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의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서 선수들이 가볍게 몸을 풀며 달리고 있다.

이란과의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서 선수들이 가볍게 몸을 풀며 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월드컵 진출에 빨간불이 들어온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이 오늘 저녁 9시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9차전 경기를 갖는다. 상대는 숙명의 라이벌 이란이다.

한국은 현재 승점 13점(4승 1무 3패)로 A조 2위에 위치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행 티켓은 조 2위까지만 주어지는데, 3위 우즈베키스탄이 승점 12점(4승 4패)으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기에 신태용호에게 절대적으로 승리가 요구된다. 같은 시간 우즈베키스탄이 중국을 꺾으면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다. 승점 3점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다.

한편 상대인 이란은 여유롭다. 최종 예선 기간 내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이란은 승점 20점(6승 2무)으로 이미 본선행을 확정 지었다. 최종 예선 8경기에서 한 골도 실점하지 않은 '짠물 수비'가 이란의 최대 강점이다.

라이벌이자 A조의 최강자인 이란을 꺾어야 하는 어려움과 더불어 한국은 팀의 핵심인 기성용이 부상으로 경기에 출장할 수 없는 위기 속에 놓여 있다. 부상으로 빠지는 'KI'를 대신해 한국의 'Key' 역할을 할 선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 정우영 혹은 구자철

기성용은 대표팀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지닌 선수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기성용은 기본적으로 한국 대표팀의 패스의 젖줄이다. 모든 패스가 기성용을 거쳐간다고 생각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기성용은 대표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항상 수행했다.

현대 축구에서는 후방부터 얼마나 매끄러운 빌드업을 구사할 수 있는지가 좋은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을 가르는 중요한 척도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는 '딥 라인 플레이메이커'였던 기성용은 한국 대표팀에서도 그 역할을 어렵지 않게 소화했다.

그래서 어떤 감독이 오던 중용받던 팀의 중심 기성용이 부상으로 이번 이란전에 나설 수 없는 점은 한국에게는 악재다. 대체자가 절실한 순간이다. 일단은 기성용이 기본적으로 맡아왔던 '매끄러운 빌드업' 부분을 대체할 선수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체자는 역시 정우영이다. 중국의 충칭 당다이 리판에서 활약 중인 정우영은 기성용과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유사한 선수다. 기성용처럼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원 지역에서 공을 부드럽게 다룬다. 오른발잡이이지만 왼발 활용에도 문제가 없고 좌우로 벌려주는 패스에도 능하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도 기성용의 파트너 혹은 기성용의 대체자로서 활약한 경험도 있다. 몇 주 전부터 기성용이 부상으로 이란전에 출전할 수 없음을 인지한 신태용 감독이 정우영을 선발한 것은 기성용의 대체자로 그를 내세우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정우영의 부족한 수비력은 신태용 감독을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정우영은 과거 출전한 A매치 경기에서 '패스'라는 부분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많이 드러냈다. 선제 득점은 곧 패배인 이란전에서 그동안 수비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낸 정우영을 기용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기성용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대체할 또 한 명의 선수는 구자철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FC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활약 중인 구자철은 현 대표팀에서 소위 '공을 가장 잘 다루는 선수'다. K리그 시절부터 중원에서 공을 '아름답게' 다루는 구자철의 모습은 팬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마침 최근 소속팀에서도 그동안 활약했던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장했던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도 수비 지역까지 내려와 패스 흐름을 풀어주는 역할을 수행할 정도로 패스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구자철 기용에도 문제가 있다. 최근 소속팀에서 활약이 좋지 못했던 점이 걸림돌이다. 직선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아우크스부르크의 특성도 한 몫 했지만, 구자철 개인의 플레이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는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중압감이 큰 이란전에 비교적 근래의 포지션 변경 과정에 있는 선수를 과감하게 기용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또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중요한 순간 항상 득점을 올렸던 구자철의 능력을 포기하기도 어렵다. 승리를 위해서는 골이 필요하다. 구자철도 그 골을 넣어줘야 할 '믿을맨' 중 하나다. 득점이 절실한 경기에서 자주 한국을 구했던 구자철이 후방 지역에 배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 이재성 혹은 권창훈

