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껴입은 느낌이었다. 구자철이 개막전에 이어 2라운드에도 선발 출전했지만, 아쉬움만 남겼다. 풍부한 활동량은 여전했지만, 공수 양면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공격의 시작을 도맡는 역할이었지만, 그를 거친 전개는 거의 없었다. 커팅이나 포백 보호의 역할에도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우크스부르크가 26일 오후 10시 30분(한국 시각)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위치한 WWK 아레나에서 열린 2017·2018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2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새 시즌 홈 개막전이었던 만큼 승리가 절실했지만, 수비와 결정력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승점 1점을 따내는 데 그쳤다. 

이보다 좋은 출발은 존재할 수 없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경기 시작 33초 만에 선제골을 뽑아냈다. 수비 지역에서 길게 넘어온 볼을 페널티박스 부근에 머물던 미하엘 그레고리치가 잡아 살짝 내줬고, 알프레드 핀보가손이 간결한 드리블에 이은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핀보가손은 구단 역사상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 6분, 중앙선 부근에서 깔끔한 이대일 패스로 아우크스부르크의 수비를 뚫어낸 데니스 자카리아가 동점골을 뽑아냈다. 자카리아는 공격적인 분위기에 심취해 수비 라인을 중앙선 부근까지 끌어올린 아우크스부르크의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묀헨글라트바흐는 중원에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점유율을 가져갔고, 불안한 아우크스부르크 수비 뒷공간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효과가 있었다. 전반 29분, 하파엘이 페널티박스 우측 부근을 파고들며 수비수 2명의 시선을 빼앗았고, 파트리크 헤어만의 슈팅이 마빈 히츠 골키퍼 선방에 막힌 것을 오스카 벤트가 머리로 밀어 넣으며 골망을 갈랐다.

묀헨글라트바흐의 기세는 이어졌다. 전반 40분, 토르강 아자르가 왼쪽 측면을 완벽하게 무너뜨렸고,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며 슈팅한 것이 골대를 때렸다. 아우크스부르크 수비는 뒷공간을 너무나도 쉽게 헌납하면서, 묀헨글라트바흐의 공격에 계속 흔들렸다. 공격에서는 지난 시즌에 비해 중원을 거치는 모습이 늘어났지만, 세밀함과 결정력에서 아쉬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우크스부르크는 홈 개막전 패배를 용납하지 않았다. 후반 4분, 슈미트의 슈팅이 좀머 골키퍼를 위협했고, 카우이비의 헤더가 묀헨글라트바흐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후반 19분에는 슈미트가 좀머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잡아내며 역전을 기대케 했지만, 이번에도 결정력이 문제였다. 

해결사는 구자철 대신 투입된 20세 청년 세르지오 코르도바였다.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베네수엘라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코르도바는 후반 31분 교체 투입돼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후반 44분, 헬러의 크로스를 코르도바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며 골망을 갈랐다. 저돌적인 침투와 감각이 돋보였던 득점이었다. 이 골로, 묀헨글라트바흐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 같던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아우크스부르크가 홈 개막전에서 패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움이 남을 법한 경기였다. 경기 시작 33초 만에 선제골을 뽑아내며 초반 5분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수비의 판단과 조직력이 아쉬웠다. 그 중심에는 구자철도 있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포백의 안정화에 힘써야 했지만, 상대의 패스 차단과 공간 커버 등에 부족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두 번째 실점 장면이 아쉬웠다. 구자철은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수비에 집중했지만, 하파엘의 빠른 드리블과 패스, 헤어만의 슈팅에 대응하지 못했다. 위험 상황에서는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들어와 수비에 힘을 보태야 했지만, 한 박자 늦은 판단으로 인해 실점을 바라보기만 했다.

구자철은 제주 유나이티드와 볼프스부르크, 마인츠 05 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한 경험이 있지만, 적응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는 2011 카타르 아시안컵 득점왕, 아우크스부르크 잔류 신화의 주역 등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인식을 지워내지 못했다. 3선의 구자철은 공수 양면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미드필더였다.

공격의 시발점 역할에서도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구자철의 발에서 시작되는 공격이 흔치 않았고, 역습 상황에서 볼을 끌다 빼앗기는 장면도 있었다.

구자철이 아쉬움을 남긴 것과 달리, 3선에 위치한 다니엘 바이어의 활약은 눈부셨다. 33세의 노장이지만, 포백 보호의 임무는 물론 공격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바이어는 날카로운 패싱력을 자랑하며 2차례의 키패스를 성공시켰고,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3차례 슈팅을 시도했다. 반면, 구자철의 키패스나 슈팅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구자철은 89%의 높은 패스 성공률을 자랑했지만, 전진이 아닌 좌우로 벌려주거나 백패스 비중이 높았다. 아우크스부르크가 구자철의 수비형 미드필더 전환을 받아들인 이유는 빌드업 과정의 세밀함을 더하기 위해서다.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난 선수인 만큼, 공격 포인트에 대한 기대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뛰는 것 외에 장점이 없다면, 주전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올 시즌 2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오랜 시간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선수인 만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적응하는 데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구자철은 왜 자신의 색깔을 지워서까지 수비형 미드필더 전환을 시도한 것일까. 그는 조력자보다 주연으로 활약했을 때 가장 빛나지 않았던가. 공격형 미드필더에 대한 미련을 지워내는 것.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면, 구자철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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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아우크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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