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사건수첩> 영화 포스터

▲ <임금님의 사건수첩> 영화 포스터 ⓒ (주)영화사람


최근 사극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예전 사극은 정사나 야사를 바탕으로 무게감 있는 화법과 세밀한 고증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조선 여형사 다모>와 <대장금>부터 시작한 '퓨전' 사극은 과거와 다른 작법을 선보였다. 고증을 무시한 채로 펼쳐지는 상상력과 신선한 묘사에 TV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이젠 정통 사극을 찾기 힘들 정도로 퓨전 사극은 안방극장의 대세로 굳어졌다.

극장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광해, 왕이 된 남자><관상><역린><조선명탐정><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조선미녀삼총사><군도: 민란의 시대><해적: 바다로 간 산적><조선마술사>은 버디, 케이퍼, 액션, 서부 등 할리우드 다양한 장르 공식과 참고 작품을 한국 사극에 이식한 사례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역시 논어보단 해부학을 좋아하고, 궁궐보다 사건 현장을 뛰는 임금을 다루며 사극의 틀을 깨버린다.

영화는 만화가 허윤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원작은 순정 만화와 추리를 결합하여 브로맨스를 강조한다. 영화 <셜록 홈즈>와 드라마 <셜록>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영화의 한 장면

▲ <임금님의 사건수첩> 영화의 한 장면 ⓒ (주)영화사람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예리한 추리력의 소유자인 임금 예종(이선균 분)과 천재적 기억력을 가진 신입 사관 이서(안재홍 분)가 한양을 뒤흔드는 괴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원작 만화에서 원형은 가져왔으나 톤 앤 매너에서 차이는 제법 크다. 영화의 예종과 이서는 이선균과 안재홍이 연기했던 영화, 드라마 인물의 성격을 참고한, 또는 그들을 통해 재창조된 흔적이 강하다. 명석함을 자랑하나 어딘가 허당 느낌이 나는 예종, 어벙하나 충직함이 넘치는 이서는 마치 이선균과 안재홍에게 맞춤 양복처럼 딱 맞는다. 두 사람이 벌이는 옥신각신은 웃음을 형성하며 <임금님의 사건수첩>이 원작을 벗어나 영화만의 캐릭터와 이야기로 거듭나도록 돕는다.

조선 시대의 과학수사를 다룬 작품답게 영화는 기이한 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 심혈을 기울인다. 대낮 저잣거리에서 갑자기 자연 발화하는 사람, 정체 모를 거대한 물고기, 급작스레 사라진 예종의 조카 자성군 등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종과 이서의 활약으로 배후에 존재하는 음모 세력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들 사건은 하나로 연결된다. 이런 전개 속에서 영화는 나왔던 설정과 장치를 꼼꼼하게 활용하는 영리함도 보여준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재미 중 하나는 볼거리다. 영화는 고증에 치중한 사극의 틀에서 벗어나 예종의 비밀 공간, 시체를 검안하는 장면, 조선판 잠수함인 '잠항선', 오두막에 숨겨진 비밀 석실에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예문관 신하들과 비밀스러운 회의를 하는 장소인 예종의 비밀 공간은 잠행에 필요한 여러 의상, 해부학 자료들, 마술에 사용되는 물건 등이 배치하여 예종의 다양한 관심사와 현재의 정치적 입지를 보여준다. 예종이 시체를 검안하는 장면은 조선의 시대상에 현대 과학 수사를 결합하여 눈길을 끈다. 잠항선과 비밀 석실은 역사적 인물에 상상력을 덧붙인 결과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영화의 한 장면

▲ <임금님의 사건수첩> 영화의 한 장면 ⓒ (주)영화사람


드라마 <셜록>, 영화 <조선명탐정>의 흥행 탓일까? 근래 한국 영화에선 '탐정'을 다룬 작품이 제법 등장했다. 그 속엔 여러 시도가 담겨 있다. <탐정: 더 비기닝>은 경제적으로 무능하다고 해서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고 반문한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시대의 망각에 저항하려는 몸부림이 감지된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연출한 문현성 감독은 "사극에 대한 고정 관념을 탈피하고 영화적 장치와 상상력을 최대한 자유롭게 담아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생각 안에 갇히지 않으려 애썼고, 사소한 부분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며 조금이라도 다른 맛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했다. 색다르면서 유쾌한 사극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설명한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추리의 맛과 터지는 웃음을 갖추었다. 또한, 귀 기울일 가치가 있는 외침도 들린다. 영화 속에서 예종은 권력을 독점한 사대부와 부딪힌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고 외치는 자들, 거미줄 같은 혼맥으로 짜인 사대부의 관계도는 요즈음 실상과 별반 차이가 없다.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지도자, 통솔력을 발휘하며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리더의 모습은 우리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이상적 모습이 아닌가. 여기에 예종과 이서의 특징을 더하면 정치적 메시지는 한층 근사해진다. "관찰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이선균 안재홍 문현성 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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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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