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공익근무 16년'. 배우 문성근은 지난 16년간의 활동을 두고 스스로 그렇게 표현했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정치인의 삶을 살았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그것에 대해 '전역신고'를 한 건 아닐지. 지난 200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부산을 향했던 그가 연기보다 목숨 걸고 집중했던 가치는 곧 시민의 정치였고, 참여 민주주의였다.

그의 공적인 활동 전반부가 희망이었다면 후반부는 암흑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그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작동했고, 정권이 바뀌며 그 꼬리와 몸통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 입고 다쳤을 지난 9년이었지만 문성근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블랙리스트 작동의 엔진과도 같았던 국정원 조사에 협조하기 위해 검찰에 출석했다. 이후 일련의 성과들이 나오던 지난 10월 말, 경기도 일산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그간 몇 매체에서 그의 인터뷰를 실었고, 최대한 중복되는 질문은 피했다.

치졸한 공작들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정권도 바뀌었고, 마침 드라마 <조작>으로 친정과도 같은 SBS에 다시 출연하게 됐다. 7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었다. 대중의 반응도 좋았다.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아니, 성공적으로 복귀하셨는데 또 검찰에 나가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더라(웃음). 후배가 지인을 통해 (블랙리스트 관련) 내게 의논을 해왔다. 안 할 수 없잖아. 그 사진(국정원이 주도한 배우 김여진과의 악의적 합성사진)이 워낙 충격적이라 검찰도 내게 가장 처음 출두 요청을 한 것 같더라. 사진까지 나온 판에 나 역시 이명박을 소환하는 데 일조해야 하니까 나간 거지"

- 합성사진을 유포한 국정원의 팀장이 구속됐는데 억울하다더라. 윗선이 있는데 자기만 잡는다고. 이렇게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원세훈(전 국정원장)도 같은 입장이다. MB에게 보고하고 결재 받았다고 얘기하면 형량이 5년으로 떨어지는 거고 아니면 국고 손실 등으로 15년에서 무기징역까지 나올 텐데 얼마나 버틸지.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 KBS, MBC 노조에다 블랙리스트가 어떻게 실행됐는지 자체 조사해 달라고 한 것도 그런 뜻이다. 국정원이 공영방송, 민영방송사를 비롯해 심지어 한국문학번역원 등까지 리스트를 내려 보냈다. 황석영 선생 작품 번역 지원이 다 안 됐으니. 아주 세밀하게 막은 거지.

국정원 문건도 지금 일부만 나온 거잖나. 처음 문건화를 결정한 거부터 어떻게 실행했고, 보고했는지 다 나와야 전모가 밝혀지겠지. 문건이 지금 2011년 상반기 것 3개만 나왔는데 2012년 하반기 때 어마어마했을 거다. 총선이 있었잖나. 지금 대선 댓글 공작만 나왔지 2012년 상반기 문건만 나와도 아수라장일 거다. 하여튼 2011년 문건을 보면 '종북 DNA를 가진 자'로 날 공격하라고 돼 있는데 아마 늦봄문익환학교에 대한 공격도 그 일환이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블랙리스트로 나 하나 죽이는 건 상관없는데 학교를 건드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은 문성근의 부친 문익환 목사의 정신을 잇고자 세워진 대안학교에 대한 공작까지 서슴지 않았다. <동아일보> 등 일간지가 '빨치산 양성소'라는 프레임을 씌웠고, 이를 일부 인터넷 신문이 받아쓰며 해당 학교 학생들과 교사가 큰 피해를 본 것. 2012년 5월,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때였다.

"(재판에서 이겨서) 일간지 기사는 내렸다지만 인터넷 신문에선 여전히 그 기사가 돌아다닌다. 얼마 전 부산의 한 팬 분이 아이를 데리고 늦봄 예비학교를 다녀갔다. 아이 친구들이 '빨갱이 학교 가냐'고 했다더라. 애들도 인터넷 검색으로 그걸 본 거지. 자다가도 화가 난다. 천박함도 정도가 있지. 그곳 선생님들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선생님들도 그 일만 생각하면 속에서 확 솟는다더라. 10년 넘게 헌신하신 분들인데….

