구위원회는 4일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2017년 FA자격을 갖추게 된 22명의 선수를 공시했다. 손아섭, 강민호, 최준석 등이 FA자격을 얻은 롯데 자이언츠가 5명으로 가장 많은 가운데 LG 트윈스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내부 FA가 한 명도 없다. 22명 중 '호부지' 이호준이 이미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FA는 21명이지만 '해외파' 황재균과 김현수 등이 포함될 경우 실제 FA 선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예년에 비하면 투수 쪽에 인재가 부족하지만 황재균과 김현수를 비롯해 손아섭, 민병헌, 정의윤 등 야수 쪽에는 쟁쟁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와 치열한 영입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하지만 생애 첫 FA자격을 얻는 9명 중에는 '인생역전' 수준의 대박을 노리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준수한 기량을 갖춘 선수도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넥센 히어로즈의 채태인이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잠재력 폭발시킨 '천재타자'

채태인은 부산상고(현 개성고) 시절 강속구를 자랑하는 좌완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다가 8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 당한 어깨 부상 때문에 재활에만 매달리다가 마이너리그에서도 한 번도 등판하지 못하고 2005년 방출됐다. 그리고 2007년 4월 해외파 특별지명을 통해 4순위로 삼성 라이온즈로 지명됐다(부산상고 출신의 김응용 사장은 모교를 찾았다가 개인 훈련을 하는 채태인을 눈 여겨 봤다고 한다).

어깨 부상 전력 때문에 투수로서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채태인은 고교시절 화랑대기에서 타점상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타격에도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결국 삼성 입단 후 타자로 전향했고 그 해 처음 열린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MVP를 수상했다. 2008년 68경기에 출전해 두 자리 수 홈런을 때리며 타격 재능을 인정 받은 채태인은 2009년 17홈런72타점을 기록하며 삼성의 차세대 중심타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잦은 부상은 언제나 채태인의 성장을 가로 막았다. 2010년 8월에 당한 뇌진탕 후유증으로 2011년 53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2년엔 54경기에서 타율 .207 1홈런9타점으로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이 때문에 채태인의 2013년 연봉은 5000만원까지 추락했지만 2013 시즌 허리와 어깨 부상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타율 .381 11홈런53타점을 기록하며 '장외 타격왕'을 차지했다.

2014년 타율 .317 14홈런99타점으로 삼성의 통합4연패에 크게 기여한 채태인은 옆구리 부상에 시달린 2015년에도 타율 .348를 기록하며 제 몫을 다 했다. 하지만 '슈퍼루키' 구자욱의 등장으로 인해 팀 내에서 입지가 작아진 채태인은 2016 시즌을 앞두고 잠수함 투수 김대우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으로 이적했다. 마침 넥센도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의 해외 진출로 경험 많은 1루수 요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채태인은 2016 시즌 124경기에 출전해 타율 .286 7홈런72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득점권 타율이 .350에 달했을 정도로 타점 생산 능력 만큼은 여전히 건재한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던 2012년 이후 가장 적은 홈런(7개)과 가장 낮은 장타율(.397)을 기록하며 결코 만족하기 힘든 시즌을 보냈다.

충분히 검증된 타격과 수비, 많은 나이와 잦은 부상이 걸림돌

채태인에게 FA를 앞둔 올 시즌은 매우 중요했다. 채태인은 6월까지 3할5푼을 넘나드는 높은 타율을 기록하며 넥센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여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타격감이 하락하면서 타율 .322 12홈런62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분명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성적이지만 7월23일 kt위즈 전에서 통산 100호 홈런을 때려낸 후 단 하나의 홈런도 추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채태인은 최근 5년 동안 4번이나 .310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타격능력이 검증된 선수다. 2007년 프로 입단 후 11년 동안 기록한 통산 타율도 .301에 달한다. KBO리그 정상급으로 평가 받는 1루 수비도 발군. 실제로 채태인은 삼성 시절 내야수들의 불안한 송구나 1루 방향 강습 타구들을 척척 받아낸다는 의미로 첼시의 전설적인 골키퍼 페트르 체흐의 이름을 따 '채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공수를 겸비한 수준급 1루수 채태인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거물 FA로 구분되지 않는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7세가 되는 적지 않은 나이도 있고 선수 생활 내내 따라다닌 부상 문제도 채태인을 선뜻 대형 FA로 구분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흔히 1루수는 많은 홈런을 때리는 거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187cm 94kg의 건장한 체구와 달리 채태인은 거포라기 보다는 중장거리 유형에 가깝다.

문제는 넥센 내에서도 채태인의 입지가 그리 확고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넥센은 올 시즌 잠재력이 폭발하며 3할20홈런100타점 시즌을 보낸 윤석민(kt)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만큼 트레이드에 적극적인 팀이다. 그런 넥센에서 30대 중반의 채태인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잔류시키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넥센은 이미 올 시즌을 통해 장영석이나 김웅빈 같은 채태인의 대안을 준비해 둔 상황이다.

아직 FA시장은 자격 선수를 공시하면서 본격적인 첫 발을 땠을 뿐이다. 지난 2013 시즌이 끝나고 뜬금없이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두산 베어스의 이종욱과 손시헌을 싹쓸이한 것처럼 채태인도 의외의 팀이 등장해 덜컥 계약을 이끌어 낼지도 모른다. 만약 FA 시장에서 1루수 요원을 찾는 팀이 있다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홈런과 장타에 대한 지나친 기대만 접는다면 채태인은 공수를 겸비한 KBO리그의 정상급 1루수 요원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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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넥센 히어로즈 채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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