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는 올 시즌 외국인 선수 키퍼 사익스의 거취 문제를 놓고 수개월 가까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사익스는 지난 시즌부터 도입된 외국인 선수 장단신 분류 규정에 따라 KGC가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다. 178cm로 신장은 작지만 뛰어난 탄력과 개인기를 갖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았다. 사익스는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고양 오리온의 우승을 이끈 조 잭슨의 단신 가드 돌풍을 이어갈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KGC는 오래가지 못하여 딜레마에 봉착했다. 사익스가 기술은 좋지만 높이와 수비 매치업상 약점이 있다보니 활용도가 제한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KGC가 마이클 크레익이 버틴 삼성에 유독 고전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내심 올 시즌 우승을 노리는 KGC로서는 사익스보다 높이를 보강해줄 수 있는 언더사이즈 빅맨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자연히 사익스의 교체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론 여기까지는 국내 프로농구 구조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외국인 선수교체의 한 장면이었다.

계속 되는 KGC의 선수 '간보기'

    13일 오후 7시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부산 KT와 안양 KGC의 경기에서 178cm의 사익스(KGC)가 덩크슛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부산 KT와 안양 KGC의 경기에서 178cm의 사익스(KGC)가 덩크슛을 터뜨리고 있다. ⓒ 안양 KGC 공식 홈페이지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현재 한국 프로농구의 일원인 외국인 선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김승기 감독과 KGC 구단의 무례한 태도다.

KGC는 이미 지난해 12월에도 사익스의 교체를 검토하며 언더사이즈 빅맨 마커스 블레이클리의 영입을 추진하려다가 불발된 전력이 있다. 당시 블레이클리는 울산 모비스에서 네이트 밀러의 일시 대체선수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모비스가 완전교체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교체 선수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하위 순번에 지명 우선권이 있다는 KBL의 규정을 이용하여 KGC가 블레이클리를 데려가려고 했다. 규정상 문제는 없었지만 다른 팀이 영입하여 적응까지 마친 선수를 '손 안대고 코만 풀려고 했던' KGC의 행태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선수 가로채기라는 곱지않은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블레이클리 측이 KGC와의 협상을 거부하며 입단은 무산됐다. 블레이클리는 KBL의 규정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올 시즌 남은 기간동안 국내 어느 팀에서도 뛸 수 없게 됐다. KGC는 울며겨자먹기로 사익스를 잔류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익스는 퇴출 일보직전에서 극적으로 기사회생했지만 불안한 입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KGC는 포기하지 않고 최근 다시 에릭 와이즈 영입을 검토했다. 192cm의 와이즈 역시 최근까지 전주 KCC에서 일시대체선수로 활약하던 언더사이즈 빅맨이다. KCC는 와이즈를 내보내면서 에이스 안드레 에밋이 복귀했고 리오 라이온스의 대체선수로 아이라 클라크를 영입하며 외국인 선수 개편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사익스는 올 시즌에만 두 번째로 퇴출 위기에 내몰렸다. 본인은 일일이 내색하지 않는다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어차피 다 알 수밖에 없다. 아무리 외국인 선수가 사실상 비정규직이라고는 해도, 잔류든 퇴출이든 최대한 빨리 입장을 정하는 게 선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김승기 감독과 KGC의 애매모호한 행보는 무례함의 정도를 한참 벗어났다. 사익스 교체설이 하루이틀 거론된 사안도 아닌데, 이미 새로운 대체선수 후보까지 이미 낙점한 상황에서 새삼스레 테스트를 빙자한 '간보기'를 또 자행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KGC는 30일 삼성전까지도 사익스의 경기력을 더 지켜보고 최종결정을 내리겠다며 퇴출 결정을 유보했다. 일종의 희망고문이다. 사익스는 이날 16점을 올리며 좋은 활약을 펼치며 올 시즌 삼성전 3연패 수렁을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날 경기로 사익스의 입지가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이제 최종적으로 사익스가 남든 떠나든 피차 뒷맛이 개운치 않은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은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 교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KGC의 시간끌기는 사실 사익스의 활약보다는 가드 김기윤의 부상이 가져다준 변수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허리 부상에 시달리는 김기윤은 현재 전열에서 이탈했다. 강병현의 복귀 여부가 미지수인 상황에서 김기윤마저 없으면 사익스가 퇴출된 이후 경기를 풀어줄 만한 가드 자원이 없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사실 김승기 감독이다. 국가대표 가드였던 박찬희를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용하지 않다가 결국 전자랜드로 트레이드시키며 가드진의 약화를 초래한 것도, 충분히 예상가능했던 높이의 핸디캡을 감수하면서 굳이 단신 가드인 사익스를 데려온 것도 모두 김 감독 본인의 결정이었다.

지난해 조 잭슨이나 안드레 에밋을 영입하여 성과를 낸 오리온-KCC는 적어도 단신 외인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할 확실한 선수구성이나 게임플랜이 있었지만, 김승기 감독은 애초에 뚜렷한 전략 자체가 없었다. 삼성 같은 특정팀에 유난히 부진한 것이나 사익스의 애매한 활용도를 두고 이제 와서 선수 개인 탓으로 돌리는듯한 태도는 옳지 않다. 외국인 선수교체 문제로 몇 번이나 논란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아직까지도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 역시, 선수와 팬들 모두에게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사익스가 만일 외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였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능력이 부족하거나 팀 상황에 맞지않아 떠나야하는 것은 프로 세계의 숙명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선수의 인격과 자존심을 무시하면서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여서는 안된다. 외국인 선수에게 소속 구단과 리그에 대한 존중, 헌신 등을 요구하고 싶다면 구단과 감독도 그에 걸맞는 예의를 갖춰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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