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를 다룬 콘텐츠는 많다. 관련 공모전이 있는가 하면 소녀상 뱃지와 폰케이스가 있다. 올해 광복절에는 버스가 소녀상을 태운 채 운행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래서 문제의 엄중함과 별개로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서 담론 자체는 익숙해진 듯 하다.

주체적인 개인으로서의 피해자를 그리다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사진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사진 ⓒ 리틀빅픽처스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다루는 소재 자체는 그리 낯설지 않다.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화가 그 소재를 '어떻게' 다뤘느냐 일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영화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할머니와 구청 공무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이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이 하는 일련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해석하는데에 있어서는 그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앞에 다가온  옥분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옥분은 항상 까칠한 상태다. 툭하면 사진을 찍어서 민원을 넣기에 바쁘고, 소위 말하는 '오지랖'을 부려 시장 사람들과 갈등을 빛기도 한다. 그런데 또 재개발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이런 그의 모습이 성폭력 피해자란 말인가? 우리가 영화에서 접한 '피해자로서의 옥분'의 이미지는 결코 통념 속에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다는 느낌에 좌절하는 그런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없다.

오히려 자기가 몸담은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연대하려는 건강한 의지로 가득 차 있어 보인다. 그중에서 명진구청이 직접적으로 연루된 재개발 사업 문제는 옥분이 공존의 가치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피해자를 이렇게 그려낸 영화가 여태 있었는가.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사진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사진 ⓒ 리틀빅픽처스


통념적인 피해자 서사에 갇히지 않는 이 영화의 미덕은 옥분이 영어를 배우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옥분에게 영어란 단순히 학구열의 상징이 아니다. 그녀는 미국 의회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민재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이른바 '성적 피해에 대한 언어화'인 것인데, 사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리고 언어화는 주체적 개인의 각기 다른 피해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위안부'로 끌려가서 성폭력을 당했지만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의회 증언 장면에서도 옥분 전 차례의 여성도 옥분처럼 끌려간 전력이 있다.

서로 다른 피해 서사를 언어화 해서 모으는 작업은,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된 이후부터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던 것이기도 하다. 증언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려는 영화 속 일본인의 분노처럼, 피해사실을 지우려는 이들 앞에 '내 몸이 진실 그 자체다'라고 외칠 수 있도록.

감독이 옥분을 중요한 주체로 다루고자 했던 의지가 또 엿보이는 부분은 민재의 존재감이다. 영화에서 옥분과 민재가 주인공이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정작 옥분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직면하고 영어를 배우며 미국 의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민재의 개입은 의외로 최소화 돼있다. 그는 조력자로서만 존재하고 있다. 자칫하면 피해자가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남성 등장인물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면서 조력자를 넘어서 '없으면 안되는 사람'의 위치까지 넘보는 실수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민재의 역할비중을 잘 조절한 듯 싶다.

의미있는 변화를 향하여

귀향 2월 24일 개봉한 <귀향>은 전국 358만 관객이 들었다. 3월 박스오피스 1위.

<귀향>은 전국 358만 관객이 들었다. ⓒ (주)와우픽쳐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 것이 작년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귀향>이다. 단순히 소재 자체가 비슷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를 그려내는 방식에 있어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귀향>은 '위안부'의 상징물인 소녀상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전략을 택한다. 순백색의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납치된다. 악마와 같은 일본놈들에 의해 짓밟혀서 순결을 빼앗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아이 캔 스피크>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개인의 주체성은 <귀향>이 관심가지는 부분이 아니다. 피해자는 무기력하고, 가해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괴물화된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굿이라는 형태로만 구제 아닌 위로를 해줄 수 있을 뿐이다.  현실도피라고 해야 할까?

<귀향>은 그러한 전형적인 피해자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위안부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자행한 젠더적인 폭력이 아니라 '한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소녀들의 순결을 더럽히는 일본의 나쁜 짓'으로 이해한 탓이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위에서 말했듯 통념에 갇힌 피해자 서사를 탈피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귀향>과 대비된다.

소녀상의 이미지가 있어야 '위안부'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귀향>은 그저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어떤 경향성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 캔 스피크>는 의미있는 변화의 물꼬를 틔웠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사실 이 영화가 완벽하냐 하면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재개발 문제에 대해서도 옥분의 성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소재로 비추는데 사용되었지만 제대로 마무리를 짓기 보다는 급하게 끝낸 모양새인가 하면, 민재가 명진구청 동료들에게 옥분 할머니를 돕자고 2층에서 소리치는 부분은 굳이 넣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어색하다. 이처럼 영화의 구체적인 만듦새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논쟁해볼 거리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마저도 <아이 캔 스피크>가 피해서사를 다루고자 했던 그 섬세한 노력을 조금 더 인정해주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 걸렸다. 이제야 나타났으니, 변화를 기대해 볼 만 하다.

아이캔스피크 귀향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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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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