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구리 인창고를 졸업하고 kt 위즈에 입단한 좌완 투수 정성곤은 지난 2년 동안 48경기에 등판해 124.1이닝을 던졌다. 통산 성적이 2승13패 평균자책점 7.09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성적에 비해 1군에서 비교적 많은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성곤이 선수층이 얇은 신생팀 kt 소속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수준 차이가 점점 심해지면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2000년대 초,중반의 김진우(KIA 타이거즈)나 류현진(LA다저스)처럼 곧바로 1군의 주축투수로 자리잡는 것은 점점 힘든 일이 됐다. 실제로 2015년 신인 드래프트 출신 중에는 정성곤보다 먼저 이름이 불렸음에도 아직 1군 데뷔조차 해보지 못한 선수도 적지 않다.

특히 선수층이 두꺼운 팀의 경우 유망주들이 들어와도 쟁쟁한 선배들에 밀려 2군을 전전하다 별다른 실적도 올리지 못한 채 연차가 쌓이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통합 4연패를 달성한 '2010년대의 지배자'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투수들은 워낙 막강한 투수진 때문에 그런 피해(?)에 더 쉽게 노출되곤 했다. 수 년째 유망주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 좌완 백정현 역시 올해로 벌써 31세의 중견 선수가 됐다.

'오키나와 커쇼', '시범경기 범가너'로 보낸 10년 여의 세월

 백정현은 매년 좋은 구위를 인정 받으면서도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백정현은 매년 좋은 구위를 인정 받으면서도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 삼성 라이온즈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백정현은 김광현(SK와이번스)과 양현종(KIA 타이거즈)을 배출한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8순위)로 삼성에 지명됐다. 사실 나이로 보면 류현진, 차우찬(LG 트윈스)과 같은 1987년생이지만 고교 시절 무릎 십자인대가파열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1년 유급을 했고 동기들보다 프로 진출도 늦어졌다(이로 인해 병역 면제 판정도 받았다).

백정현은 2007년 8월 25일 KIA를 상대로 한 프로 데뷔전에서 KIA의 중심타자 최희섭과 장성호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선동열 감독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높은 잠재력을 가진 좌완투수 대부분이 그렇듯 백정현 역시 위력적인 구위에 비해 불안한 제구력이 문제였다. 정교한 코너워크를 노리다가 볼카운트가 불리해지고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던진 어설픈 공이 타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곤 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삼성의 두꺼운 투수층이었다. 이미 권혁(한화 이글스)이라는 걸출한 불펜 투수를 보유하고 있던 삼성은 2010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이적한 장원삼이 가세했고 같은 해 동갑내기 차우찬의 잠재력마저 폭발했다. 권혁과 장원삼, 차우찬이라는 걸출한 팀 동료들 사이에서 백정현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백정현에게는 '오키나와 커쇼', '시범경기 범가너'라는 별명이 있다.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의 연습경기나 시범경기에서는 연일 호투를 이어가다가도 정작 시즌에 돌입하면 부진의 늪에 빠진다는 뜻으로 지어진 별명이다. 실제로 백정현은 2013년과 2014년 시범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52로 대단히 호투했지만 정작 정규리그에서는 2년 동안 1승4패1세이브5홀드5.73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백정현은 권혁이 팀을 떠난 2015 시즌 6월까지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프로 입단 9년 만에 1군의 주력 불펜 투수로 안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7월부터 급격히 투구내용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2홀드6.11의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5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4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1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것이 2015년 백정현의 유일한 승리였다.

입단 후 10년 만에 개인 최다승에 억대 연봉 등극까지

동갑내기 차우찬이 4억 원, 프로 입단 동기 김광현과 양현종이 각각 8억5000만 원과 7억5000만 원에 도장을 찍을 때 프로 10년 차의 백정현은 5500만 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백정현은 작년 시즌 차우찬의 풀타임 선발 정착과 박근홍의 부진 속에서 삼성의 불펜을 꾸준히 지켰다. 백정현이 시즌 내내 한 번도 2군에 내려가지 않고 1군 풀타임 시즌을 치른 것은 작년 시즌이 프로 데뷔 후 처음이었다.

백정현은 2016년 70경기에 등판해 6승3패9홀드5.77을 기록했다. 물론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불펜 투수에게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하지만 68.2이닝을 던지면서 삼진 77개를 잡아냈을 정도로 위력적인 공을 던졌고 볼넷은 소화한 이닝의 절반도 되지 않는 30개에 불과했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던 제구력 문제를 상당 부분 보완했다는 뜻이다.

더욱 고무적인 부분은 불펜뿐 아니라 선발투수로서도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백정현은 9월 이후 4경기에 선발 등판했는데 그 중 마지막 2경기에서 승리를 챙겼다. 2위 자리를 확정 짓고 주전들에게 휴식을 준 9월27일NC 다이노스전(5.2이닝1실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4위 싸움을 위해 총력전을 펼친 10월4일 LG전(5이닝1실점) 승리는 분명 의미가 남다르다.

백정현은 올해 81.8%가 인상된 1억 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95억 원의 사나이가 된 차우찬, 22억 원을 받게 된 양현종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프로 입단 11년 만에 드디어 억대 연봉에 진입한 것이다. 삼성은 올해 FA 우규민과 차우찬의 보상 선수 이승현이 합류했지만 좌완 쪽은 차우찬이 빠져나갔을 뿐 특별한 보강이 없었다. 그만큼 백정현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욱 커졌다는 뜻이다.

백정현은 고교시절 무릎을 다치기 전까지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는 유망주였다. 부상 이후 구속이 10km 가까이 떨어졌지만 백정현은 작년 시즌에도 무려 70%가 넘는 비율의 속구를 던졌다. 이는 구종이 단조롭다는 뜻도 되지만 타자들과 정면승부를 즐긴다는 의미도 된다. 백정현이 차우찬의 이탈로 더욱 허약해진 왼쪽을 든든하게 지탱해 준다면 삼성 마운드의 2017년 전망도 그리 어둡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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