옛날 문 목 생각이 나더라(문성근은 부친 문익환 목사를 '문 목'이라 부르곤 한다. 일종의 존경의 표현이다 -기자 주). 여섯 번 감방에 갔는데 5번째에 앓아 누우셨다. 물론 나이도 있었겠지만 그때 냉전시대의 끝이라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엄청 설득했거든. 남쪽이 준비하던 통일방안에 북쪽을 끌어들였다. 노태우 대통령이 회담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오히려 당신을 감방에 넣으니 화병이 난 거지. 심장 이상이 오고 그랬다." 

영구집권의 꿈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 전모를 밝히기 위한 첫 단계로 이명박 구속을 촉구하며 형사 고발 후 민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어디까지 진행 됐는지.
"형사 고발은 5명(문성근, 김미화, 김규리 등)이 했고, 민사 소송은 스물 둘 혹은 스물 세 명 정도가 참여할 예정이다. 변호사들 얘기는 블랙리스트로 어떤 구체적 피해를 받았는지 입증해야 한다고 하는데 감독들은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투자 쪽에선 '시나리오가 좀 이상하다'는 등 여러 이유를 대고 자를 수 있으니까. KBS, MBC, 문체부 등에선 블랙리스트가 잘 작동했는데 민간에선 좀 거부된 면이 있다. SBS는 간부 성향에 따라 거부된 것도 있다. SBS가 날 방송에서 자르면서도, 권해효는 자르지 않았다. <제중원> 연출자가 (상부의) 지시를 거부해서지. 김구라나 김제동은 공영방송을 못하면서 CJ나 SBS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다. 자본논리라 민영방송사 입장에선 이들을 안 쓸 이유가 없지. 광고가 들어오는데."

- 그래도 9년 전 드라마 <신의 저울> 하차 압력이나 < SBS 스페셜> 하차 건은 충격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 친정 같은 곳에서 그 압박이 통한 거잖나. (문성근은 지난 10월 23일 자신의 SNS 계정에 <미디어오늘> 기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방송 하차에 진성호 전 의원과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등이 관련돼 있음을 알렸다. - 기자 주)
"그 때 진성호 전 의원이랑 신혜식 대표가 SBS에 가서 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거지. 근데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간부를 만난 적이 없다고 진성호가 얘기했잖아. 자긴 초선의원이라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다면서. 그건 이중으로 SBS를 욕 먹이는 일이다. 이들을 만난 SBS 간부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거잖나. 자기들과 같이 거짓말 해달라고. 

< SBS스페셜>에서 잘릴 때 내게 정식으로 얘기한 사람이 없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이지. 출연계약서 자체가 없었기에 그리 하려면 할 수는 있다. 거기 시사교양 피디들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고 가까웠으니 차마 직접 말할 수 없었을 거다. 만약 SBS가 압박을 받은 게 아닌 알아서 날 자른 거라면 정권 눈치를 알아서 봤다는 얘기잖나. SBS가 바보라는 소리지. 진성호는 SBS 간부진을 시험에 들게 한 거고 능욕한 거다. 간부를 안 만났기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논리인데 자신 있으면 날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 된다. 그러면? 그 간부들이 법정에서 위증해야 한다.

사실 진성호씨가 별 거인가. 김기춘 만큼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잊어도 되는 사람인데 왜 이 얘길 하냐면 전모를 밝히자는 것이다. 민주정부 10년 간 없었던 일이 마치 유신 때처럼 이명박, 박근혜 때 복원된 건데 다신 그러지 말자는 얘기다. 의견이 다르고 접점이 다르다면 토론하든가, 그렇게 해결 안 되면 투표해서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이런 반 헌법적인 폭력이 어디 있나."

- 이유야 어쨌든 정권 차원의 압력에 지상파가 따른 건 언론의 본분을 저버린 거 아닌가.
"얼마 전 MBC의 한 피디가 글을 썼더라. 왜 방송가 사람들이 변절하고 어떻게 호가호의 했나에 대한 건데 간부들 스스로 자기들 월급과 업무추진비를 올리고, 때론 명품도 돌리고 했다더라. 그곳의 자회사가 많잖아. 9년 간 자회사 사장 2년, 3년씩만 해도 퇴직금이 1년에 억 단위다. 그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흥미로운 건 젊은 간부들이 확 넘어간 시점이 있어. 그게 바로 민주당이 깨진 직후다.  김무성이 자기네가 180석을 차지한다고 했잖나. 영구집권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이때 젊은 간부들이 대거 넘어갔다.