기성용은 단순히 패스를 공급하는 선수로서 대표팀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선 선수가 아니다. 기성용은 유사시 적극적으로 전방 공격에 가담해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공격력도 갖춘 선수다. 빠르지는 않지만 정확하고 힘 있는 드리블로 후방 지역에서 전방으로 공을 스스로 운반해 공격의 활로를 풀기도 했다.

기성용의 이런 '전진성'을 대체할 선수도 대표팀에는 존재한다. 먼저 전북 현대에서 활약 중인 이재성이 눈에 띈다. 어린 나이부터 전북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한 이재성은 작은 체구에도 상대를 무너뜨릴 섬세한 드리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왼발 킥은 정확성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고, 피지컬적인 약점은 왕성한 활동량으로 메운다.

어느덧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성장한 이재성이지만 객관적으로 기성용이 가진 무게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형민이라는 단단한 수비형 미드필더 옆에서 마음껏 공격력을 분출 중인 이재성의 능력도 만만치 않다. 권경원 혹은 장현수라는 수비적인 미드필더가 선발로 나설 공산이 큰 상황에서 소속팀에서 이미 비슷한 역할로 경기장을 누볐던 이재성은 보다 편안하게 공격 작업에 가담할 수 있다.

물론 구자철의 경우처럼 이재성도 그동안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항상 공격 자원으로 경기에 나섰던 점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공격 작업에서 이재성은 특유의 정교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본인에게 몰아 놓고 공격수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제공해왔다. 신태용 감독이 이재성의 공격적인 재능을 포기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변수다.

프랑스 리그1의 디종 FCO에서 성공적으로 시즌을 시작한 권창훈도 후보군이다. 수원 삼성을 거쳐 프랑스 무대에 안착한 권창훈은 드리블로 공을 중원 지역에서 전방으로 가장 잘 운반할 수 있는 선수다. 힘과 스피드라는 강점을 모두 지닌 권창훈의 드리블은 상대 중원의 균열을 내기에 딱이다.

문제는 권창훈이 디종에서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그에서 오른쪽 날개로 출격 중인 권창훈은 그 자리에서 '군계일학'이란 평가를 들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다. 확실한 오른쪽 윙어가 없는 현 대표팀에서 권창훈은 비교적 대체자가 많은 중원보다는 오른쪽 측면 자원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신태용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에 권창훈을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기용했던 점도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슈틸리케호에서는 부진했던 가시와 레이솔의 김보경도 중요한 자원이다. 구자철만큼 중원에서 공을 기술적으로 다룰 수 있는 김보경이기에 선발 출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김보경은 일본에서 뛰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북 소속이었다. 포백 라인을 호흡이 좋은 전북의 수비수들로 구성한다면 전북 시절 '공의 운반자' 역할을 했던 김보경은 이재성처럼 어렵지 않게 대표팀 전술에 녹아들 수 있다.

여러 예측이 있지만 신태용 감독이 유례없이 포메이션을 숨겼기에 사실상 정확한 예상은 불가능하다. 무실점이 중요한 경기인만큼 수비적인 롤을 맡을 선수를 중원에 두 명 이상 배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다섯 명의 선수 중 어떤 선수도 기성용의 대체자로서 낙점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어차피 기성용의 완벽한 대체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신태용 감독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절실한 순간이다.

8년 전 박지성에게 동점골을 헌납하며 월드컵 진출의 꿈을 접었던 이란. 그 아픔을 잊지 않은 이란은 이번 경기를 통해 위기에 몰린 한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길 갈망하고 있다. 한국과 이란 축구 역사의 길이 남을 경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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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대체자 한국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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