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잠실 보조경기장에서 < LIVE FOREVER LONG > 공연이 열렸다. 미국 록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오아시스의 보컬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 그리고 인디 밴드 모노톤즈가 함께 하는 릴레이 공연이었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기는 더웠고 습도는 높았다. 그러나 '리암 갤러거'와 '푸 파이터스'는 더위를 참아가며 기다리기에 충분한 이름이었다.

해가 져 갈 무렵, 모노톤즈가 'A'를 부르면서 공연의 문을 열었다. 모노톤즈는 2016년 제13회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음반 상을 수상하는 등, 가장 인정받고 있는 인디 밴드다. 모노톤즈의 보컬 훈조는 '미국에서 오신 형님들, 영국에서 오신 형님들을 위해 재롱을 부려 보겠다' 는 멘트와 함께 시원한 보컬을 과시했다.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연주 실력, 쇼맨십 역시 여전했다.

모노톤즈에게 할당된 시간은 20분 남짓으로 상당히 짧았다. 하지만 모노톤즈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함께 'Brown Eyed Girl'을 따라 부를 만큼, 이들의 공연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훈조가 블로그에 올린 후기에 따르면, 리암 갤러거는 공연을 마친 모노톤즈에게 '시끄럽게 잘 했다. 로큰롤이었다'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리암 갤러거에게는 '멋'이 있다

 < LIVE FOREVER LONG >에서 공연하는 리암 갤러거

< LIVE FOREVER LONG >에서 공연하는 리암 갤러거 ⓒ 이현파


< LIVE FOREVER LONG >의 관객 상당수는 오아시스 팬인 것으로 보였다. 브릿팝 최고의 스타인 만큼, 오아시스 해체 이후에도 '갤러거 형제'(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리암 갤러거의 등장을 기다리며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최근 리암 갤러거의 오프닝 음악은 오아시스의 'Fuckin' In The Bushes'로 선곡되곤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강남 스타일이라니!

예상치 못한 오프닝에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리암 갤러거는 트레이드마크인 야상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트레이드마크, 뒷짐을 지고 마이크 스탠드에 서서 노래를 부르자 팬들은 열광적인 환호성을 보냈다. 리암 갤러거는 'Rock'n Roll Star', 'Morning Glory', 'Slide Away' 등 오아시스 전성기 시절을 상징하는 명곡부터 신곡 'Wall Of Glass' 등을 부르며 떼창을 이끌어냈다. 서울(Seoul)의 팬들을 위해, 비디 아이의 'Soul Love'를 깜짝 선곡하기도 했다.

5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리암 갤러거는 '스웩'(Swag)이 몸에 배여 있는 록스타였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뒷짐을 지고 탬버린을 흔들어도, 혹은 관객을 쳐다보기만 해도 그는 멋지다. '내가 오아시스고, 리암 갤러거다'라고 거들먹거리는 특유의 분위기가 풍겼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리암의 노래였다. 사실 리암의 목소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세월의 부침을 많이 겪어왔다. 오아시스 후기 시절에는 짧아진 호흡과 불안전한 음정으로 팬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아시스 후기 시절과 비교해도 확연히 좋아진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For What It's Worth'의 허스키 보이스를 듣고 있으니, 그가 얼마나 자기 관리에 힘썼는지 느껴졌다.

리암 갤러거는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Wonderwall'을 부르고 퇴장했다. 브릿팝 최고의 히트곡인 만큼 어느 때보다 큰 '떼창'이 공연을 장식했다. 이날 리암은 오아시스의 또 다른 명곡 'Live Forever'를 부르지 않았다. 공연의 이름이 < LIVE FOREVER LONG >이었던만큼, 팬들 사이에서는 '이번만큼은 Live Forever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리암이 떠난 자리에서도 팬들은 'Live Forever'를 부르며 아쉬움을 달랬다.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한국 팬들은 미쳤다.'