일제가 만주국 세웠을 때도 비슷했다. 중국과 전쟁해서 땅을 뺏고 나라를 만들었다. 일본이 오래 간다고 생각하고 지식인들이 많이 혹했지. 문 목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는 생전에 그 말씀을 했다. 중국에 일본이 쳐들어가는 걸 보며 이제 망하겠구나 생각했다고.  중국은 점령이 불가한 나라다. 1억 일본 인구로 10억의 중국을 어떻게 하겠나. 누르하치(청나라 창건자)도 결국 중국화 되지 않았나."

블랙리스트의 산 증인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태생적으로 블랙리스트는 그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부친의 특별한 생애 때문일 수도 있지만 1985년 연기를 시작하면서 그는 줄곧 사회와 체제에 불화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꽃잎>(1996) 등. 오히려 이명박 정권 초기 2008년 무렵이 영화 <실종>에서 악역을 맡으며 연기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꾀하던 때였다. 스스로도 "연기의 재미를 한창 느끼기 시작했다"고 몇몇 인터뷰에 말할 정도로 중요했을 시기,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발동한 셈.

- MB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심이 확신이 된 시점이 있었는가.

"MB 정부가 시작되자마자 벌어진 일들을 보며 처음엔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압박인 줄 알았다.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사람이라면 장관의 형제까지 털었으니까. 이창동 감독의 <시>가 영진위 지원에서 탈락한 일도 나중에야 알았다. 칸에서 각본상 받은 영화를 영진위가 0점을 준 건데, 이창동 감독이 한참 뒤에 얘길 해서 그때 알았지. 참여정부 때 장관을 해서 그런 줄 알았다. 배우 안석환은 노무현 대통령 문상 갔다 온 이후 (마약 혐의로) 머리카락 뽑히고 그랬으니. 이게 다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이 있구나 생각했었다.

지금 그 리스트에 들었던 사람이 83명인가? 이게 1차 명단이거든 나중에 이게 (박근혜 정부 들어서) 8000명까지 늘어난 거다. 영구집권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런 무식한 짓을 한 거지. 물론 다 넘어가고 지시에 따른 건 아니다. (블랙리스트 관련) 자료를 파기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직원들이 있다. 그리고 유진룡 장관 사건은 반년마다 SNS에 리마인드 시키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이 사람이 청와대의 압박 사실을 증언했다. 또 (권해효 하차 지시를 거부한) 홍창욱 피디 같은 사람도 있었고."

- 최근엔 '블랙리스트 때문에 밥을 굶은 적 있냐'고 한 정진석 의원에게 시원하게 한방 날리기도 했다.

"작년에 외국과 국내에서 뇌 연구에 대한 논문이 하나씩 나온 걸 봤다. 진보당을 찍는 사람과 보수당을 찍는 사람의 뇌 반응을 조사한 것인데 보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부위가 발달했고,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내연구에선 공감력, 해외연구에선 혐오를 느끼는 부위가 강하단다. 지나친 이기주의를 혐오한다는 뜻이었다. 보수당은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해 결집시키고 표를 모은다. 거기에 오래 있다 보면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거다. 공포와 불안을 벗어나면 행복을 찾게 되고 뭔가 자아를 실현하려 하는데 (정진석 의원은) 늘 그렇게 살다 보니 그런 말을 한 거라고 본다.

내가 빼먹은 게 있는데 국회의원 제명, 재취업 절대 금지, 어버이연합을 동원한 집 앞 시위, 자유한국당 여성의원과 합성사진 만들어 살포, 직계 존비속 관련 회사 모두 세무조사 등 여기에 동의하면 죽을 때까지 최저생계비를 대주겠다고 했었다. (평생이 아닌) 9년 동안이라는 단서를 달고 싶다. 9년 동안 해먹었으니(웃음)."

