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우'라 불리는 최민식도 영화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긴장한다. 영화를 상영하는 도중 객석에서 핸드폰 불빛이 몇 번이나 보이나 영화관의 '공기(분위기)'는 어떤지, 관객들이 놓치고 가는 부분은 없는지 긴장했다는 그. 다행스럽게도 이번 영화 <침묵>에 대해 안도한 듯 보였다.

"한 번은 박수도 나오더라. '곳곳에 사람들을 심어놨나?' 생각도 해봤는데 (웃음) 그럴 리는 만무한 것 같고. 다행히 잘 따라오시는 것 같지만 '경계의 고삐'를 (웃음) 늦춰선 안 된다."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

"내 것은 분명히 있다. 인물을 이렇게 해석했고 저렇게 표현했고. 하지만 내 손을 떠난 '흥행'에 대해서는 집착하고 싶지 않다. 집착한다 한들 뜬구름 잡는 것이지. 나도 인간인지라 흥행이 잘 안 되면 속상하다. 속상한데 어떻게 하겠나. '다음에는 관객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밥상을 차리자'는 것도 무리다. 그것 또한 모르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을 하는데 충실하자! 외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처연하게 받아들이자. 그게 다다." ⓒ CJ엔터테인먼트


'돈이 곧 진심입니다'

2일 개봉한 영화 <침묵>에서 최민식은 '돈이 곧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재벌 총수 임태산 역을 맡았다.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는 임태산이지만 사랑하던 약혼자 유나(이하늬 역)가 의문의 피살을 당하고 자신의 딸(이수경)이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인물. 습관처럼 '돈이 진심'이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어느 순간에 봉착하자 돈이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만다.

"임태산은 '돈이 곧 진리이자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푹 썩은 사람이다. 푹. 그런 사람이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주 다른 종류의 고통에 부딪힌다. 살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적 고통을 한 번도 느낀 적 없던. 이후 전개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정지우가 어떻게 풀어낼까? 어디에 중심을 둘까? 대중들에게 다가갈 때 이런 점에서 설득력을 가져야겠다 싶었는데 내 생각과 정지우 감독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건 한 인간의 참회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을 다 버리면서 그 인간성을 회복하는."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

ⓒ CJ엔터테인먼트


<침묵>은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를 리메이크해 만든 작품으로 각색 과정에서 <침묵>으로 제목도 줄었다. 최민식은 "'침묵'이라니 약간 상투적이고 촌스러운 느낌의 조그만 '단편 소설' 같은 제목"이라며 "'침묵'이라는 단어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고요나 심연 같은 뜻이지 않나.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임태산의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최민식은 18년 전 함께 <해피엔드>에서 작업했던 정지우 감독을 비롯해 "옛날 전우들을 다시 만나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다"면서 시나리오도 읽기 전에 덥석 출연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후 진행된 시나리오 작업에도 함께 일부 토론하고 참여했다. 그는 정지우 감독이 <해피엔드> 때와 비교해서 "참 여전했다"고 했다.

"그 시절 그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더 업그레이드됐다. 여전하고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배우들이 편안함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배우들에게 배려를 많이 해준다는 이야기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편집본도 같이 상의했고 그래서 참 감사했다."

'이 세상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침묵>에서 최민식은 박신혜, 이하늬, 류준열, 이수경 등 상대적으로 어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이들에게 '대선배' 격인 최민식은 존경의 대상이다. 지난달 24일 <침묵> 시사회에서 류준열은 배우 최민식과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단순히 연기를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연기의 재미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했고 박신혜는 "(최민식과 함께 한 현장이) 꿈에서만 그리던 상황이 펼쳐지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라고 하기도 했다. 최민식은 민망해하면서 마이크를 들더니 "낯간지러워서 도저히 못 듣고 있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오히려 나는 이번에 아우님들 덕을 많이 봤다.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으면 작품 안에서 어우러질 수 없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최민식은 "겸손을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극을 받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어느덧 연장자가 되었다. 현장에서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어색해지고 그런다. 그런데 나이가 뭐가 중요한가.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다. 계급장 떼고 후배들에게 '딸랑딸랑' 아양도 떨고 그래야지. 같이 놀아달라고. (웃음) 일단 나이를 다 떠나서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해내는 후배들을 봤을 때 자극을 받고 '정신 차리자'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나이 때 하지 못한 걸 할 때 되게 자극받는다. 이 친구들이 파장을 만들어내면 나는 그 위에 올라타 앉아만 가면 됐다.

<침묵> 속 대사도 있듯 '이 세상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방구석에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난 이렇게 저렇게 할 거야' 해봤자 늘어나는 건 소주병밖에 없고 다음날 일어나면 속만 시끄럽고! 동료들과 현실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작업을 하는 게 오래 남는 거다. 나이와 경력에 관계없이 그런 면에서 좋은 자극을 받았으니 내가 배운 건 배웠다고 해야지. 나 역시 그런 동료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할 거고. 술자리에서 '개똥철학' 늘어놓는 것보다 내가 직접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내가 나를 위해서 처절하게 움직이면 그것에서 오는 기운이 긍정적인 효과를 끼칠 수도 있고 뭐 아니면 마는 거고. (웃음)"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

ⓒ CJ엔터테인먼트


그에게 있어 '좋은 작업'이란 곧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이었다.

"(작품에 대한) 욕심은 점점 더 많아진다. 그 욕심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아야 한다. 사실 소재라는 게 천편일률적이다. 영화나 연극이나 인간사에서 나오는 오욕칠정을 다루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가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니까. 그걸 다시 조각해서 거기에 새로운 자신의 주관을 담아서 던지는 그런 친구들과 계속 작업을 하고 싶다. 사실 혼자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여러 사람이 돈을 투자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작업이기 때문에 동지들이 있어야 한다. 뭐가 됐든지 그런 동지들을 만나야 한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극을 받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작품의 성패를 떠나 이번 작업(<침묵>)이 앞으로도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

"(연기관이) 때로는 많이 흔들린다. 속물근성도 있고 사람이 살다 보면 변할 수 있고 자기가 변하는지도 모르게 변한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내 기준이나 주관을 다시 환기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좋은 자극을 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삼천포로 빠지던 걸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또 삼천포로 빠지고. 결국, 이것의 연속인 것 같다.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

ⓒ CJ엔터테인먼트



최민식 침묵 정지우 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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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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