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방송된 <SBS 스페셜>의 한 장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같은 리더를, 우리는 뽑을 수 있을까.

지난 7일 방송된 의 한 장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같은 리더를, 우리는 뽑을 수 있을까. ⓒ SBS


잊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미 백악관의 주인이 버락 오바마였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겠나. 선거 직후부터 미 국민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시위와 집회를 양산한 대통령, 인종차별에 가까운 '행정명령'을 강행하며 국내외의 비난에 직면했던 대통령, 극히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 '북한 카드'를 꺼내든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미친 존재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급기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면 영광일 것"이란 파격적인 발언까지 내뱉으며 한국의 조기 대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이 '미쿡' 대통령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트위터 정치'를 구현하며 전 세계를 혼란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갈무리된 2016년의 대혼란은 7일 밤(현지시각) 프랑스가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당선을 알리며 2017년에도 이어질 것을 예고하는 중이다. 물론, 그사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7일 방송된 <SBS 스페셜> '오바마 비디오 2920일' 편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트럼프의 '미친' 존재감 이전 우리는 오바마의 재선을 동경하면서 '박근혜 시대'를 맞이하지 않았었나. 조기 대선을 이틀 앞두고 방영된 '오바마 비디오'는 분명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리더십의 어떤 조건'을 보여주고 있었다.

트럼프 이전, 미국엔 오바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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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정직하고 친절하고 진정성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당신이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거라고 믿기 어려울 거예요." (오바마 대통령 비디오 작가 아룬 차우드하리)

"오바마 대통령은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방면으로 많은 사람과 대화하려 했어요.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그에게 다가와 대화할 수 있게 만든 것이죠. 연설만 하고 아무 대답도 듣지 않는 그런 일방적인 방법이 아니라 트위터와 스냅챗,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사용해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사회운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조슈아 드부아 오바마 정부 정책담당)

인간미와 소통의 능력과 의지.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도 가지지 못했던 모습과 비전이다. '대면보고'조차 싫어했고, 오로지 비선 실세들과만 소통했던 박 전 대통령에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마도 외계에서 온 존재만큼이나 동떨어진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과거 한미 정상회담 때 박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 앞에서 벌인 해프닝은 인구에 회자했을 정도다.

하여튼, 오바마의 이러한 뛰어난 소통 능력은 이미 두 번에 걸친 미 대선에서의 선거전을 통해 잘 알려졌고, 집권 내내 오바마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인과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반면 트럼프는 오로지 트위터에 집착한다). <SBS 스페셜>은 오바마의 측근들과 미국인들의 평가, 그리고 그가 남긴 영상 등을 통해 이러한 오바마의 소통 능력과 인간미에 주목한다.

사실 "카메라가 꺼져 있든 켜져 있든 변하지 않는" 대통령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평범함이 지니는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가족들과의 평범한 '백악관 일상'을 공개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고, 이러한 '보통 사람'으로서의 면모는 지지자들을 넘어 광범위한 '호감'을 양산하는 기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권위도 필요하다. 그러나 친근함이 주는 힘이야말로 유권자들과 국민들에게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주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는 이러한 매력을 '홍보'나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국정 철학'에 녹여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부럽지 아니한가. 특히나 박근혜 정부가 지녔던 비밀스럽고 권위적인 청와대의 담장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우리네 현실에 비춰보면 더더욱 말이다.

박근혜와 오바마 사이, 우리가 맞이해야 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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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몇 마디 말과 단어로는 여러분의 슬픔에, 상처 입은 마음에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단지 바라고 여러분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은 비탄에 빠진 여러분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이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떤 슬픔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12월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을 위로하고자 연단에 선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중 일부다. 20살 정신이상자가 초등학교에 난입, 총기를 난사해 초등학생 20명과 교직원 6명이 사망한 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직후, 오바마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며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You're Not Alone"이라는 이 흔한, 그러나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주는 무게감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바마에겐 '슬픔의 사령관'(Commander of Grief)이란 별명이 붙은 것이리라. 21살 백인이 흑인이 주로 다니는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흑인 9명이 사망했던 찰스턴 사건의 희생자 장례식에서 그가 한 명 한 명 희생자의 이름을 연호하기에 앞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던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한 바 있다. 여러 말보다 의미 깊은 노래가 주는 힘으로 국민을 위로하고 설득할 수 있는 대통령.

세월호 참사 후 팽목항 진도 체육관을 찾았던 우리의 전직 대통령을 떠올려 보라. 왠지 화가 나고 부끄러워지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퇴임 이후에도 오바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심지어 그의 러닝메이트였던 바이든 부통령의 인기 역시 마찬가지다. <SBS 스페셜>은 이 인기의 요인으로 몇 가지를 꼽았다.

앞서 든 인간미와 소통 능력은 물론 오바마는 통합을 지향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혈투를 벌였던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힌 것이 대표적이었다. 또 자신을 반대하는 인권운동가의 연설 방해에도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며 경청할 만큼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실패한 정책"이라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가 임기 내내 주력했던 정책인 '오바마 케어' 역시 그런 통합의 기치가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퇴임 순간까지, 바이든과 함께 출연한 동영상에서 "퇴임 이후에 나 뭐하지"라고 묻는 유머러스한 대통령. 무엇보다 소통 또 소통을 외쳤던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그는 이제 전 세계 네티즌들이 "수입"하고 싶어 하는 전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래서인지, <SBS 스페셜>은 말미 오바마의 성공한 정책보다 실패한 정책을 더 많이 나열했다. 퇴임한 미국 대통령을 다루는 만큼, 자칫 감성적인 찬양 위주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제스처였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바마의 8년 간의 기록이 조기대선을 하루 앞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실로 명징하다. 인간미를 지닌, 다수 국민들과의 눈높이를 유지하며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주는 '기쁨'의 의미 말이다. 유독 오바마와 포옹하는 미국 국민들의 미소가 눈에 띄는 이유도 그렇게 진심어린 '기쁨'이 담긴 표정 때문이었으리라. 우리는, 5월 9일 이후 그런 기쁨을, 그런 미소를 전해주는 새로운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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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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