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가 즐겨보는 SF영화는 무시무시한 외계 생명체나 로봇들이 나와서 인류를 절멸시킬 위기에 봉착하게 하곤 한다. 그런 영화는 우리에게 미래에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고민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닐 블룸캠프의 2009년 장편 데뷔작인 <디스트릭트 9>은 조금 결이 다르다. 이 영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28년의 세월동안 9구역에서 수용된 채로 지내왔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렇다. 다른 영화에서와는 달리 <디스트릭트 9>의 외계인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다. 물론 그 주체는 인간이다.

 영화 속 외계인은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으로부터 압도당하는 존재다. MNU는 강제력을 동원해 외계인들을 퇴거시키고자 한다.

영화 속 외계인은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으로부터 압도당하는 존재다. MNU는 강제력을 동원해 외계인들을 퇴거시키고자 한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영화에서는 MNU라는 외계인 관리국이 존재한다. 9구역이 외계인들의 무질서함으로 인해 혼란해지자 관리국은 외계인들을 쫓아내고 강제로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미 외계인을 한 구역에 몰아넣을 수 있는 강제력이 있기 때문에, 강제철거에도 외계인은 무기력하게 자기 자리를 비켜줘야 할 뿐이다.

요하네스버그라는 배경, 그리고 외계인(alien)에 대한 은유

알다시피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이름의 최악의 인종분리정책이 실행되었던 국가다. 실제로 당시 남아공 정부는 유색 인종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다른 인종 간의 혼인을 금지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백인의 특권을 유지 및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블룸캠프의 <디스트릭트 9>이 요하네스버그를 배경으로 둔 점, 특정 존재들을 분리하여 수용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외계인은 차별받는 약자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외계인은 영어로 alien이라고 한다. 이 단어의 다른 뜻으로 '이질적인'이라는 것이 있다. 즉 사회 전반의 주류적인 것과 맞지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데에 alien이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

 낮섦과 이질감을 느끼는 이들을 판별하여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동은 보편적이다. MNU는 그런 판별과 배제를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조직이다.

낮섦과 이질감을 느끼는 이들을 판별하여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동은 보편적이다. MNU는 그런 판별과 배제를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조직이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리처드 커니는 그의 저서 <이방인 신 괴물>에서 이성중심적인 서구사회는 주류와 동일한 가치를 견지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낯섦과 이질감을 느껴왔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그 낯섦이 감정의 차원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판별'의 과정을 거칠 때 발생한다. 그들이 무고한 사람인지, 파괴적인 존재인지 가려낸다는 것이다. 그런 후 존중하고 환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희생시키고 차별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디스트릭트 9>의 외계인 수용과 아파르트헤이트와 맞닿아 있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MNU는 외계인을 공권력을 통해 직접적으로 차별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주체다.

권력이 외계인 혹은 이방인을 쫒아내는 것을 방조하거나 가세하는 영화의 이미지 때문에 혹자는 이것이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실 난민이 아니어도 사회적 약자라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국가에 의해 차별받곤 한다.

또한 커니는 국가들이 동일한 영역들과 통합하기 때문에 이질적인 존재로서의 에이리언은 통합을 파괴하는 존재로 여겨진다고 분석한다. 영화에서 외계물질에 감염되어 외계인이 되어가는 주인공은 치료와 보호가 아닌 생물학적 학대의 대상이 된다. 그를 통제해야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니까.

한국사회의 미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디스트릭트 9>은 장르 구분 상 SF물이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은유로 풀어내는 영화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만이 남는다. 한국사회는 어디에 와 있는가. 리처드 커니가 말한 '동일하지 않은 것을 향한 배제'가 횡행하지는 않는가.

이번 대선을 생각한다. 여러 이슈들이 있었지만 성소수자들을 향한 폭력적인 발언들이 기억에 강렬히 박혀있다. 어떤 후보는 동성애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위협적으로 다가올 혐오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그리고 한 후보를 제외하고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반응했다. 과연 2017년 대한민국은 <디스트릭트 9>이 보여주는 차별과 배제의 디스토피아와 얼만큼 다른가?

다시 <이방인 신 괴물>을 펼쳐본다. 우리는 이질적이라고 인식되는 존재들과 어찌되었든 간에 같이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방인들을 향한 환대가 필요하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이 영화를 한 번 보면 좋을 듯하다.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사회는 어때야 하는지 미약하게나마 해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디스트릭트9 #에일리언 #혐오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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