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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도 설과 같은 명절에는 휴식을 갖는다. 비록 명절 떡값을 받는 경우는 드물더라도 설과 같은 명절에는 누구나 친구들과 함께 해후를 즐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이동산을 가기도 하고, 자신들의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설을 쇠는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지만 연휴를 맞은 이주노동자들이 설을 어떻게 보냈는지 살펴보았다.

요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에 전화할 때 카카오톡을 이용한다. 야후가 한참 주가를 올릴 때만 해도 야후 메신저를 가장 잘 쓴다던 그들은 이제 카카오톡 보이스톡 기능을 이용해서 영상통화를 한다. 틔이도 그 중 한 명이다.

카카오톡 페이스톡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 영상통화하는 이주노동자 카카오톡 페이스톡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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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아닐 때도 통화 자주 하는데, 이번에는 설이라 많은 얘기 했어요. 고향 사람들이 닭 풍선 선물하는 것도 보고, 음식 만든 이야기도 했어요. 닭띠 해니까, 사람들이 닭 그려진 풍선 선물 많이 해요. 복 준다고 생각해요."
"음식은 뭐 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 하고, 남자들은 돼지 잡고, 여자들은 떡 만들었어요. 그런데 남자들 술 너무 많이 먹어요. 명절 동안 계속 먹어요."

닭 모양 풍선을 길거리에서 팔고 있다.
▲ 베트남 설 풍경 닭 모양 풍선을 길거리에서 팔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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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문화가 있는 베트남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떡은 반쯩이라는 전통 음식이다. 베트남 같았으면 주위에 아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겠지만 한국에서는 모인 사람들끼리 먹을 정도만 조촐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반쯩은 약밥처럼 찹쌀을 굳혀서 빚은 떡이다. 떡 안에는 숙주와 돼지고기 으깬 것을 넣고 바나나 잎으로 네모나게 싼 뒤에 끈으로 단단히 묶고 찐다. 찹쌀이 식은 뒤에 먹는데, 돼지고기와 숙주의 찬 성질이 어우러져 더운 기후에 알맞은 음식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반쯩 말고도 쌀국수와 월남 쌈도 준비했다.

바나나잎으로 싼 돼지고기 찹쌀 떡인 반쯩
▲ 베트남 설 음식 바나나잎으로 싼 돼지고기 찹쌀 떡인 반쯩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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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연휴를 보내는 남자들 등쌀에 힘들어할 틔이에게 연휴 마지막 날, 놀이동산에라도 가자고 연락했다. 연휴 시작할 때 '추워서 어디 나가기도 싫다'면서도 쉼터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를 들고 왔던 틔이였다. 몇 년째 하지정맥류로 고생했던 그는 자기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어제만 해도 남들 다 노는 데 춥지만 않으면 어디 놀러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틔이가 일하는 곳은 외국인들에게 대체휴일을 주지 않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오늘요? 일해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아프리칸 스타일 치킨, 응쿠쿠로 설 연휴 즐기다

대체휴일이 없는 건 틔이만이 아니었다. 설 연휴 기간인 일요일 밤에 월리는 예정에 없던 야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는 그는 야근에 앞서 친구들 앞에서 한껏 요리 솜씨를 자랑했다. 월리는 아프리카 사람이라 설을 쇠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설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딸 둘을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과 떨어져 산 지 2년이 훨씬 넘었다. 그가 설에도 야근을 마다치 않은 이유는 딸들을 보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다. 월리는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 소송 중이다. 재판 과정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려면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설이라고 딸들을 만날 수 없지만, 가족 친지들을 만나고 음식을 나누는 절기라는 것을 아는 그가 일부러 손을 걷어붙였다. 평소에도 잠비아식 도넛인 프리타를 만들어 나누기를 좋아하는 윌리였다.

