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2017년 정규 시즌 대장정이 끝나고 월드 챔피언을 가리는 포스트 시즌이 시작됐다. 리그 별 와일드 카드 1, 2위 팀들의 단판 승부인 와일드 카드 결정전을 거쳐 이들과 6개 지구 챔피언들이 토너먼트로 격돌하는 디비전 시리즈가 시작됐다. 각 리그 1위 팀들이 와일드 카드 결정전 승리 팀과 대결하며, 나머지 디비전 챔피언들이 각자 경기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팀들은 기선 제압을 위해 단판 승부 또는 1차전 선발투수로 자신들이 자랑하는 에이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일부 팀들은 특정 팀의 상대 성적이 좋거나, 후반기에 페이스가 좋았던 투수들을 1차전 선발로 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후반기 페이스가 좋은 트레버 바우어를 냈고, 2차전에 에이스 코리 클루버를 출격시켰다.

포스트 시즌에서 중요한 출발선을 끊는 데에 있어 팀의 기대에 부응한 선수들도 있었고, 예상 외의 충격을 안겨 준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 포스트 시즌에서는 유독 사이 영 상 수상이 유력한 후보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단순한 수난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어서 임팩트가 너무 컸다.

AL 사이 영 상 후보 세일과 클루버, 동반 부진

올 시즌을 앞두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된 왼손 선발투수 크리스 세일은 정규 시즌에서 32경기 선발 등판에 17승 8패 평균 자책점 2.90을 기록했다. 특히 214.1이닝 동안 무려 308탈삼진을 기록, 2015년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이어 2년 만에 300K 투수가 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05년 월드 챔피언이었던 화이트삭스는 세일이 활약하는 동안 만년 하위권에 그쳤고, 고독했던 에이스 세일은 2017년 트레이드 이후에야 생애 첫 포스트 시즌 등판이 이뤄졌다. 그러나 10월 6일(이하 한국 시각)에 이뤄진 생애 첫 포스트 시즌 등판에서 세일은 정규 시즌에 걸맞는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한 세일은 선발투수의 최소 덕목인 5이닝을 어떻게 버티기는 했다. 탈삼진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탈삼진도 이닝보다 많은 6개를 잡을 정도로 구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세일은 무려 3개의 홈런을 허용하는 등 9피안타 7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지며 패전투수가 됐다.

반면 맞상대 저스틴 벌랜더(2011 AL 사이 영 상 + MVP 동시 수상)는 탈삼진 3개에 그쳤지만, 6이닝 2실점의 승리투수가 되면서 포스트 시즌 통산 8승(5패 ERA 3.36)을 기록했다. 애스트로스는 벌랜더에 이어 2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던 댈러스 카이클(2015 AL 사이 영 상 수상)도 5.2이닝 1실점의 호투로 포스트 시즌 통산 3승(무패 ERA 2.29)을 거뒀다.

7일에 등판했던 또 다른 사이 영 상 후보 코리 클루버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수상자였던 클루버는 2017년에도 29경기 선발로 등판하여 18승 4패 평균 자책점 2.25에 265탈삼진을 기록하며 생애 2번째 수상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클루버는 세일보다도 더 안 좋은 결과를 보이고 말았다. 2.2이닝 동안 피홈런 2개를 포함하여 6실점을 기록했다. 연장 14회까지 가서 팀이 이겼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팀을 위기에 빠뜨릴 X맨이 될 뻔 했다. 맞상대였던 CC 사바시아(2007 AL 사이 영 상 수상)도 5.1이닝 2자책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포스트 시즌 통산 10승 도전에는 실패했다(5패 ERA 4.47).

그나마 인디언스는 클루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연장전 대역전승을 일궈낸 덕분에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시리즈 스코어 2승 무패로 앞섰다. 1차전 선발투수는 취미 생활인 드론 때문에 손가락을 다쳐 작년 포스트 시즌을 망쳤던 트레버 바우어였다. 그런데 바우어는 올해 드론을 잃어버린 덕분에(?)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6.2이닝 무실점의 위력투로 포스트 시즌 생애 첫 승(2패 ERA 3.54)을 거뒀다.