- 과거 5공 때도 그랬고, 문성근이라는 이름은 블랙리스트의 오랜 표본과도 같다. 그만큼 오래 정부가 감시했을 거라는 뜻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검열과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의 차이는 뭐라고 보시는지.
"그땐 잡아가서 때렸는데 그걸 지금은 못한다는 차이지. 유신 때도 생계를 방해하긴 했다. 블랙리스트는 유신 때의 그걸 그대로 복원한 셈이다. MB가 촛불 트라우마로 그걸 만들었다면, 박근혜는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이겠지. 근데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가장 나쁜 사람은 김기춘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가 문제 있다는 건 다 알고 있었잖나. 심지어 2007년에 <조선일보>는 박이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분석해 놨다. 김기춘은 이 모든 걸 알면서 '반통령' 한 거잖나. 권력 공백을 누린 진짜 나쁜 사람이다."

다시, 배우 문성근으로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본업을 얘기할 때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리고 후배들에 비하면 받은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도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연기를 택한 사람이다. 잘나가던 대기업 직원이 연극을 택했다. 각종 압력을 느끼면서도 시민에 의한 참여 정치를 외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게 바로 연기다. 

- 영화 <실종> 때 악역으로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가 남았고, 이후 변화 지점을 찾을 때였는데 블랙리스트가 작동했다. 배우 입장에선 일종의 소중한 기회를 뺏긴 셈인데.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기회가 줄어든 건 맞지만 개인적으론 1999년에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았을 때가 기점이라고 본다. 들어가지 않았어야 했고, 정말 안 하려고 했다. 그때 한창 영화인들이 정치활동을 많이 했거든. 정지영 감독이 그 운동의 리더였다. (전두환의) 4.13호헌조치 반대 성명도 정 감독님이 냈었지. 정 감독님이 해야 한다고 다들 그랬는데 결단코 안 하신다네? 그러면 내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흘렀다.

그 직을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배우의 정서 구조와 행정가는 완전 다르거든. 행정은 고도의 이성적 판단이 주라 정서적인 면에서 멀어질 때가 많다. 그리고 2001년부터 노사모도 했고, 그러면서 나 자신이 정치적 느낌이 많이 드는 사람이 됐다. 여기에 시장 개념에서 가치가 스스로 떨어진 측면이 있고 거기에 블랙리스트가 더해지면서 더 이미지가 무거워진 거지 딱 블랙리스트 때문 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스스로에게 굉장히 냉정한 분석이다.
"이를 테면 1985년에 연극을 시작하고, 6공 시절 상도 많이 받았다. 그때 <칠수와 만수>(1986) 이게 내겐 굉장히 중요했다. 연극계 신화적 작품이거든. 그걸로 방송사와 영화 쪽에서 부름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KBS 건 못했지만 MBC 드라마는 했다. 상대적으로 MBC는 검열 측면에선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시대마다 리스트 작동이 달랐던 거지."

- 2008년 당시 인터뷰 보면 악역을 택한 것에 후회가 없다고 하셨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그치.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왜 이렇게 악역을 하냐는 것이었다. 시작은 <경마장 가는 길>이었다. 그건 정서적으로 참을 수 있었어. 근데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약간 선을 넘어갔다. 대중적이지 않았던 건데 시장 면에서 거부감이 느껴지는 영화랄까. 장선우 감독의 특징이다. 늘 시대의 흐름을 반 보씩, 나중엔 두세 걸음씩 더 나아갔지. 나도 그 도전에 동의해서 함께 한 거고. 하일재 작가의 <경마장 가는 길>을 영화화 한 건데 그 소설이 그때 한창 <자유종>과 함께 포스트모던 소설이라고 찬사를 받았거든.

마침 서점에서 그 책을 사서 읽고 있는데 장선우 감독이 전화해서 책 하나 읽어볼래? 하는 거다. 경마장이었다. 근데 그때 왜 난 <자유종>은 안 샀나 몰라(웃음). 하여튼 그땐 정부의 검열도 자본의 검열도 없던 때였다. 영화의 존재 이유가 뭘까? 도덕, 윤리, 법 이런 걸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 있거든. 이게 예술의 목적이자 기능 중 하나다. 그걸 하면 내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도하니까 시장에선 '문성근은 상업 배우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역할도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거지. 그러다 보니 악역 제안들이 오기 시작한 거고.