아프리카 잠비아 전통음식
▲ 응쿠쿠 아프리카 잠비아 전통음식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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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아 윌리가 친구들에게 대접하겠다고 한 것은 아프리칸 스타일 치킨인 응쿠쿠였다. 정확히는 잠비아식 양념통닭이다. 통닭을 구운 다음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토마토와 야채, 양념을 얹어서 알록달록함을 자랑한다. 고기와 야채를 같이 먹을 수 있어 다이어트 식단으로 추천할만한 음식이다. 윌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권한 응쿠쿠는 구운 고기에서 느낄 수 있는 불맛과 토마토와 야채가 주는 시원한 맛이 잘 어우러졌다.

"응쿠쿠는 로컬 이름이라 영어로 뭐라 하는지 몰라요. 시골에선 응쿠쿠를 먹을 때 옥수숫가루로 만든 시마를 같이 먹기도 해요. 잠비아에서는 새해엔 소를 잡고, 그 피를 마시며 건강을 기원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서구화돼서 음식도 잠비아 음식이 뭔지 몰라요. 프리타 같은 경우도 사람들은 그냥 도넛이라고 알지만, 우리는 도넛이 뭔지도 모를 때부터 먹던 거예요."

연휴 기간에 대학로 혜화동 성당을 다녀 온 리차드는 응쿠쿠가 입에 맞는지 포크 대신 손가락으로 집어먹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거, 필리핀 음식이랑 맛이 비슷해요. 소금하고 구운 맛이 비슷해요."
"혜화동에서 뭐 했어요?"
"친구들 만났어요. 롱롱 할러데이(긴긴 명절) 재미없어요."
"이번에 할러데이 짧은 건대"
"일 없어요. 할러데이 컨티뉴(계속)"

리차드는 설 연휴에 친구들을 만나서 일자리를 알아봤다고 했다. 서울에 가면 좀 더 많은 소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연휴가 끝나도 계속 이어질지 모르는 실직이 두려운 리차드에게 설은 특별할 게 없었다. 친구들마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설에 고향에서 겪던 일을 똑같이 경험한 이린

나라와 종교, 개인에 따라 대한민국 설 풍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태국과 같은 설 문화가 있는 나라는 한국의 민족 대이동을 충분히 이해한다. 비록 설 풍습이 없는 나라일지라도 한국처럼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이둘 피트리'라는 절기를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 역시 그런 부분은 쉽게 이해한다.

이린은 이번 설에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일을 똑같이 경험했다. 그 동안은 설이라고 해도 공장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 5월에 뇌종양으로 쓰러진 후 회사를 그만 둔 터라, 기분도 전환할 겸해서 김천에 있는 사촌을 찾아가기로 했다. 사촌은 이린이 뇌종양으로 쓰러져 처음 수술 받았을 때 간병하러 올라왔었다. 짧은 연휴 때문에 직장이 있는 사촌이 올라오는 것보다 요양 중인 자신이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갖고 연휴 시작 전인 목요일에 출발했다.

용인에서 대전을 거쳐 김천까지 버스를 갈아탈 때마다 조심스럽게 목적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내려갔다. 평소와 달리 터미널이 붐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내려갈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올라올 때 생겼다. 대전에서 용인행 시외버스를 타는데 배차 간격이 한 시간이나 되는데다 승객이 너무 많았다. 여유 있게 터미널에 도착해서 여섯 시 이전에 버스를 타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게다가 여덟 시에 탈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을 잘못 섰다가 놓친 탓이다. 결국 밤 아홉 시가 되어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분명히 용인이라고 쓴 버스 앞에서 시작된 줄에 섰어요. 그런데 그게 두 줄이 두 개였어요. 길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한 줄은 용인이 아니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도 이둘 피트리 때 무딕(Mudik, 귀성)하면 그런 일이 꼭 있어요."

이린은 3박4일간의 여행이 마치 고향에서 이둘 피트리 때 귀성하며 겪었던 일을 한국에서 겪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천에 내려간 김에 구미와 대구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교통편이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그만 뒀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보낸 시간만 열두 시간이 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런데도 움직이길 싫어했던 걸 보면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며 풀이 죽었다. 설이라고 특별할 게 없지만, 고단한 고향 풍경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태그:#설 연휴,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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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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