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레프트진으로 승승장구...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과 우리카드 김상우 감독(오른쪽)

풍부한 레프트진으로 승승장구...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과 우리카드 김상우 감독(오른쪽) ⓒ 박진철


레프트가 강하고 풍부해야 상위귄에 오를 수 있다. 2016~2017시즌 V리그 강팀의 조건이다.

현대 배구에서 레프트 포지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피드 배구가 세계 배구 강국의 주 패턴으로 자리잡으면서 그 역할이 더욱 커졌다.

레프트는 국제대회나 해외 리그에서 윙 스파이커(Wing Spiker), 아웃사이드 스파이커(Outside Spiker), 아웃사이드 히터(Outside Hitter)라고 표기한다. 날개 공격수가 주 임무라는 뜻이다. 그러나 서브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공격과 수비 능력을 다 갖추어야 한다. 공격력과 수비력이 모두 뛰어난 '완성형 레프트'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귀하고 연봉도 가장 높다. 세계 최고의 완성형 레프트인 김연경(192cm·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완성형 레프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최근 터키컵에서 페네르바체가 초호화 군단인 엑자시바시와 바키프방크를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한 것에서도 여실히 증명됐다. 페네르바체는 김연경과 나탈리아(184cm·브라질)라는 세계 최정상급 완성형 레프트를 두 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 배구 강팀들의 레프트는 수비에 비중을 조금 더 두는 경우는 있어도 공격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없다. 전위에서 공격 결정력은 물론, 후위에서도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때문에 공격수에게 굳이 '수비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수비형 레프트'라고 부르는 자체가 한국 배구가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징표이다. 해당 선수에게도 좋은 의미가 될 수 없다. '반쪽 선수'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선두권 팀, 강하고 풍부한 레프트 보유

​레프트의 중요성은 올 시즌 V리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선두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팀들을 살펴보면, 강하고 풍부한 레프트진이 유난히 돋보인다.

30일 현재 1위인 대한항공은 수준급 레프트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김학민, 곽승석, 정지석, 신영수 등 국가대표 주전급 레프트가 4명이나 된다. V리그가 6개월 대장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반으로 갈수록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 완성형 레프트로 규정 짓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팀의 레프트 자원과 비교하면, 수준급 레프트들이다.

태풍으로 돌변한 우리카드의 깜짝 2위 등극도 마찬가지다. 최홍석, 신으뜸, 나경복이 맹활약하고 있는 가운데, 김정환까지 군에서 전역하면서 한층 풍요로워졌다. 김정환은 군 복무 전까지 우리카드의 붙박이 주 공격수였다. 국가대표에서도 주전로 활약했다. 그런 김정환이 당장 주전으로 뛰기 애매할 정도로 레프트진이 막강해진 것이다.

우리카드가 창단 최초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 이상) 진출을 넘어 V리그 왕좌까지 넘보는 데는 팀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인 파다르와 레프트진의 괄목상대한 활약이 시너지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태웅 "톤, 수비형 레프트로 영입한 것 아니다"

현대캐피탈은 레프트가 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스피드 배구를 통해 레프트를 잘 활용하면서 3라운드까지 1위를 내달렸다. 약한 레프트진을 시스템 배구를 통해 극복해낸 것이다. 스피드 배구의 핵심 요소가 완성형 레프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지난 14일 기자와 통화에서 톤(34세·200cm)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톤을 수비형 레프트로 활용하기 위해 뽑은 건 절대 아니다"며 "스피드 배구에서 수비형 레프트를 쓴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톤이 다른 외국인 선수에 비해 공격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공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선수라는 점에 방점을 뒀다"며 "스피드 배구에는 그런 완성형 레프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톤이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약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 감독도 "(그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레프트가 강하지 않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장기 레이스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외국인 선수 톤의 부진이 심해지면서 교체까지 결정한 상태다. 현대캐피탈이 30일 OK저축은행에 승리하며 다시 2위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불안함을 지울 수 없는 이유이다.

한 쪽 바퀴가 고장이 나면서 공격이 문성민에게 몰리고, 다른 쪽의 활로를 뚫기 위해 센터진을 날개 공격수로 포지션 변경까지 감행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비책이라기보다는 궁여지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전력, 강력한 '완성형 레프트'에도 실속 못 챙겨

4위 한국전력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완성형 레프트를 2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전광인과 서재덕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대표 주 공격수다. 그리고 국내에서 공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완성형 레프트에 가장 가까운 선수들이다.

한국전력이 3라운드까지 1~2위를 다투며 승승장구한 데는 전광인의 부상 회복과 서재덕의 공격력 강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선수를 대체할 교체 멈버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부담 요소다. 부상 여파가 남아 있는 전광인과 서재덕이 전 경기를 소화하다 보니 장기 레이스에서 체력적 한계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많은 5세트 경기를 치렀고, 강민웅 세터마저 흔들리면서 하락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전광인·서재덕의 존재 때문에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한국전력이 승리 경기 수와 승률에서는 16승 9패로 1위 대한항공(17승 8패)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순위는 4위에 처져 있다. 5위 삼성화재(12승 13패)보다 4승을 더 했음에도 승점 차이는 고작 1점에 불과하다. 한 경기만 패해도, 5위로 내려갈 판이다.

왕조 삼성화재와 하위팀 부진 '레프트 약화'

만년 꼴찌인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이 함께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건, 올 시즌 V리그가 과거와 확연하게 다른 차별점이다.

V리그를 휘어잡았던 세계 정상급 외국인 선수가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 도입으로 사라졌고, 그 공백을 메워줄 국내 선수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국내 레프트 선수의 활약상이 자리하고 있다.

영원한 왕조로 군림했던 삼성화재가 타이스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5위권을 맴돌고 있는 것도 국내 레프트 한 자리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시즌 연속 챔피언인 OK저축은행이 최하위에서 허덕이는 것도 '절대 지존' 시몬의 부재가 큰 이유이긴 하지만, 국내 레프트진이 부상 여파와 군 복무 등으로 약화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대표 센터 이선규를 FA로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한 KB손해보험의 부진도 레프트 손현종(197cm)의 부상 이탈이 뼈아픈 대목이었다.

물론 잘나가는 팀들이 한두 가지 요소만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포지션마다 골고루 역할을 해주고, 팀 분위기와 감독의 역량, 구단 프런트의 적극 지원 등 모든 부분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프트의 중요성이 어느 시즌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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