예전에 <비상구가 없다> 이 영화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범을 연기했다. 서점에 가서 범죄 서적을 엄청 읽었는데 한계가 있더라. 근데 참여정부 2년 차에 <조선일보>를 보면서 악을 알았다. '아, 이게 악이구나!' 정연주 선생이 왜 <조선일보>를 조폭신문이라 했는지 알겠더라. 내 이익, 내 가족, 조직의 이익을 위해 국가나 공동체의 이익을 무시해도 된다는 주의였다. 자기 이익에 방해가 되는 건 다 죽이는 거지. 그 신문의 논조가 바로 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게 자기 자신으로 더 좁혀지는 게 사이코패스더라. 유사가족까지 유지하는 게 조폭이라면 가족도 없이 나의 쾌락과 욕망에 방해되는 걸 죽이는 게 사이코 패스다.

최양일 감독의 영화 <수>에서 내가 조폭을 연기했거든. 그때 <조선일보>를 참고한 거지. 연기 감이 떨어진다? 그럼 <조선일보> 이틀 치만 보면 된다. 악이 확 살아난다. 그 신문에 고마워하는 유일한 지점이다(웃음). 근데 그렇게 <조선일보>를 악이라 얘기하기 시작하면 살기 참 힘들다. 뭐 흠 잡힐 일 하지 말아야 하고…."

출발선에 서며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등으로 겪은 수난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물론 절반은 농담인 얘기였다. 문성근은 참여정부 때 스스로 역차별 한 사례 하나를 털어놨다. 2002년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자진하차다. "사실 그땐 팔순까지 하고 싶었다"고 그가 고백했다. 1991년 진행 마이크를 잡은 이후 1995년 이미 한 차례 방송이 1년 간 끊겼다가 다시 맡아 꾸준히 진행했기에 그만큼 애정이 컸을 터. 뭔가 혜택을 받는다는 눈초리와 당시 노무현 정부에 부담을 주기 싫었던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꾸준했고 동시에 열정적이었다. 정당 개혁과 정치 참여 독려인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운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그는 인터뷰의 상당 시간을 해외 사례와 비교해 가며 한국 정당 정치의 맹점을 짚었다. 이 운동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전과 배우와 정치인 사이에서 숙고했던 그의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자명고> 마지막 회를 찍고 있을 때였다. 대사 두 줄이 안 외워지더라. 이미 난 그 이후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을 거란 걸 예상했다. 문 목의 삶에 시빗거리가 거의 없지만 딱 하나 있는 게 87년 동서 분열이거든. 노무현 후보가 동서통합을 하겠다는 분이었으니 지원했던 거다. 그리고 그가 된 이후 참여정부 5년 간 스스로 시빗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방송도 안 하고 등산만 하고 다녔지. 그래서 참여정부를 잘 몰랐다. 국정 목표조차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러셨는데 어떻게 원망을 안 해? 그 뒤로 참여정부를 엄청 공부했다. 그 운명이란 말을 이해하려고. 근데 어느 순간 알겠더라. 'MB나 조중동을 원망하고 싶을 텐데 원망 마라, 개인 생명과 법인체를 원망해서 될 게 아니다. 역사의 질곡을 극복해야 한다.' 아, 그 뜻이었구나!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란 말을 하셨는데 결론은 그거였다. 그 말이 SNS 시대에 접목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성근은 현 정부 이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 홀가분하다"며 그는 자신의 현재 상태와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내가 운동가 DNA만 갖고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연기자 DNA가 절반이 섞여 있다. 반반이지. 연기 안 하고 정치활동만 하니 사람이 지친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씨는 다시 정치를 했으면 하지만 그도 작심하고 <썰전>을 한 거다. 국회의원 1명 보다 <썰전>의 발언자로서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잖나.

난 그냥…. 연기자를 하면서 간혹 응원해야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때 정당 혁신을 약속했다. 민주당 당원도 100만을 넘었다. 내가 내밀었던 의제를 정치권에서 받아 실천하고 계신다. (정치인으로서) 내 역할은 끝났구나 그런 생각도 든다. 이제 늦봄학교만 정상화 되면 참 좋겠다." 

다시 그에게 전환점이 왔다.
아직 갈 길이 먼 한국 정치 현실이지만, 배우로서 자신의 감성을 마음껏 뿜어낼 시기가 온 것. 영화 <기억의 밤> 등이 출격 대기 중이다. 정치인 이상으로 배우 문성근의 모습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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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김미화 블랙리스트 국정원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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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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