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의 김수현. <리얼>의 최대 피해자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 <리얼>의 김수현. <리얼>의 최대 피해자로 떠오르고 있다. ⓒ 코브픽쳐스


박스오피스는 이준익 감독의 <박열>의 승리였다. 하지만 관객들과 언론의 눈길은 다른 데 쏠렸다. 한쪽엔 <옥자>, 또 다른 한쪽엔 <리얼>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야 이미 칸국제영화제 이전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으니 고개를 끄덕일 순 있다. 그러나, <리얼>은 사정이 달랐다.

그야말로 <리얼>은 '리얼'하고 드라마틱한 흥행의 희비 쌍곡선을 과시했다. 이례적으로 개봉 직전 기자시사회를 개최했을 때, 이미 논란은 예고됐다. 할리우드를 포함해 언론/배급 시사를 개봉 직전 갖는 영화들은 대체로 두 경우다. 완성도가 현저히 낮거나, 그 낮은 완성도를 최대한 감춰야 하거나. <리얼>이 딱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도 '김수현'이란 이름값과 CJ라는 배급사의 합작은 개봉일(28일) 일일 최대 스크린과 상영 횟수를 보장케 했다. 그래서 결과는?

개봉일 최대 스크린(970개)을 장악한 <리얼>은 관객 수 14만을 동원하며 2위에 머물렀다. 같은 날 917개로 출발한 <박열>이 20만을 동원해 1위를 차지했다. 뚜껑이 열리면서, 관객들의 무시무시한 혹평이 쏟아졌고, 그 입소문은 금세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다음날인 29일 <리얼>은 918개 스크린 수를 유지했지만, 고작 5만 7천 명을 동원했다. 급전직하였다.

반면 같은 날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고작 94개 스크린에서 2만 3천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옥자>의 상영횟수는 <리얼>의 10분의 1도 못 미쳤다. 이날 <리얼>의 좌석점유율은 무려 8.7%, <옥자>는 42.7%였다. 한 마디로, <리얼>을 상영한 멀티플렉스에는 파리가 날렸고, <옥자>를 튼 비 멀티플렉스, 즉 단관극장이나 예술영화 상영관들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는 얘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리얼>의 스크린 수는 야금야금 줄어들어 일요일인 2일 679개까지 떨어졌고, 누적 관객 수도 2일까지 37만 3천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리얼>의 제작비는 115억 원으로, 중국 쪽 투자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익분기점이 최소 300만에서 최대 350만이니, 이쯤 되면, '재앙'급 성적이라 할 만하다.

허나 <리얼>이 지난주 펼쳐 놓은 '지옥문'과 영화계에 던져 준 교훈은 비단 기록적인 흥행 실패뿐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는 100억 넘는 도박이자 모험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재앙에서 배우는 훈훈한 교훈극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김수현이란 스타를 앞세운 액션 영화 <리얼>이 주는 교훈들이다. 그 교훈을 몇 가지로 짚어 보자.

전대미문의 혹평, 관객과 평론가의 행복한 합일

"<리얼>은 형편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형편없는 사람들이 만든 형편없는 영화입니다. <리얼>보다 기술적으로 못 만든 영화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리얼>처럼 자신의 형편없음에 눈먼 영화는 찾기 힘들 거예요. 여자들을 보는 끔찍한 방식, 끔찍한 남자들에게 감정이입하는 방식 모두 이들이 얼마나 바닥을 치는 사람들인지를 보여줍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리얼>에 이렇게 평하며 별점 0개에 해당하는 'BOMB', 즉 폭탄 등급을 줬다. 그러면서 "<리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난장판인 영화", "<리얼>은 최악의 스타 영화"라며 혹평 릴레이를 이어갔다. 어디 그뿐이었으랴. 영화 전문지 <씨네21>의 이용철 평론가는 "배우의 환상이 빚은 거대한 실패. 함께 웃음거리가 되어줄게"라며 반어의 의미로 별 셋을 주는 유희(?)에 동참했다. 그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는 "참담할 뿐"이란 네 글자와 별 한 개를 줬다.

이미, <리얼>은 지난 주말을 거치며 '졸작', '괴작' 장르의 '만신전'에 올랐다. 보고 온 관객은 나만 당할 수 없으니 꼭 보라고 '강권'했고, 못 본 영화광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 길래'하는 궁금증에 잠 못 이루기도 했다. 그리하여, 네티즌 평점엔 "이 영화를 본 제가 별 10개를 받아야겠습니다"라는 '명문'이 탄생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상에서 <리얼>을 '리얼'하게 놀리기 대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클레멘타인>과 <맨데이트> <긴급조치 19호>를 비롯하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같은 한국영화계에 주옥같이 빛나는 괴작, 졸작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오죽했으며, '졸작 빙고'까지 등장했을까.

이렇게 <리얼>은 평단과 관객의 평가에 있어 행복한 합일을 이루게 만든 작품이자, 한국영화계 졸작의 계보를 오랜만에 잇는 새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만들어라' 보다 '이렇게 만들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영화계에 던지는. 그 교훈을 직접 확인하고픈 '용자'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용기(?)를 가지고 어서어서 극장으로 향하시라.

