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첫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둔 대한항공

창단 첫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둔 대한항공 ⓒ KVO


배구는 팀 당 6명씩 코트 안에서 싸우는 경기다. 각자의 위치에 맞게 서브와 리시브, 토스와 공격으로 역할을 분담하며 최상의 경기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016-2017 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대한항공 점보스는 보이지 않는 '제 7의 공격수'를 가지고 있다. 리베로가 아니다. 바로 대한항공의 사령탑 박기원 감독이다.

박기원 감독은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며 배구에서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극대화시켜 팀의 전력에 보탰다. 감독이 직접적으로 선수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작전타임은 일부에 불과했다. 무엇이 챔피언결정전만 오면 오들오들 떨어야 했던 대한항공 선수들에게 평정심을 만들어 준 것일까.

두 차례 승리의 수훈갑, 비디오판독

V리그 경기에는 한 경기에서 팀 당 최대 4번의 비디오판독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중 1번은 5세트 10점이 지나고 쓸 수 있는 '스페셜 비디오판독'이며, 이를 제외한 총 3번의 기회 중 1번이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기회는 2번으로 줄게 된다. 최대 횟수는 많아 보이지만 감독의 역량에 기회가 좌지우지되곤 한다.

그런데 대한항공이 승리를 거뒀던 경기를 돌이켜 보면, 모두 이 비디오판독이 전체 승부의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 1차전 1세트 현대캐피탈이 리드한 세트포인트 상황에서 요청했던 비디오 판독, 판정은 현대캐피탈 득점이었지만 판독은 이를 뒤집었다. 이 결과는 대한항공에게 듀스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결국 27-25로 세트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후 경기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30일 벌어진 3차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2세트 23-22로 대한항공이 앞선 상황, 박주형의 오픈공격이 블로킹을 맞고 라인을 벗어났다. 하지만 박기원 감독은 공격자 터치아웃 비디오판독을 신청,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듀스로 끌고 가지 않고 세트를 따낸 대한항공은 이후 두 세트를 내리 따내며 시리즈를 다시 리드할 수 있었다.

주전과 백업이 없는 '레프트 로테이션'

대한항공에는 주전급으로 경기에 출장하는 레프트가 4명이 있다. 최고참 신영수, 그리고 주포 김학민, 수비형 레프트로 분류되는 곽승석과 정지석이다. 시즌 중에는 김학민과 정지석이 중용되는 모습이었지만, 이번 챔프전에서는 다르다. 매 세트 상황에 따라 수시로 레프트를 교체하는 모습이었다.

로테이션의 진가는 3차전에서 제대로 빛났다. 박기원 감독은 지난 2차전부터 조금씩 컨디션이 떨어지고 있는 김학민이 부진하면 곧바로 신영수를 투입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리고 3차전 3세트에서 대한항공의 세트 중반 연속득점에는 신영수의 서브에이스 2개가 있었다. 자신의 오픈공격과 상대 범실까지 묶어 4점을 연속 따내면서 박기원 감독의 승부수는 그대로 적중했다.

곽승석 역시 수비에서 빛났다. 지난 3차례 경기에 김학민의 리시브 성공률은 40%가 채 되지 않았다. 또 리베로 백광현 역시 3차전에서는 33%의 리시브 성공률을 보이며 안정감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이 상황에 레프트로 곽승석이 투입되면 리시브가 많이 안정됐다. 전체 리시브 중 20%가 넘는 점유율을 가져가며 대한항공의 원활한 세트에 큰 도움을 줬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원포인트 승부수

이번 챔프전에서는 박기원 감독의 '원포인트 블로커'가 적재적소에 들어맞았다. 1차전에서는 1세트 중반 투입된 센터 김철홍이 듀스 상황에서 블로킹 득점으로 대한항공의 좋은 흐름을 끝까지 지켜냈다. 김철홍은 이번 정규리그 10경기에 출장했지만 단 1개의 블로킹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감독은 김철홍에게 신뢰를 줬고 이에 보답했다.

3차전에서도 '원포인트 블로커'전략은 통했다. 이번엔 높이가 낮은 한선수를 대신해 투입한 조재영이 3세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살얼음판 승부였던 3세트 후반 투입된 조재영은 송준호의 공격을 유효블로킹으로 막고, 이후 디그까지 해내며 23-20으로 대한항공이 달아나도록 도왔다. 단순한 한 포인트지만 이 점수 이후 현대캐피탈은 3세트 추격 의지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대한항공의 장점인 서브를 살리는 원포인트 작전 역시 빛났다. 3차전 3세트 14-17로 끌려가자, 박기원 감독의 작전은 "승부처다. 네트에 걸리더라도 서브를 강하게 때려라"였다. 선수들이 위기에 몰려 강한 서브보다는 목적타 서브를 구사하자 감독이 지시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작전타임 이후 가스파리니, 신영수를 필두로 구사한 강한 서브는 3세트 흐름을 바꿔내 역전으로 이끌었다.

흔들리지 않는 제 7의 공격수

대한항공엔 신영수와 김학민을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 챔피언결정전같은 단기전 경험이 적은 편이다. 또 우승 경험이 없다보니, 박빙의 상황으로 몰리게 되면 쫓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3차전 1세트는 선수들이 가장 안 좋을 때 보여주는 모습의 종합이었다.

하지만 과거엔 그런 안 좋은 흐름이 한 경기를 모두 지배했다면, 박기원 감독 체제 하의 선수들은 금방 흐름을 바꿔내고 있다. 선수들은 흔들릴지언정 감독이 중심을 잡아준다면,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 최대 2경기가 남았지만, 대한항공은 승패를 떠나 역대 최고의 챔피언결정전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 7의 공격수' 박기원 감독이 있다. 과연 그 결실은 창단 첫 우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로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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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홍지일 기자
대한항공 남자배구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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