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국내에서 개최된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은 뜨거웠다. 우리 U-20 대표팀은 2016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조별리그(태국·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탈락했고, 본선에서는 대회 최다 우승국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등과 한 조에 속해 우려의 시선이 많았지만, 이겨냈다.

16강전에서 만난 포르투갈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대회를 마쳤지만, 아시아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던 반년 전을 생각해보면, 훌륭한 성과였다. 첫 경기의 부담을 이겨내고 '복병' 기니를 3-0으로 완파했고, 대회 최다 우승국 아르헨티나까지 잡았다.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비판보다는 칭찬이 어울리는 대회였다.

그 중심에 이승우가 있었다. 그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은 스타다. "일본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다", "U-20 월드컵 16강 진출이 아닌 우승이 목표다",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와 호흡을 맞추고 싶다" 등 언변도 수준급이다.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실력도 뛰어나다.

이승우의 진가는 U-20 월드컵에서도 증명됐다. 개막전이었던 기니전, 이승우는 수비수 4~5명을 상대로 자신감 넘치는 드리블을 시도했고, 과감한 슈팅으로 선제 결승골을 뽑아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중앙선에서 드리블을 시작해 최종 수비를 무너뜨렸고, 선제골을 터뜨리며 승리에 앞장섰다. 

축구팬들은 이승우의 활약에 열광했다. FIFA 징계가 아니었다면 더 대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현재의 모습도 굉장했다. 자유자재로 드리블을 구사할 수 있고, 수비수 2~3명을 쉽게 제쳐낼 수 있는 선수. 이승우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유형의 선수임이 분명했다.

기대가 컸던 16강전에서 무기력하게 패했기 때문일까

이승우에게 '후전드'란 단어가 붙었다. 팬들의 입은 물론, 유명 언론사 기사에 '후전드'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후전드'는 이승우가 속했던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인 '후베닐 A 레전드'라는 표현이다. 유소년 시절에는 제2의 리오넬 메시가 될 것처럼 떠들었지만, 프로 무대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조롱이었다.

이승우가 SNS를 통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비판하고, 그의 친형이 이승우에게 고언을 전한 축구인을 비난하면서 논란은 가속화됐다. 소속팀 바르셀로나 B 데뷔는 물론 도르트문트와 샬케 04 등 이적이 예상됐던 팀들과 협상이 늦어지면서, 비판과 비난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올여름 이적 시장 마감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이승우와 함께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성장한 장결희, 백승호가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떠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이승우는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떠나기를 원했지만, 바르셀로나는 재계약 후 임대를 요구했다. 잘못하다간 프로 데뷔가 늦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30일 바르셀로나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 헬라스 베로나와 이승우의 이적 협상에 합의했다. 이탈리아 축구 전문 매체 '디 마르지오'에 따르면 베로나가 이승우의 몸값으로 150만 유로(한화 약 20억 원)를 제시해 승낙을 받아냈다"라고 전했다. 150만 유로는 114년 구단 역사에서 10위에 해당하는 액수다. 

지난 2001년, 18세 공격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이탈리아 국가대표)를 영입할 때 지불한 390만 유로에 이은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10대 이적료 지출이기도 하다. 몸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메디컬 테스트를 통해 확인하면, 이적은 확정된다. 지난 2000년 안정환에 이어 두 번째로 세리에 A를 누비는 한국 선수가 된다. 

한국 선수에게 이탈리아는 낯설지만, 프로 데뷔를 앞둔 이승우에게는 최적의 무대다. 안정환이 뛰던 15년 전과 비교해 위상은 낮아졌지만, 지금도 유럽에서는 최상위 리그로 손꼽힌다. 지난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유벤투스, AS 로마, 나폴리 SC 등 유럽을 주름잡는 팀들이 포진한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 라치오 등도 화려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승우의 베로나 이적이 반가운 것은 꾸준한 경기 출전 가능성이다. 베로나는 지난 시즌 세리에 B(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승격한 팀이다. 우승과는 거리가 먼, 세리에 A 잔류가 목표다. 선수층이 얇고, 공격력이 취약하다. 올 시즌 개막 후 2경기에서 1골밖에 넣지 못했고, 승리도 없다. 

알레시오 체르치, 지암파올로 파찌니 등 이탈리아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들이 속해있지만, 전성기가 지났다. '비운의 천재' 안토니오 카사노는 올여름 이적 직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AS 로마에서 임대 온 21세 다니엘레 베르데가 강력한 경쟁자로 손꼽히지만, 넘어서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베르데가 좌우 측면을 오갈 수 있는 만큼, 이승우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빌 가능성도 충분하다.

베로나의 파비오 페치아 감독이 전형적인 스페인 축구를 구사하는 라파엘 베니테스(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의 오른팔이었단 사실도 반갑다. 4-3-3을 중심으로 4-2-3-1과 4-3-2-1을 혼용하고, 짧은 패스를 통한 공격 전개와 역습 등을 추구한다. 특히, 공격의 중심이 이승우 포지션인 측면 공격수다. 수비 뒷공간 활용, 풀백과 연계 플레이를 통한 공략, 개인기를 활용한 돌파 등 베로나의 공격은 측면이 도맡는다.

물론, 성공을 확신할 수는 없다. 이승우가 유소년 무대를 휘어잡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는 다르다. 이탈리아 팀들은 전통적으로 수비 전술이 다양하고, 수비수들의 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거친 몸싸움도 버텨내야 한다. 손흥민과 구자철 등이 그랬듯이 보이지 않는 차별과도 싸워야 한다. 특히, 이탈리아 세리에 A는 인종 차별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승우다. 프로 데뷔를 앞두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모두 이겨냈다. 자신감이 충만하고, 실력도 확실하다. 바르셀로나는 이승우를 떠나보내며 바이 백(2년) 조항을 걸어놓았다.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면, 언제든지 바르셀로나로 복귀시킬 수 있는 조항이다.

바르셀로나는 1군 선수이자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인 제레미 마티유를 아무런 조건 없이 풀어줬었다. 장결희와 백승호도 마찬가지였다. 바르셀로나 B팀 주장이자 주요 선수였던 알레한드로 그리말도, 후베닐 A 최고의 유망주였던 조르디 음볼라 등을 떠나보낼 때도 바이 백 조항은 없었다. 바르셀로나가 여전히 이승우의 잠재성을 높게 평가한다는 증거다.

꿈에 그리던 바르셀로나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로 손꼽히는 세리에 A 데뷔를 앞뒀다. 자신감을 잃지 않고 축구에만 매진하면서, 그의 이름이 빛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베로나에서 성공적인 역사의 시작을 알릴 수 있기를. '후전드'란 비아냥거림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반드시 증명하길 응원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이승우 헬라스 베로나 FC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