 < LIVE FOREVER LONG >에서 공연하는 푸 파이터스

< LIVE FOREVER LONG >에서 공연하는 푸 파이터스 ⓒ 이현파


 < LIVE FOREVER LONG >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데이브 그롤

< LIVE FOREVER LONG >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데이브 그롤 ⓒ 이현파


2015년, 푸 파이터스의 리더 데이브 그롤은 다리 골절로 인해 깁스를 하고 의자에 앉아 공연을 했다. 다리 골절은 보통 부상이 아니다. 당연히 공연이 취소될 것이라고 예상된 가운데, 투어를 재개하고 부상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푸 파이터스는 전 세계 어떤 페스티벌을 가든 가장 큰 글씨를 장식할 수 있는 대형 밴드다. 첫 내한 공연 말미, '우리가 돌아온다면, 여러분도 와 줄 것인가?'라고 물었던 데이브 그롤. 그는 생각보다 빨리 약속을 지켰다.

첫 선곡부터 무자비했다. 'All My Life'로 시동을 건 푸 파이터스는 'Learn To Fly', 'The Pretender' 등 강력한 히트곡들을 연달아 부르면서 관객들을 압도했다. 모든 노래가 하이라이트처럼 연출되는 것은 푸 파이터스 공연의 대표적 특징이다. (사실 푸 파이터스는 한 곡을 길게 늘어뜨리는 경향이 있어서, 그보다는 더 많은 곡을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21세기는 결코 '록의 시대'가 아니다. 수많은 밴드가 하락세를 면치 못했고,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푸 파이터스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하는 록의 공룡이다. 이들은 컴퓨터의 활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날 것 그대로의 록'을 추구한다.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아날로그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공연 역시 '날 것 그대로의 록'으로 귀결되었다. 데이브 그롤의 그로울링과 머리를 울리는 디스토션, 그리고 가슴을 짜릿하게 만드는 드러밍이 가득했다.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도 데이브 그롤 못지않은 환호성을 끌어냈다. 그는 박자를 잘게 쪼갠 드럼 연주를 선보이는가 하면, 프레디 머큐리처럼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9집 앨범의 신곡인 'Sunday Rain'에서는 데이브 그롤과 함께 노래했다. (테일러 호킨스는 레드 제플린 멤버들 앞에서 'Rock And Roll'을 부를 정도로 검증된 싱어다.) 데이브 그롤이 푸 파이터스를 지탱하는 기둥인 것은 사실이지만, 푸 파이터스는 결코 '데이브 그롤의 원맨 밴드'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화요일 밤

관객들과의 상호 작용이 많았다는 것도 이번 공연의 특징이다. '멘트를 너무 많이 한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적잖게 있지만, 데이브 그롤은 공연 내내 특유의 유쾌한 면모를 한껏 보여주었다.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면서도 중간중간 담배와 술을 즐겼다. 때로는 유머 감각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마지막 곡인 'Everlong'을 연주하다가 기타 코드를 틀렸을 때는 '신이시여. 실수하지 않도록 해 주소서'라고 읊조렸다. 팬들의 웃음보를 터뜨린 동시에, 베테랑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8천여 명의 팬들은 공연 내내 '떼창'은 물론 격렬한 슬램으로 록스타의 땀에 화답했다. 푸 파이터스의 노래 중 비교적 잔잔한 'Big Me'가 연주될 때는 하나둘 핸드폰 불빛을 켰다. 데이브 그롤은 미소를 띤 채 이 풍경을 응시했다. 내한 공연을 온 스타들이 클리셰처럼 하는 멘트가 있다. 그것은 아마 '세계 최고의 관객', '한국 관객은 미쳤다'일 것이다. 데이브 그롤은 자신의 멘트가 그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공연장 뒤에 보이는 잠실 종합 주 경기장을 가리키면서 '다음에는 저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자'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상당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인지, 일본 섬머소닉에서보다 훨씬 많은 노래(14곡)를 불렀다.

푸 파이터스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전설로 대우받는 밴드다. '떼창'과 환호성에 누구보다 익숙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최고의 관객'이라는 말이 설령 립 서비스였다고 해도 상관없다. 록의 영웅이 100분 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갔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 날 공연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Walk'가 연주될 때였다. 그 어느 때보다 신나게 펄쩍 뛰었다. 'Walk'는 실의와 절망에 빠진 이가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는 내용의 하드 록이다. 땀과 눈물이 뒤섞인 채, 아름다운 화요일 밤이 저물고 있었다.

 2017 < LIVE FOREVER LONG >라인업.

2017 < LIVE FOREVER LONG >라인업.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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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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