감독이 교체 된 영화 치고...

또 하나의 교훈. 개봉 전 감독이 교체된 한국영화치고 후한 평가를 받은 작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리얼> 역시 개봉 전 이정섭 감독에서 이사랑 감독으로 연출자가 교체된 경우다. 더욱이, <리얼>의 제작자이기도 한 이사랑 감독이 김수현 감독의 친인척(이부형제)으로 알려지면서 자진해서 의혹의 눈초리를 불러일으킨 측면이 강하다.

<리얼> 개봉 즈음, 감독을 교체당한 또 한 편의 영화가 논란이 됐다. 120억 대작 <자전차왕 엄복동>이다. 최근 김유석 감독이 급작스럽게 하차했고, 제작자이자 주연인 이범수와 <슈퍼스타 감사용>의 김종현 감독이 '자문 감독' 타이틀을 달았다. 이와 관련, 그간 한국영화계에서 자의든 타의든 감독이 교체됐던 불운의 영화들 또한 줄줄이 소환됐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흥행영화라 할지라도, 제작자가 편집권을 행사하기 마련일지라도 결국은 촬영에서, 편집을 포함한 후반 작업까지 연출자의 역량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크랭크인 시점에서 메가폰을 잡았던 감독이 크랭크업 전후로 바뀌는 영화는 완성도에 의구심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사정 또한 천차만별이다. 제작자 탓이 큰 영화도 많고, 하다 못 해 촬영 직후 능력과 상식 이하의 연출력을 보여주는 감독도 있다. 그러나 관객은 그 사정까지 고려하지도, 봐 주지도 않는다. 그러는 사이 잡음은 일기 마련이다. <리얼> 역시 그러했다. 심지어, 감독의 영문 이름이 'Love Lee'라는 점까지 비아냥거리가 됐다.

설리에 쏠린 관심, 그 부작용

 영화 <리얼>의 최진리. 영화는 애초부터 설리의 노출과 정사 신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는 독으로 작용했다.

영화 <리얼>의 최진리. 영화는 애초부터 설리의 노출과 정사 신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는 독으로 작용했다. ⓒ 코브픽쳐스


톱스타의 노출이 반드시 약이 되는 법은 아니다. 독이 될 수도 있다. <리얼> 역시 그러했다. 걸그룹 f(x) 탈퇴 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더 큰 관심을 끈 설리(최진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개봉 전, <리얼>이 홍보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설리와 설리의 노출은 매체의 관심사였고, 대중 역시 이러한 무차별적 보도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상영 중인 영화의 일부 또는 전체를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복제하거나 촬영하여 동영상 또는 스틸컷으로 온/오프라인에 배포하는 행위는 저작권법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며, 복제, 배포된 장면에 등장한 배우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엄연한 불법 행위입니다." - 제작사 코브 픽쳐스

급기야, 개봉 이틀 후인 29일 이후 극장 내에서 설리의 노출 장면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상에서 유포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몇 장면은 불법 유출까지 이뤄졌다. <리얼> 측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자, 내우외환의 상황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혹평, 박스오피스 급감과 더불어 불법 유출 사태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자의든 타의든 여성 톱스타 배우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이에 따른 홍보 효과가 빚은 참극이라 할 것이다.

김수현을 위한, 김수현에 의한

김수현, '리얼' 그 자체! 배우 김수현이 31일 오후 서울 성균관로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린 영화 <리얼> 쇼케이스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퇴장하고 있다. <리얼>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둘러싼 음모와 전쟁을 그린 액션 느와르 작품이다. 6월 개봉 예정,

배우 김수현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성균관로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린 영화 <리얼> 쇼케이스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퇴장하고 있다. ⓒ 이정민


그리고 김수현과 스타 마케팅. 듀나의 말마따나, "<리얼>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수현에 의한, 김수현을 위한, 김수현의 영화"라는 중평이다. 영화 외적으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그 '한류스타' 김수현으로 인해 투자가 됐고, 이부형제인 제작자가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으며, 김수현의 이름값으로 인해 100억이 넘는 제작비를 모을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 김수현은 그러나 영화 개봉 직후 물 밑 듯이 밀려드는 혹평 세례에도 지난 주말 예정된 무대인사에 꿋꿋이 임했다. 그리고 팬들의 응원 앞에서 감동인지 감격인지 모를 눈물을 떨궜다. 앞선 VIP 시사에 이은 두 번째 눈물이었다.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이었을까. 그 눈물은 무려 100억 대의 '망작'을 구원할 가치가 있을까.

어쩌면, <리얼>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일 것이다. 과도한 스타마케팅에 울리는 묵직한, 아니 전대미문의 경종 말이다. 그렇게, 기록적인 혹평과 흥행 실패, 감독 교체와 불법 유출 사태를 한꺼번에 겪은 작품은 <리얼>이 최초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리얼'이다.

김수현 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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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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