7회의 악몽 + 4피홈런, 찝찝했던 커쇼의 PS 첫 홈 승리

현역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왼손 선발투수 클레이튼 커쇼는 정규 시즌에서는 통산 144승 64패 평균 자책점 2.36에 2120탈삼진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 만 29세(1988년생)의 나이로 사이 영 상을 무려 3번(2011, 2013, 2014)이나 수상하고 벌써 리그 MVP(2014)까지 수상하는 등 현 시대 최고의 투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커쇼는 포스트 시즌에서는 아직 자신의 이름값에 걸맞는 피칭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 정규 시즌에서 워낙 완벽하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에서 그가 부진하는 모습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설사 승리투수가 되더라도 상대방을 완벽하게 압도하는 피칭은 아니었다.

게다가 무너지는 과정에서의 각종 기록들이 너무 임팩트가 컸다. 2013년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에서는 4이닝 7실점으로 무너졌고, 2014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는 넉넉한 득점지원을 안고도 8실점 패전을 떠안기도 했다.

특히 경기 후반이 문제였다. 그가 잘 던지고 있는 경기에서도 후반에 집중타를 맞으며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다. 2014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만 해도 6점의 득점 지원을 받았던 커쇼는 6회까지 2실점으로 호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7회에만 6실점하며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커쇼가 4점 이상 지원 받은 경기에서 패한 경기는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을 통틀어 이 경기가 유일하다.

3일 휴식 후 등판했던 4차전에서도 커쇼는 또 역전패를 당했다. 이번에는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였지만, 7회에 또 역전패를 당하면서 커쇼에게는 "포스트 시즌 7회 악몽"이라는 징크스가 생겨났다. 2015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도 또 6.2이닝 패전을 당했으며, 2016년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도 6.2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런데도 커쇼는 포스트 시즌에서 7회에도 자신이 마운드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으며,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매번 3일 휴식 후 마운드에 오르는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커쇼가 7회에도 등판하는 경기나 3일 휴식 후 등판하는 경기에서 매번 지기만 하는 모습은 아니기 때문에(3승) 7회가 되었다고 해서 무작정 커쇼를 내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커쇼는 7일 경기에서 있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도 또 7회에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커쇼는 케텔 마르테와 제프 매티스에게 연속 홈런을 허용하며 또 체면을 구겼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바로 투수 교체를 지시했고, 커쇼는 에이스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어필도 못한 채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7점을 지원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승리투수가 되긴 했지만 커쇼는 포스트 시즌에서 "1경기 4피홈런을 허용한 최초의 승리투수"라는 굴욕 타이틀을 얻었다(1경기 4피홈런 도합 9명). 놀랍게도 7일 경기 승리는 커쇼의 포스트 시즌 생애 첫 홈 경기 승리였다. 그 동안 커쇼가 포스트 시즌에서 얼마나 승리와 인연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내셔널리그에서는 커쇼의 부진이 임팩트가 커서 다른 몇몇 선수들의 부진이 조금 묻히는 감이 없지 않다. 디백스의 에이스 잭 그레인키(2009 AL 사이 영 상 수상)는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 선발로 등판했다가 3.2이닝 4실점으로 체면을 구겼다. 디백스는 그레인키의 부진으로 인하여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서 다른 선발투수 요원들까지 끌어다 썼고, 이번 디비전 시리즈 선발진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됐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베테랑 투수 맥스 슈어저(2013, 2016 사이 영 상 수상)는 시즌 막판 부상으로 포스트 시즌 1차전 등판이 불발됐다. 다만 의지는 강하여 3차전 선발 등판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PS 통산 4승 4패 ERA 3.74). 내셔널스는 1차전에 에이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7이닝 무자책(패전)의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통산 2패 ERA 0.75), 2차전에는 왼손 투수 지오 곤잘레스(4경기 3.93)가 등판한다.

사실 내로라 하는 에이스들이 포스트 시즌에서 유독 부진을 겪고 있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포스트 시즌은 정규 시즌보다 훨씬 큰 중압감이 밀려오며, 정규 시즌에 비하여 공 하나를 던질 때 더 많은 힘을 쏟아 붓는다. 이 때문에 한 번 무너지게 되먼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포스트 시즌에서 충격을 받은 뒤 어느 사이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선수들도 있었다. 정규 시즌만 162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포스트 시즌을 치르면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정신력이 경기를 좌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은 그 누구도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스포츠, 특히 포스트 시즌은 경기를 보는 매력 요소가 더 크다. 4개의 디비전 시리즈가 모두 시작된 상황에서 앞으로 또 어떠한 변수가 경기를 보는 흥미 요소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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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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